올해도 어김없이 ‘롯레발’을 타고 겨울이 왔다
● 2022년 11월까지 영입에만 268억 원 지출
● 매년 “올해는 다르다” 외치지만…
● 성민규 단장 “케이크는 준비됐다”
● 1992년 마지막 우승… 2022년에는?
이번 겨울에 '아, 이제 곧 겨울이 오는구나' 하고 느낀 건 2022년 11월 3일이었습니다. 이날 한 인터넷 매체는 "이승엽(47·현 두산 베어스 감독)과 박병호(37·KT 위즈)의 장점 합쳐 놓은 한동희(24·롯데 자이언츠), 내년(2023)에 무조건 30홈런 이상 친다"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그러자 전날(2일)까지 섭씨 16.7이였던 부산 지역 평균기온은 다음 날(4일) 11.6도로 5.1도가 내려갔습니다. 그다음 날(5일) 평균기온은 10.6도, 최저기온은 5.5도 더 추워졌습니다.
네, "한동희가 올해는 꼭 30홈런을 칠 것"이라는 기사도 최근 몇 년 동안 롯레발 고정 레퍼토리입니다. 한동희는 2020년과 2021년 각각 기록한 17홈런이 개인 최다 홈런 기록인 선수입니다. 그러니까 아직 20홈런도 기록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올해는 꼭 20홈런을 칠 것'이라고 쓰기에는 어딘가 좀 약해 보이는 게 사실. 그렇다고 40, 50홈런을 칠 수 있다고 주장하기는 부담스러우니 30홈런이 적당한 기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승엽의 유연성과 박병호의 파워 스윙을 겸비한 타자라면 50홈런도 우습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롯레발의 시작점은 '올해는 다르다'고 믿는 것. 새로 롯데 타격 지도를 맡게 된 박흥식(61) 코치가 확실히 한동희를 30홈런 타자로 만들어놓을 게 틀림없습니다. 이 인터넷 매체는 박 코치가 "(한동희는) 이승엽과 박병호처럼 인성도 좋은 선수"라면서 "내가 한번 만들어봐야지. 그동안 홈런 타자 많이 키웠잖아"라고 확신에 찬 어투로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아, 물론 KIA 타이거즈 팬들 역시 박 코치 부임과 함께 김주형(38·현 동신중 코치)이 터질 것이라도 믿었지만 결과는…. 그래도 한동희는 확실히, 분명히, 기필코, 다를 겁니다.
FA 시장 최고 큰손
롯데는 2022년 11월이 다 지나기 전에 시장에 이미 268억 원을 풀었습니다. 시작은 '토종 에이스' 박세웅(28)과 5년 90억 원에 연장 계약을 맺은 것. 박세웅은 원래 2023년이 끝나면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을 예정이었습니다. FA가 되기 전에 연장 계약을 맺었다는 건 박세웅이 상무 입대를 포기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NC 다이노스 출신 유격수 노진혁(34)과도 4년 총액 50억 원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롯데는 노진혁을 영입하면서 외국인 선수 마차도(31)가 떠난 뒤 마땅한 붙박이를 찾지 못하던 유격수를 채운 건 물론, 올 시즌 롯데를 상대로 OPS(출루율+장타력) 1.010을 기록한 타자도 한 명 지웠습니다. 노진혁은 지난해 롯데 안방 사직구장에서는 롯데 투수를 상대로 OPS 1.179를 기록했습니다.
성 단장은 지난해 2월 부산 MBC 방송에 출연해 "FA는 생크림 케이크 위에 얹는 체리 같은 것"이라면서 "케이크는 정작 준비되지도 않은 그런 허름한 곳에 체리 하나 얹는다고 크게 달라지겠냐"고 말했습니다. 돈은 쓸 때 써야지 무조건 많이 쓰기만 한다고 전력 강화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뜻이었습니다. 성 단장은 FA 영입과 함께 총 355만 달러(약 48억 원)를 들여 외국인 선수 렉스(30), 반즈(28), 스트레일리(35)와도 재계약을 마무리하면서 '케이크는 준비됐다'고 선언했습니다.
