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egabond, 이승윤

서울문화사 2022. 12. 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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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윤이 노래를 부른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을 믿으며.
재킷과 셔츠는 모두 르메테크, 이어링과 네크리스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요즘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나요?

얼마 전(12월 1일) 싱글 앨범 <웃어주었어>를 냈고, 관련해 라디오 출연이나 개인적인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오늘 인터뷰 직후 곡 믹스 작업을 하러 간다고 들었어요. 곧 발매를 예고한 정규 앨범 수록곡 작업인가요?

맞아요. 전체적인 구성은 마쳤고, 멋진 포장지를 고르는 단계죠.

새 앨범에 대해 공개된 정보가 아직 없어요. 어떤 곡들이 담길까요?

음악인 이승윤에게 원하는 것과 제가 원하던 것, 새로운 것들이 조화를 이룰 거라는 것?

대중이 이승윤에게 원하는 건 뭐라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먼저 가사를 쓰는 방식을 좋아해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기술적으로 탄탄한 음악인이 아닌 자연스러운 면면을 음악에 담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전문적이지 않다는 건 어떤 뜻인가요?

기술보다 감정에 집중해 만든 음악이 많거든요. 가사를 좋아해주는 분들이 많은데, 가사는 제 심경이라 청자에게 핵심처럼 전하고 싶은 요소는 아니에요. 음악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곡에 담은 감상을 소리로 전달하는 건가요?

음악을 기술적으로 설명하기보다 뭉뜽그린 제 감상을 전하고 싶은 거죠. 최근 발표한 싱글 ‘웃어주었어’를 예로 들면 곡을 ‘크게’ 만들고 싶었어요. 정확하게 설명 못 하겠는데, 뭔가 꽉 채운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달까. 프로듀서와 즉흥적으로 상의하며, ‘이 소리 좋다 추가하자’ 같은 상황을 반복한 총합이에요. 그래서 이 곡은 뭔가 거대한 느낌을 담고 싶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번 싱글은 ‘웃어주었어’ 외, ‘한 모금의 노래’와 ‘말로장생’까지 세 곡을 묶어 냈어요. 두 곡에는 어떤 감상을 담았나요?

‘한 모금의 노래’는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고, ‘말로장생’은 때때로 어떤 ‘말’을 폭력적으로 느껴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사람에 대해 표현했어요.

재킷·니트 톱·팬츠는 모두 오프화이트, 슈즈는 후망, 벨트는 팔로모 스페인, 이어링과 네크리스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네크리스는 오프화이트, 페도라와 이어링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제 음악의 근원이 방구석이라 생각하거든요.
큰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거실 음악은 아닌 것 같아요.”

직접 쓴 앨범 라이너 노트에 이런 설명이 있어요. “뭘 해야겠는지 모르겠을 땐 일단 앨범이나 내자 프로젝트의 첫 번째 타자 <웃어주었어>입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2021년 <싱어게인> 우승 후, 주어진 일들을 하나씩 하며 살았는데, 어느 순간 제가 누군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어떤 음악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스스로 반문하니 그럴듯한 답변이 안 떠오르더라고요. 음악 산업을 경험해보니 더 고민되는 느낌. 라이너 노트는 뜻 그대로 지금의 제 상황을 설명하는 거예요.

SNS 소개란에 여전히 ‘방구석 음악인’이라 쓰여 있던데, 이제 방 밖에서도 꽤 유명한 가수가 됐어요.

제 음악의 근원이 방구석이라 생각하거든요. 큰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거실 음악은 아닌 것 같아요. 야외나 지하철도 아닌 것 같고요. 그리고 방구석 음악인이라는 단어를 좋아해요.

왜 방이에요?

제게 방은 혼자 있는 곳이고, 밖에서 겪은 여러 가지 생각의 결론을 내리기도 하는 곳이자, 스스로 처음 의문을 제시하는 곳이기도 해요. 사적인 공간이죠.

승윤 씨 특유의 은유적이고 시적인 가사를 방에서 적는 순간을 상상해봤어요. 가사를 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뭐예요?

가사는 제 음악에서 중요하지만, 발표 이후로는 듣는 사람이 자유롭게 해석하면 좋겠어요. 저는 창작자로서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적는 것으로 충분하거든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10년 뒤에 봐도 작위적이지 않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과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있겠냐마는, 유독 맘이 가는 가사가 있다면요?

‘말로장생’에 ‘무언갈 잃어야만 어른이 된다면 식어가는 말을 잃어버릴래’라는 가사가 있어요. 어른이 된다는 건 책임감이 커지고, 포기해야 할 게 많아지니까, 무언가를 잃어야 한다면 뜨겁거나 유행처럼 사라질 말들을 잃고 싶은 거죠. 어차피 식어버릴 테니까.

승윤 씨처럼 은유적이고 멋진 가사를 쓰는 뮤지션을 보면, 일본어에서 시와 가사를 뜻하는 단어가 같은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아유, 과찬입니다.(웃음) 시는 제게 어려운 분야예요. 그 자체로 멋지다고 생각하고요.

발표한 곡의 제목과 가사가 거의 한글이에요. 이유가 있나요? 노래하기에 영어가 더 예쁘게 들리기도 하니까.

처음 가사를 쓰던 시절에는 반발심이 있었어요. 한글만 고집하겠다는 치기 어린 마음이죠. 지금은 그런 편견은 없는데, 제가 가장 잘 다루는 언어가 한글이고 제가 쓸 수 있는 한 가장 완벽한 문장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글을 써요.

