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과 만난 왁킹…립제이 “왁킹 춤사위, 현의 소리와 닮았다”

2022. 12. 2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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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롯데콘서트홀 송년음악회
조진주 연주 ‘치고이너바이젠’에 왁킹
“8분 내내 밀당한는 드라마틱한 음악
왁킹의 춤사위, 현의 소리와 닮아 있어”
지난해 ‘스트릿 우먼 파이터’(Mnet)를 통해 대중적 인기를 얻은 댄서 립제이가 오는 31일 롯데콘서트홀 송년 음악회를 통해 클래식과 악킹의 만남을 시도한다. 립제이는 “클래식은 악장이 전개될 수록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을 하는 곡들이 많다는 점에서 왁킹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롯데문화재단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현란하고 화려한 바이올린 연주에 맞춰 댄서 립제이의 두 팔이 시원하게 뻗어오른다. 예사롭지 않은 단 한 번의 동작에 관객들의 함성이 커졌다. ‘빨리감기’라도 한 듯한 휘황찬란한 회전 속도, 안무와 한 몸처럼 맞아떨어진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 2017년 러시아에서 열린 ‘왁킹 쉐어링’ 행사의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 237만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8분 내내 밀당을 하면서 사람을 홀리게 만드는 곡이에요. 강렬하다 공허해지고, 열정적이다 차가워지고, 다시 로맨틱해지는 느낌이에요. 그런 점에서 ‘치고이너바이젠’은 왁킹이라는 춤과 잘 맞아요.”

이 무대가 2022년 12월의 마지막 날 서울의 대표 클래식 홀로 찾아온다. 롯데콘서트홀의 송년음악회(12월 31일)를 통해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가 연주하는 ‘치고이너바이젠’에 맞춰 립제이는 또 한 번 “이색적인 도전”에 나선다.

“스트리트 댄스는 장소의 규제가 엄격하지 않아 정말 다양한 공간에서 춤을 췄어요. 그런데도 클래식 홀에서 클래식 연주자들과 하는 무대는 아직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어요.”

‘새로운 도전’이 될 무대 준비에 한창인 립제이는 서면인터뷰를 통해 “원래부터 이 공간에 녹아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미 전 세계가 인정하는 댄서였으나, 립제이가 대중에게 더 알려진 것은 지난해 대한민국에 춤바람을 몰고 온 ‘스트릿 우먼 파이터’(Mnet)를 통해서였다. 립제이는 이 프로그램의 초반 인기를 견인한 일등공신이다. 첫 회 방송에서 보여준 품격있는 왁킹 배틀을 통해 이른바 ‘스우파 입덕 멤버’로 자리매김했다. 립제이의 ‘치고이너바이젠’ 영상이 화제가 된 것도 ‘스우파’를 통해 뒤늦게 팬이 된 시청자들이 무한 알고리즘을 탔기 때문이다.

댄서 립제이 [롯데문화재단 제공]

그의 춤은 모든 음악 장르를 아우른다. “각각의 음악이 가진 분위기가 댄서에게 무한한 이야기를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립제이는 “왁킹의 근본이 되는 언더그라운드 디스코 음악들을 들어보면 템포나 구성이 조금 다를 뿐이지, 클래식이 주는 서사와 비슷한 호흡의 곡이 많다”고 말했다. 이런 곡들은 대부분 평균 7~8분, 길게는 12분까지 음악이 이어진다. “왁킹의 진면목은 긴 호흡의 곡에서 드러나기에” 립제이는 클래식 음악 역시 왁킹과 어울리는 음악이라는 생각이다. “클래식도 악장이 전개될 수록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을 하는 곡들이 많아요. 그런 점에서 왁킹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느꼈어요.” 특히 그는 “왁킹의 춤사위는 악기로 치면 현의 소리와 많이 닮아있다”고 말했다.

“왁킹은 팔과 손동작을 많이 쓴다는 점에서 드라마틱한 감정표현과 음악의 선율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매력이 있어요. 왁킹은 곡의 표현력이 드라마틱 할수록 그 매력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춤이에요.”

이번 송년 음악회를 통해 선보일 ‘치고이너바이젠’ 역시 왁킹의 강점을 보여줄 수 있는 음악이다. 립제이는 “바이올린이 주인공인 이 곡에는 현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승전결이 다 들어있다”고 말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귀를 사로잡는 미친 연주력, 즉 테크닉도 중요한 곡이더라고요. 그 소리들을 제 춤의 테크닉으로 표현해 융화할 수 있다면 정말 멋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라이브 연주에 맞춰 하는 공연인 만큼 구간마다의 구성이 이전보다 더 명확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을 많이 했어요.”

변수가 많은 라이브 연주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댄서에게 오차 없는 동작과 리듬감은 필수인데, 라이브 연주에선 돌발 상황이 벌어질 우려도 있다. 립제이는 그렇기에 “현장 상황에 따른 즉흥력과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며 “그날 연주자들의 호흡과 흐름을 온전히 수용하고, 준비한 퍼포먼스를 유연하게 녹일 수 있도록 모든 촉각과 안테나를 열어둘 예정이다”라고 했다.

송년음악회의 지휘를 맡은 최수열 지휘자(부산시향 예술감독)는 “‘스우파’를 빼놓지 않고 시청했고, 클래식과 임팩트가 센 댄서와의 조합은 늘 꿈꿔온 일인데 결국 현실이 됐다”며 “립제이의 몸짓이 오케스트라 음악과 조진주의 솔로 연주를 통해 시너지를 낼 거라 기대한다. 연주의 방향은 이미 세워져있지만, 그 안에서의 자유로움을 매우 즉흥적으로 만들어가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열여덟 살에 본격적으로 댄서의 길에 접어든 립제이는 ‘배틀의 여왕’으로 불리며 전세계 언더그라운드 댄스 신에서 주목받았다. 한 수 앞을 내다보며 어떤 음악에서든 주도권을 쥐고야 마는 도도하고 우아한 왁킹 댄서는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이 무대를 통해 이질적인 두 세계의 징검다리가 됐다.

“춤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언어예요. 춤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매번 달라지고, 또 너무나도 많아요. 이번 공연은 새로운 시도만으로 의미가 있어요. 새로운 것이 많아질수록 예술의 형태는 진화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좋은 음악과 춤은 눈과 귀를 황홀하게 하잖아요. 클래식과 대중문화가 사실은 그렇게 멀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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