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품다, 부산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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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은 단단히 매듭지어 정리하고, 다가올 새로운 날을 위해 마 음을 비워야 할 시간. 미련 묻은 과거를 하나둘씩 보내니 마음이 헛 헛해진다. 어쩐지 스스로가 작아지는 것 같은데 바람이 등을 밀자 몸까지 움츠러든다. 차가운 공기가 모든 것을 꽁꽁 얼릴 때 불쑥 떠 올랐다. 남쪽으로 떠나자. 조금이라도 더 온기를 느끼고 싶어서, 가 슴 펴고 당차게 시작하고 싶어서 KTX를 타고 곧장 부산으로 달렸 다. 아, 역에 내리자마자 서울보다 포근한 기운이 느껴진다. 얼어붙 은 몸과 마음을 따스하게 녹일 곳, 부산에 닿았다는 것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부산 중심에 서다, 황령산 봉수대
전망대에 도착하니 숨 고르기는 뒷전, 눈이 바빠진다. 저 멀리에는 낙동강, 그 뒤에 쪼르르 자리한 크고 작은 집들, 질서정연한 도로 위 를 달리는 자동차가 보인다. 대강 훑었을 땐 꼭 멈춘 풍경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씩 꿈틀대는 중이다. 이 도시를 이 루는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인다. 새삼스레 느껴지는 생기 에 못 박힌 듯 한참을 서서 부산을 바라본다. 황령산의 자랑은 경치만이 아니다. 인터넷과 전화가 없던 조선 시 대, 중요한 통신수단이었던 봉수대가 황령산 정상에 남 아 있다. 부산에는 황령산 봉수대를 포함해 총 5개의 봉 수대가 존재한다. 부산 시내를 등지고 서니 고요히 잠 자는 남해가 눈에 들어온다. 적이 저 바다를 침범해 공 격 태세를 취하면 이곳에서 연기나 불을 피워 상황을 알 렸고, 그 소식은 서울 남산의 봉수대까지 차례차례 이어 져 임금에게 닿았다. 기상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나팔 을 불거나 징, 꽹과리 등을 쳐서 기별하기도 했다. 봉수 대는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곳에 있다. 다른 봉수대 와 높이가 많이 차이 나면 신호를 원활하게 전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곳 에서 외치는 말이 어떤 이의 귀에 들어갈까. 누군가에게 어떤 것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와 눈높이를 맞 춰야 한다고, 황령산이 말해주는 것 같다.
되찾은 빛, 부산시민공원
황령산 봉수대가 제 기능을 하던 시절, 여기는 평범한 농토이자 삶의 터전이었다. 일제강점기 전까진 그랬다. 1910년 토지조사사 업을 구실로 조선 땅을 빼앗은 일본은 1920년대에 부산 서면경마 장을 만들었다. 조선에 들어온 중산층 일본인의 소비·여가 욕구 에 부응해 오락 시설을 만든 것이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은 서면경마장에 10288기마부대를 설치해 땅을 군사 목적으로 이용 했다. 광복 후에도 땅은 원래 주인을 찾지 못했다. 일본이 철수한 자리에 주한 미군 하야리아(표기법은 ‘하이얼리어’) 부대가 주둔 했기 때문이다. 약 100년간 이방인의 소유였던 땅을 되찾게 된 것 은 시민 덕분이었다. 1995년을 기점으로 시민 단체가 모여 지속 적으로 하야리아 부대 주둔지 반환을 요구했다. 수차례 협상 끝에 드디어 2014년, 상처 입은 땅은 부산시민공원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공원은 과거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기존 하야리아 부대 건물 중 24개를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공원역사관을 세워 부산시민공원이 탄생한 과정을 여러 자료로 전시했다. 미군 부대 주둔기에 사용하 던 목재 전신주를 공원 한편에 모아 작품으로 만들기도 했다. 모두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걷는 사람들 얼 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공원이 선사하는 소중한 평화로움에 감사 하며 걷는다.
이어지는 시간, 나아가는 빛
tip 부산진구, 여기도 꼭 가 보세요
호천마을
문의 051-605-4522
전포카페거리
문의 051-605-4522
에디터 : 서지아 | 진행 : 남혜림(<KTX 매거진> 기자) | 사진 : 신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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