모든 라이너 노트를 정성 들여 쓰던데, 이유가 있나요?

최초의 의도는 제 앨범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시놉시스고, 이후 봐주는 사람이 생긴다는 전제하에 각색한 거예요. 처음에는 라이너 노트를 아무도 안 써줘서 직접 썼는데, 지금은 직접 쓰는 게 관례처럼 됐어요. 사실 필력 좋은 타인에게 맡기는 걸 원치 않기도 하고요. 음악에 대한 담백한 설명만 보태고 싶거든요. 과한 설명은 음악의 생명력을 저해할 수 있으니까요.

셔츠는 르메테크, 팬츠는 마르니, 슈즈는 프리미아타, 벨트는 구찌, 볼로 타이는 언티지, 네크리스는 오프화이트, 오른손의 링은 보테가 베테나, 왼손의 링·페도라·브레이슬릿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셔츠·팬츠는 모두 르메테크, 부츠는 알렉산더 맥퀸, 벨트·롱 네크리스·반지는 모두 베르사체, 이어커프는 51퍼센트, 골드 네크리스·이어커프·벨트 체인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답을 정하는 걸 안 좋아하거든요.틀을 깬다는 말도 한편으로는 틀을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유연한 삶의 태도를 유지하고 싶어요.”

<웃어주었어>의 항해사로 조희원 프로듀서를 모셨던데, 음반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요?

희원이는 저와 알라리깡숑이라는 팀을 같이한 친구이자, 싱어송라이터예요. 이번 앨범을 준비하던 중, 마침 곡에 대한 아이디어가 더 필요했고, 다른 시각으로 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해줄 항해사로 모시게 된 거죠. 협업하며 가장 자주 한 말은 ‘후회 없는 앨범을 만들자’라는 거예요.

<웃어주었어>는 정규 앨범으로 이어지는 선공개 싱글이기도 하죠?

1월 말쯤 발표할 정규 앨범에 수록될 세 곡을 선공개한 셈이죠. 정규 앨범의 힌트는 ‘현타’와 분노, 하지만 어쩌겠나 결국 살아가야 한다’라는 거? 위로라는 키워드는 듣는 사람들이 결정할 일 같아요. 제 음악이 위로가 된다면 영광이죠.

정규 앨범 작업 과정은 어떤가요?

재밌어요. 이전까지는 혼자서 어느 정도의 음악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챕터였다면, 이번에는 좋은 음반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컸고, 즐겁게 작업했어요. 외부의 영향 없이 온전히 음악에 집중한 기분.

이승윤에게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롤 모델은 의식적으로 안 꼽으려 해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지만 롤 모델로 꼽으면 그의 길을 따라 걷는 것 같달까? 영감은 다양한 곳에서 채집해요. 최근에는 리버풀 FC의 위르겐 클롭 감독? 그의 이야기가 흥미롭고 멋지더라고요.

영향을 주는 사람을 꼽지 않겠다는 말을 들으니, 묘하게 <싱어게인>에서 “틀을 깨는 음악인이라는 틀을 깨고 싶다”라는 말을 남긴 승윤 씨의 근사한 청개구리 성향이 떠오르네요.

답을 정하는 걸 안 좋아하거든요. 틀을 깬다는 말도 한편으로는 틀을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유연한 삶의 태도를 유지하고 싶어요. 사실 제 내면에는 꽤나 경직된 자아도 있거든요. 그래서 유연하게 생각하고자 의식하는 편이에요.

2021년 <아레나>와 인터뷰에서 밝힌 “제 안의 날이 무뎌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른 쪽에 편입됐다고 해서 기존의 것들을 내팽개치지 않고 계속 경계선에 있고 싶어요”라는 생각은 유효한가요?

날이 더 바짝 섰어요. 칼을 들고 있었을 뿐인데, 갈리더라고요. 이제는 칼집을 예쁘게 만들며 사는 기분. 방구석이든, 방송 매체든 어디든 편입되지 않고, 스스로 경계라 부르는 곳의 영역이 확장되길 바라며 사는 거죠.

자신을 질투가 원동력인 가수라고 한 말도 여전히 유효한가요?

질투의 대상은 너무 많죠. 최근 영화 <헤어질 결심>을 봤는데, 어떻게 이렇게 완성도 높고 세밀한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질투심이 생기더라고요. 앞으로도 질투하는 마음은 안고 가려고 해요. 마음 넓은 어른이 되어 세상만사를 쉽게 보면 창작자로서의 생명이 끝나는 것 같거든요.

이승윤이 지금에 이르게 된 동력은 무엇인가요?

미완성이라는 것. 사람으로서는 물론, 결과물도 잘 만들어내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서 아쉬움이 남았었는데, 그런 마음이 저를 이끈 것 같아요.

2023년 목표는요?

1월 말쯤 발표할 제 앨범을 듣고 스스로 만족하고 싶어요. 물리적 한계는 인정하지만, 창작자로서 할 수 있는 걸 다 해봤다는 만족감을 한번 느껴보고 싶어요.

재킷과 셔츠는 르메테크, 팬츠는 쿠 드 라 리베르테, 슈즈는 스톨른 걸프렌즈 클럽, 벨트는 저스트 카바, 네크리스·링·이어링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Contributing Editor : 양보연 | Photography : 정철환 | Stylist : 발코 | Hair : 김수철(이유) | Make-up : 김현경(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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