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회계공시? 대통령의 천박한 노동 인식이 문제다

2022. 12. 27.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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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노동문제 '무식' 드러낸 대통령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 컨설턴트]
노동문제(Labour Questions)에 대한 지식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질문이 있다. "노사관계에서 노는 무엇이고 사는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노사관계에 무식한 사람들은 노는 노동자요 사는 회사(기업)라 답한다. 노사관계를 '노동자와 회사' 혹은 '노동조합과 회사'가 맺는 관계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노사관계에서 사는 회사나 기업을 뜻하는 '모일 社'가 아니다. 노동자를 사용하는 사람, 즉 사용자를 뜻하는 '부릴 使'다. 따라서 노사관계는 '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 혹은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의 관계를 뜻한다.

노사관계에서 사는 '사용자'

'사람 대 사람'의 관계가 노사관계다. '사람 대 회사'의 관계가 아닌 것이다. 가족관계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지 사람과 집의 관계가 아닌 것과 같다.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물인 회사가 관계를 맺을 순 없다. 이는 가족관계가 사람과 건물(집)과의 관계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난센스다.

노사가 대립적인 관계라고 할 때 이는 노동자/노조가 회사와 대립한다는 말이 아니라 노동자/노조와 사용자가 대립한다는 말이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대립은 불가피하다. 권리와 이익에서 충돌하기 때문이다. 노동자 권리가 강화되는 걸 원하는 사용자는 어디에도 없다. 노동자 권리 확대는 사용자 권리 축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노동자 이익이 개선되는 걸 원하는 사용자도 없다. 권리에서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사용자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많은 이론가들이 노동자와 사용자의 권리와 이익이 같다는 이론을 만들려 애썼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환상이 현실을 대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노사관계를 노자관계라 부르기도 한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관계라는 말 속에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서 노사관계의 본질이 더욱 또렷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결합체인 회사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회사는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결합된 공적 조직의 성격을 띤다. 기업 내부로는 소유자·주주·경영자·관리자·노동자 등이 있고, 기업 외부로는 소비자·하청업체·지역사회·정부 등이 있다. 안팎의 다양한 이해당사자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제 기능을 못할 경우 기업은 문제에 봉착하고 위기를 겪게 된다.

복잡다기한 현대 경제에서 자본주의 초창기처럼 회사를 일인독재나 세습왕조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 걸맞은 권리와 책임을 지고서 기업 경영에 관여하고 개입할 때, 그 기업은 이윤 추구라는 속물적 욕망을 넘어 이해당사자 모두의 자아 실현과 사회발전 기여라는 공익적 가치 실현에 좀더 다가갈 수 있다.

노사관계라는 말의 포인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개념은 사용자가 세습군주가 지배하는 왕국 같은 회사의 주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노동자가 회사의 신민이나 노예가 아니라는 말과 같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와 사용자는 회사라는 기관의 동등한 구성원이다. 따라서 민주 사회라면 법제도적으로 사용자, 즉 자본가가 노동자에 대해 독재적 지위를 갖거나 배타적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

물론 자본주의는 기업 재산에 대한 자본을 소유한 사람의 배타적인 소유권이 법·제도와 관행으로, 다른 말로 하면 공적 폭력과 사적 폭력을 통해 보증되고 관철되는 체제다. 하지만 수세기에 걸쳐 자본주의의 자본가 독재적 본질에 저항한 노동자들의 투쟁 덕분에 사회적 시장경제나 사회민주주의를 포함해 다양한 변종의 자본주의를 현대 경제에서 목도해 왔다.

노사관계의 '물신화' 시도

노사관계를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아닌 사람과 사물의 관계로 대치하려는 시도는 역사가 오래된 이데올로기 공세다. 죽은 대상인 사물에 살아 있는 사람처럼 생명력을 불어놓으려는 시도를 부정적인 표현으로 물신화(物神化)라고 한다.

문제의 당사자는 사물 뒤로 숨고, 죽은 대상인 사물이 인격의 탈을 쓰고 살아 있는 생물체처럼 연기를 한다. 이 경우 노사관계 문제의 본질을 사람에게서 찾지 않고 회사라는 무생물에서 찾음으로써 문제 해결의 단초를 벗어나게 된다.

회사가 문제인 것은 회사라는 현대 경제의 조직체가 나쁜 의지나 욕망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무생물은 의지나 욕망을 갖지 못한다. 죽은 사물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문제인 것은 회사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사람, 즉 자본가나 사용자가 이윤 극대화라는 나쁜 의지와 부당한 욕망을 갖고 노동자를 학대하기 때문이다.

이윤 극대화를 위해 자본가는 사업장 안팎에서 폭력·착취·차별을 극대화할 욕구를 느낀다. 자본주의 체제가 강요하는 경쟁에서 자유로운 자본가는 없다. 국가 권력을 등에 업고 공장 안에서 독재를 휘둘러 온 자본가의 권리와 이익에 도전하고 맞서 이를 축소해온 역사가 노동조합운동의 역사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4일 분양받은 은퇴견 새롬이가 26일 오전 서울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수석비서관과의 티타임에서 참석자들에게 소개되고 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출근길까지 계속 따라다닌 새롬이와 함께 집무실까지 출근, 수석비서관들에게 인사시킨 뒤 다시 관저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대통령의 천박한 노동문제 인식

크리스마스 다음날 열린 용산대통령실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인 '다트'처럼 노동조합 회계공시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라고 지시했다는 언론 기사를 읽었다.

회사 재정과 노조 재정을 비교 가능한 것으로 이해하는 천박함의 배경에는 노사관계를 '노동자와 기업의 관계' 혹은 '노동조합과 기업의 관계'로 오해하는 무식이 자리잡고 있다. 노사관계에서 기업은 중립적 기관이자 일종의 행위 공간에 불과하다. 따라서 노동자단체로서 노동조합과 비교 가능한 존재는 기업이 아니라 사용자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나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다.

또한 노동조합은 헌법이 보장한 '결사의 자유'를 누리는 결사체이기도 하다. 이 경우 노동조합은 대한변호사협회나 대한의사협회 같은 직업적 결사체나, 아니면 전국적으로 그 수가 5만개가 넘어 치킨집이나 노래방보다 많다는 기독교단체 같은 종교적 결사체와 그 비교가 가능하다.

전경련과 경총을 위한 회계공시시스템은?

따라서 윤석열 대통령이 사회경제적으로 노동자라는 직업을 가진 자들의 결사체인 노동조합(trade union)을 위한 회계공시시스템을 구축하려 한다면 비교 수준이 전혀 다른 기업의 '다트'를 예로 들어선 안 된다. 오히려 대한변호사협회, 대한의사협회, 한국공인회계사회, 대한예수교장로회, 대한불교조계종,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같은 법제도적 수준이 같고 비교 가능한 결사체를 예로 들어야 한다.

헌법이 보장한 '결사의 자유(the freedom of association)'에서 노동조합과 동일한 위치를 갖는 직업단체와 종교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회계공시시스템을 윤석열 정권이 구축한다면 노동조합도 그 시스템에 포함시키는 데 개인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그 많고 많은 직능단체와 이익단체들 가운데 노동조합만 딱 찍어 회계공시시스템을 만들라는 지시는 단순히 불공정을 넘어 파시즘적 발상에 다름 아니다. 민주적 선거를 통해 1933년 1월 30일 합법적으로 권력을 잡은 히틀러의 나치당 정권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노동조합에 대한 이념적 공격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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