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반발 부른 한의사 초음파 기기 사용법 뜯어보니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은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오면서 의료계와 한의계에 파문이 일고 있다. 의료계는 한의학이 과학기술과는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발전한 분야라며 현대 의료기기를 활용할 전문지식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한의계는 한의학의 발전과정에서 신기술이 적극적으로 접목돼 왔다고 맞받아친다. 현대 의료기기를 활용하는 데 한의학적 원리가 충분히 적용됐다는 반박이다.
● “한의학 진찰법 ‘복진’ 요령으로 초음파 기기 사용”
지난 22일 대법원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환자를 진료했다가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된 한의사 A씨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A씨는 복부 불편으로 의원을 찾은 여성 환자에게 2010~2012년 기간 동안 68회에 걸쳐 초음파 촬영을 실시했다. 촬영 결과를 바탕으로 부인성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했다.
재판의 쟁점은 A씨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한의학적 원리가 어떻게 적용됐는지다. 대법원은 의료행위가 면허범위 내에서 이뤄졌는지 판단하기 위해 행위의 기초가 되는 학문적 원리가 무엇인지 살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한의학적 진찰법인 복진(腹診) 과정에서 초음파 기기를 보조적인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복진은 한의사가 손을 이용해 환자의 배 부위를 만지는 진찰법이다. 복진을 하는 요령으로 초음파 기기를 사용해 환자의 증상을 살폈다는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초음파 영상에서 나타난 신체 내부의 음영(陰影)을 관찰해 병을 발견한다.
A씨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환자에 대해 기체혈어형 자궁질환으로 변증(진단)했다. 이를 바탕으로 침술과 한약처방 등 한방 치료를 실시했다. 대법원은 A씨의 이러한 치료과정이 한의학적 원리에 기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은 환자에게 투자법침술, 경혈침술, 복강내침술, 경피적외선조사요법, 한약처방 등 한방치료행위를 했다"며 "이와 같은 한방치료행위의 전제가 된 진단행위 역시 한의학적 원리에 기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에는 반대의견도 덧붙여졌다. 안철상, 이동원 대법관은 판결문에서 반대의견을 통해 "초음파 진단기기는 해부학적 지식을 토대로 인체의 특정 부위를 진단·치료하는 양의학적 원리에 부합하지, 인체를 하나의 통일체로 보고 각 부위가 긴밀한 연계성을 가지는 한의학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복진과 같은 기술로 진단기기를 사용했다는 주장에 대해선 "초음파 영상과 한의학적 진단 사이에 논리적 상관관계가 연구돼 검증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초음파 기기를 사용해 환자의 자궁내막의 두께를 관찰한 행위에 대해선 “전형적인 산부인과의 초음파 검사방법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 의사단 강한 반발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했지만 진단 제때 못 해”
대법원 판결에 의사사회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판결이 나온 날 오후 대법원 앞에서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삭발했다. 의협과 대한방사선사협회, 대한임상병리사협회는 합동 성명을 통해 “초음파 진단기기를 통한 진단은 영상 현출과 판독이 일체화돼 검사자의 고도의 전문성과 숙련도를 필요로 하는 의료행위”라며 “의대에서 영상의학과 관련 이론 및 실습을 거친 의사만이 전문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요 의사단체는 한의사 A씨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면서 질병을 제때 진단하지 못한 점도 꼬집는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이날 성명문을 통해 “이 사건 한의사는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68회의 초음파 검사를 했음에도 환자의 자궁내막암 2기를 진단하지 못해 조기에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제대로 활용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또한 "산부인과에선 질식초음파를 시행하는 등 의학에서도 초음파 검사는 해당 분야 전문 수련을 받은 의료진이 분야별로 실시하고 있다"며 "단순히 교과과정에 초음파 검사 교육을 받았다고 충분한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반문했다.
한의계는 초음파 진단기기와 같은 현대의료기기 활용을 위해 적극적인 교육과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반박했다. 고동균 대한한의영상학회 회장은 “유관학회를 중심으로 한의사의 영상 진단기기 활용을 위한 연구와 보수교육이 실시되고 있다"며 "현대 한의학은 과학화가 이뤄지고 있으며 이에 맞춰 새로운 기술을 안전하게 활용하기 위한 학계 차원의 노력 또한 활발하다"고 강조했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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