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조원어치 판 크리스티’ 해외 미술경매 뜨거운데, 한국은 급랭 왜?[현장에서]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한쪽에선 축하의 샴페인이 터졌다. 그러나 다른 쪽에선 분위기가 싸하다. 글로벌 경매사와 한국 경매사 이야기다. 경제는 이미 글로벌 단일 시장으로 움직이고, 초고가 시장인 미술시장도 마찬가지일 텐데 유독 국내와 해외의 온도 차가 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크리스티, 소더비, 필립스 등 해외 메이저 경매 3사는 올해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발표했다. 크리스티는 84억 달러(한화 약 11조원), 소더비는 80억 달러(10조4000억원), 필립스는 13억 달러(1조7000억원) 등 모두 일제히 최고 수준의 실적을 기록한 것이다. 세계 경제가 불황으로 신음하지만, 미술품 경매는 다른 역사를 쓰고 있는 셈이다. 요인으로는 폴 앨런 컬렉션과 같은 이벤트성 경매, 부동산·자동차 등 경매 영역의 확장, MZ(밀레니얼+Z)세대 신규고객 발굴 등이 꼽힌다.
반면 국내 시장은 정반대다. 지난 20일과 21일 올해 마지막 메이저 경매를 진행한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은 냉랭한 분위기 속에 경매를 마쳤다. 서울옥션은 경매 전 45억원의 높은 시작가로 화제를 모았던 김환기의 푸른 전면점화가 경매 시작 직전 취소됐다. 이우환 150호 크기 다이얼로그도 경매를 시작해보지도 못하고 끝났다.
케이옥션은 비교적 낮은 추정가인 22억원으로 기대됐던 김환기의 ‘새와 달’이 시작가 16억원에 팔렸다. 유영국의 ‘워크’는 유찰됐고, 박수근의 ‘우산을 쓴 노인’(1960)은 시작가 4억원에 낙찰됐다. 취소, 유찰, 최저가 낙찰이 이어지며 서울옥션은 낙찰률 69%, 케이옥션은 74%에 그쳤다. 지난 1월만 해도 90% 이상의 낙찰률을 자랑했던 국내 경매시장이 1년도 안돼 분위기가 반전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시작된 양적 완화로 미술 시장이 2년 새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으로 유동성이 축소되자 시장 역시 조정기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부동산, 주식 등은 물론, MZ컬렉터들의 주요 자산이었던 가상자산 시장까지 축소되면서 미술 시장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미술 시장이 아무리 초고가 상품을 다루는 시장이라 할지라도 전반적인 시장 흐름을 역행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글로벌 메이저 경매 3사만 아직도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것은 달아오른 시장이 식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올해 글로벌 미술시장 소폭 성장했을지라도, 올해를 정점으로 성장세가 꺾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NFT(대체 불가능 토큰) 연관 미술시장이 올해 가상 자산시장과 맞물려 이미 역성장을 기록하고 있는데다 금융시장 불안이 커진 하반기 들어 전년보다 매출이 감소한 경매사가 나오고 있어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내년 시장의 추이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부터는 본격적 조정이 시작될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해외 경매사들은 전략을 다변화 했다. 가장 크게 기대하는 것은 개인 컬렉션 경매다. 크리스티는 폴 앨런 컬렉션 경매만으로 16억2000만 달러(2조110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개인 컬렉션 판매액 사상 최고치다. 소더비도 마찬가지다. 데이비드 M 컬렉션을 비롯해 솔린저, 조셉 호퉁 컬렉션이 각각 1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이벤트성이 아니냐는 지적에 크리스티 지오바나 베르타쫀 20·21세기 부회장은 “향후 수 년간 폴 앨런과 같은 우수한 컬렉션의 세일즈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며 “컬렉터들이 이른바 ‘컬렉팅 사이클’의 후반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한국 경매시장은 왜 이렇게 빨리 식은 것일까. 지난 6월을 기점으로 이미 하강기에 들어선 한국 경매시장에선 이같은 이벤트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데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개인 컬렉션을 공개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컬렉터들이 수집한 대가들의 작품들을 국내 경매시장에서 구경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서울옥션 관계자는 “이건희 컬렉션 등 개인 이름을 건 컬렉션은 그 이름값 때문에라도 가치가 더 올라가는데, 국내 컬렉터들은 이처럼 드러나는 것을 꺼려해 이벤트성 진행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최근 공개된 이건희 컬렉션 외에 개인 컬렉션을 경매에 붙이는 사례가 거의 없었다. 지난 2013년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작품이 경매장에 나온 전두환 컬렉션 정도가 그나마 컬렉터의 이름이 밝혀진 경매였다.
이와 함께 최근 2~3년 새 한국 작가 작품이 급격하게 오른 데 대한 반작용도 있다는 분석이다. 대표적 단색 화가로 꼽히는 이우환의 경우 지난 6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선으로부터’(1978)가 9억원에 낙찰됐다. 이 작품은 2020년 12월 경매에서 6억1000만원에 팔렸던 작품으로, 1년 반만에 147%가 오른 것이다. 김선우, 우국원 작가의 작품도 이 기간 두 배 이상 가격이 뛰었다.
하지만 작품가 인상을 견인하던 MZ컬렉터들이 금리인상 이후 경매에 소극적으로 돌아서자 가격 조정이 본격화 됐다. 뜨겁게 달아오른 만큼 빠르게 식어가고 있는 셈이다. 덕분에 국내 작가를 주로 다루는 국내 경매는 이같은 현상에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다.
시작가가 여전히 높은 것도 부담이다. 서울 한남동에서 프라이빗 딜링을 하는 A딜러는 “산 가격이 있어 그 아래로는 내놓지 않으려한다. 호가만 있고 거래는 멈춘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시장의 활기가 사라지는 건 경매사에겐 매우 큰 악재다. 유찰과 취소가 반복되면 컬렉터들은 좋은 작품 내놓기를 꺼리고,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으면 경매 낙찰률도 낮아진다. 이에 따라 글로벌 경매시장과 국내 경매시장의 온도 차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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