샐러리캡 시대 야구
2019년 부임 이후 성 단장이 '제너럴 매니저'로서 가장 잘한 일은 롯데를 '돈도 많이 쓰고 못하는 팀'에서 '돈을 적게 쓰고 못하는 팀'으로 체질을 바꾼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덕에 롯데는 '샐러리캡'(연봉 총액 상한제) 도입 시점에 오히려 큰손 노릇을 할 수 있었습니다.한국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롯데가 2021년 몸값 총액 상위 40명에게 지급한 총 금액은 76억9886만 원이었습니다. 프로야구 10개 구단 가운데 7위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성 단장 부임 전인 2019년에는 연봉 총액 101억8300만 원으로 10개 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선수단 연봉으로 100억 원을 넘게 쓰는 팀이었습니다. 성 단장이 부임과 함께 '유동성 확보'에 초점을 맞추면서 열심히 케이크를 반죽하고 있던 겁니다.
모기업도 '때가 됐다'고 판단했습니다. '롯데지주'에서 롯데 구단 주식 196만4839주를 주당 9670원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자본금 190억 원을 늘려준 것. 그 덕에 롯데는 2022년 샐러리캡 상한액(114억2638만 원)에 37억2752만 원 여유를 둔 상대로 실탄 190억 원을 짊어진 채 FA 전쟁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김상수(35·전 SSG 랜더스), 신정락(35·전 한화 이글스), 윤명준(33·전 두산 베어스)처럼 다른 팀에서 방출당한 선수까지 영입해 체리 주변에 '초콜릿 가루'까지 뿌렸습니다.
롯데, 올해는 다를까
롯데가 이렇게 열심히 케이크를 장식하는 데는 물론 '유통업계 라이벌' 신세계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SK 와이번스를 인수해 SSG를 창단한 뒤로 "롯데는 울면서 쫓아와야 할 것"이라면서 라이벌 의식을 부추겼습니다. 그리고 창단 2년 만인 2022년 통합우승을 차지하면서 롯데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든 게 사실. 단, SSG는 2022년 몸값 총액(248억7512만 원)이 너무 많았던 탓에 이번 스토브 리그 때는 주인공이 되지 못했습니다.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자가 '포수를 보강해 달라'고 댓글을 남기자 정 부회장이 "기다려보세요"라고 답했지만 결과는 빈손이었습니다.영입한 선수 명단만 놓고 보면 롯데가 2023년 '가을 야구'에 진출하는 건 떼어놓은 당상처럼 보입니다. 또 포수 육성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최경철 코치(43)를 영입하고 허삼영(51)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에게 전력 강화 코디네이터를 맡기는 등 코칭 스태프 구성도 '롯무원(롯데+공무원)' 시절과는 확연이 다르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2019년 12월 13일자 주간동아에 실렸던 '베이스볼 비키니'는 롯데를 취재하고 싶어 언론계에 몸담은 R 기자가 "오프시즌 롯데 기사는 날짜와 이름만 바꾸면 된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선수 또는 코칭스태프 이름만 바꿔서 '○○○ 합류, 내년 롯데 전력 상승 기대'라고 기사를 쓰면 그만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롯데 기사를 쓰기가 쉽고 그래서 오프시즌에는 유독 롯데에 희망적인 기사가 많이 나온다는 얘기였습니다.
R 기자는 계속해 "롯데가 변하지 않으리라는 건 어지간한 골수팬이면 다 안다. 롯데는 2020년에도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실제로 롯데는 2020년에도 71승 1무 72패(승률 0.497)로 7위에 그치면서 가을 야구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2021년에는 65승 8무 71패(승률 0.478)로 성적도 더 나빠졌고 팀 순위도 8위로 내려갔습니다.
2021년 성적이 중요한 건 성 단장 발언 때문입니다. 그는 2020년 1월 6일 당시 FA 최대어로 꼽힌 안치홍(33)을 영입하면서 "2021년이 지나면 손아섭(35·현 NC 다이노스), 민병헌(36·은퇴)의 FA 계약이 끝난다. 노경은(39·현 SSG 랜더스)과의 2년 계약도 마무리된다"면서 "2021년에는 무조건 성적을 내야 한다. 안치홍, 손아섭, 민병헌은 하지 말라도 해도 열심히 할 거다. 내가 할 일은 그 2년 동안 유망주들을 제대로 육성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실은 달랐습니다. 이 2년간 롯데는 외부 FA를 영입해도 보상 선수 유출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팀이 됐습니다. 유망주를 제대로 육성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결과입니다. 그렇다고 당장 성적을 챙긴 것도 아닙니다. 과연 올해는 어떨까요. 1992년 한국시리즈에서 마지막 우승을 차지한 31번째로 맞이한 이번 시즌 롯데는 먹음직스러운 체리를 올려놓은 우승 기념 생크림 케이크를 자를 수 있을까요.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a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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