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국보됐다

이수지 기자 2022. 12. 2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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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이 27일 백제시대 공예품의 정수인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를 국가지정문화재 국보로 지정했다.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는 백제 왕실에서 발원해 제작한 것으로 석탑 사리공에서 봉안 당시 모습 그대로 발굴돼 출토지가 명확하고 고대 동아시아 사리장엄 연구를 위한 절대적 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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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보물 제1991호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문화재청이 27일 백제시대 공예품의 정수인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를 국가지정문화재 국보로 지정했다.

사리장엄구는 사리를 불탑에 안치할 때 사용하는 용기나 함께 봉안되는 공양물이다. 의식에 맞추어 사리를 봉안하는 데 필요한 기구를 빠짐없이 갖췄다고 해 '사리갖춤' 이라고도 한다.

이날 국보로 지정된 사리장엄구는 2009년 익산 미륵사지 서탑 심주석(탑 구조의 중심을 이루는 기둥)의 사리공(불탑 안에 사리를 넣을 크기로 뚫은 구멍)에서 나온 유물이다.

[서울=뉴시스]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금제 사리봉영기) (사진=문화재청 제공) 2022.10.3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백제 무왕 40년인 639년이란 절대연대를 기록한 금제 사리봉영기, 금동사리외호, 금제 사리내호, 각종 구슬과 공양품을 담았던 청동합 등 9점으로 구성됐다.

사리장엄구 중 금제 사리봉영기는 얇은 금판으로 만들어 앞·뒷면에 각각 11줄 총 193자가 새겨져 있다. 내용은 좌평(佐平) 사택적덕(沙宅積德) 딸인 백제 왕후가 재물을 시주해 사찰을 창건하고 639년 사리를 봉안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삼국유사를 통해 전해진 미륵사 창건설화에서 구체적으로 나아가 조성 연대와 주체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힌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사리장엄구 중 가장 주목되는 유물이다.

곡선미와 우아함이 살아있는 서체는 백제서예 경향을 잘 나타낸다. 절대 연도가 있는 유물이 부족한 삼국시대 서예사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사리장엄구 중 금동사리외호 및 금제 사리내호는 모두 몸체의 허리 부분을 돌려 여는 구조로, 동아시아 사리기 중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기 힘든 독창적 방식이다.

몸체의 알맞은 비례와 유려하고 생동감이 뛰어난 문양 등 기형의 안정성과 함께 세련된 멋이 있다.

[서울=뉴시스]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청동합) (사진=문화재청 제공0 2022.10.3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리장엄구 중 청동합은 구리와 주석 성분의 합금으로 크기가 각기 다른 6점으로 구성돼 있다.

청동합 중 하나에는 '달솔(達率) 목근(目近)'이란 명문이 있다. 이를 통해 달솔이라는 벼슬(2품)을 한 목근이라는 인물이 시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명문을 바탕으로 시주자 신분이 백제 상류층이었던 사실과 그가 시주한 공양품의 품목을 알 수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청동합은 그릇을 만들거나 문양을 넣을 때 사용하는 돌림판인 녹로로 형태를 만든 동제 그릇이다. 일부는 우리나라 유기(鍮器) 제작사의 기원을 밝혀 줄 중요한 사례다.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는 백제 왕실에서 발원해 제작한 것으로 석탑 사리공에서 봉안 당시 모습 그대로 발굴돼 출토지가 명확하고 고대 동아시아 사리장엄 연구를 위한 절대적 기준이 된다.

문화재청은 "제작 기술 면에서도 최고급 금속재료와 백제 금속공예 기술의 역량을 응집해 탁월한 예술품으로 승화시켰으므로 한국공예사에 있어 위상이 높다"며 "7세기 전반 백제 금속공예 기술사를 증명해주고 동아시아 사리 공예품의 대외교류를 밝혀주는 자료로써 역사·학술·예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평가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suejeeq@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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