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값 내렸다는데 붕어빵은 금값이네
[주간경향] ‘2마리=1000원’. 요즘 길거리에서 파는 붕어빵 값이다. 5년 전에 비해 2배가량 뛰었다. 밀과 같은 국제 곡물의 가격 급등으로 재룟값이 크게 오른 탓이다. 코로나19 이후 공급망 차질과 작황 부진, 전쟁과 환율 상승 등 다양한 이유로 치솟은 국제 곡물가격이 몇 개월의 시차를 두고 국내 식품가격에 반영되고 있다. 다만 최근 곡물가격은 뚜렷한 하향세다. 추세대로라면 국내 식품가격도 곧 떨어져야 하는 게 맞다. 전문가들 전망은 다르다. 내년에도 상당기간 높은 가격대를 유지하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붕어빵, 왜 비싸졌나
붕어빵의 주재료인 밀가루와 팥, 설탕 등이 5년 전에 비해 20~100% 올랐다. 12월 14일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전국 주요 도시 노점에서 파는 붕어빵의 주재료 5가지 가격은 5년 전보다 평균 49.2%, 지난해보다 18.4%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팥(800g·수입산)은 2017년 3000원에서 올해 6000원으로 약 100% 올랐다. 같은 기간 밀가루(1㎏)는 1280원에서 1880원으로 46.9% 올랐고, 설탕(1㎏)은 1630원에서 1980원으로 21.5% 상승했다. 식용유(900㎖)와 액화석유가스(LPG·1㎏) 가격도 각각 33.2%, 27.4% 올랐다. 이동훈 한국물가정보 선임연구원은 “지금은 붕어빵 가격이 2마리에 1000원 수준이다. 1000원에 4~5마리였던 5년 전과 비교해 2배 안팎 올랐다. 실제 반죽 등에 쓰는 재료량과 품목별 추가 재료를 감안하면 더 큰 차이가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국제 곡물가격이 오른 영향이 크다. 국제 곡물가격은 코로나19 대유행과 미·중 분쟁 등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차질, 남미 등의 작황 악화로 2020년 하반기부터 상승세로 타기 시작했다. 특히 올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각국의 식량 수출규제 조치, 원·달러 환율 상승 등으로 오름폭이 커졌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매달 발표하는 세계식량가격지수(2014∼2016년 평균=100)는 전쟁 직후인 올해 3월 159.7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올해 2분기 국제 곡물 선물가격지수(2015년=100)는 전년 동기(153.0)보다 26.3% 오른 193.3이었다. 전 분기(169.8) 대비로는 13.8% 상승해 2012년 3분기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곡물 수입 의존 한국, 수입과 유통은
한국은 세계 7위의 곡물 수입국이다. 지난해 곡물수요량은 2132만t. 이중 429만t은 국내에서 생산하고 나머지는 수입에 의존한다. 식량자급률은 45.8%이지만, 품목별로 쌀이 92.8%를 차지하는 반면 밀과 콩은 각각 0.8%, 30.4%에 불과하다. 사료용 곡물은 전량 수입한다. 국제 곡물가격 변동에 따라 가공식품 등 식품가격 등락도 덩달아 커지는 취약한 구조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제 선물가격 기준으로 국내 제분·사료 가공업체들이 들여오는 곡물은 식용과 사료용으로 구분된다. 선물가격은 통상 3~6개월 후 수입단가에 반영된다. 지난 1~2분기 고점을 보인 선물가격 영향으로 최근 곡물 수입단가는 높은 수준이다. 농업관측센터 국제 곡물 12월호에 따르면 식용 곡물의 수입단가지수(2015년=100)가 2분기 163.2에서 3분기 192.4, 4분기 193.7로 큰 폭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수입 곡물의 유통과정을 보면, 밀, 옥수수, 콩 등 식용 곡물은 (밀을 밀가루로 만드는) 제분이나 (가공식품 감미료로 쓰는 물엿·포도당 등의 당류인) 전분당을 통해 밀가루, 전분당, 식용유 등의 기초식품소재로 가공된다. 이중 상당 부분은 제면, 제빵, 제과, 두부, 장류 등 재가공 단계를 거친 후 외식산업이나 식품제조업 등에 재투입되거나 가정에서 최종 소비된다. 사료용 수입곡물(옥수수·밀·대두박 등)은 배합사료로 1차 가공한 후 축산업의 주요 투입재로 사용한다. 이후엔 도축·가공 등의 과정을 거쳐 축산물로 소비된다. 김종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입 곡물은 국내에서 1~2개월의 1차 가공과 재가공 단계를 거쳐 소비자에게 유통된다. 이 과정에서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원화로 대금을 지불해야 하는 업체들의 부담이 늘어날 수도 있다”고 했다.
라면, 빵, 과자 등 가공식품 업계의 가격 인상도 잇따르고 있다.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팔도 등 대표적인 라면업체들은 밀가루, 팜유 등 주요 수입 원자재와 물류비 등 생산 비용 급증을 이유로 지난 8월부터 라면 출고가를 줄줄이 인상했다. 12월부터 빙그레 아이스크림 편의점 가격이 10% 정도 오르는 등 우유 원유가격 인상에 따라 우유가 들어가는 아이스크림과 빵 등의 가격도 오르는 추세다. 편의점 코카콜라(LG생활건강)의 경우 내년 1월부터 350㎖ 캔 가격이 1900원에서 2000원으로 100원(5.3%) 오른다. 1.5ℓ 페트 제품도 3800원에서 3900원으로 100원(2.6%) 오른다.
통계청 발표(12월 2일)에서 11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에 비해 5.0% 올라 지난 4월(4.8%) 이후 가장 낮은 상승률을 보였다.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가공식품의 경우 9.4% 상승하며 11월 기준으로 2008년 이후 14년 만에 최대 폭으로 상승했다. 전체 73개 품목 중 31개 품목이 10% 넘게 올랐다. 식용유가 43.3% 올라 전달(42.8%)보다 상승폭을 키웠고 밀가루, 치즈는 30% 넘게 올랐다. 8.6% 상승률을 보인 외식은 39개 중 11개 품목이 10% 넘는 상승률을 기록했다. 자장면(13.3%)이 전달(13.2%)보다 더 오르며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김밥과 외식 라면, 햄버거, 해장국, 떡볶이, 칼국수, 돈가스, 짬뽕, 갈비탕, 외식 삼겹살도 10%를 웃도는 상승률을 보였다.
곡물값 하락에도 식품가격 고공행진 왜
국제 곡물가격 급등에 따른 국내 영향이 본격화되고 있다. 정작 국제 곡물가격은 전쟁 직후인 지난 3월 이후부터 8개월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12월 3일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11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전월(135.9)보다 소폭 하락한 135.7로, 올해 1월(135.6) 수준으로 떨어졌다. FAO는 24개 품목의 국제가격 동향을 모니터링해 곡물, 유지류, 육류, 유제품, 설탕 등 5개 품목군별로 식량가격지수를 매월 집계해 발표한다. 곡물의 경우 러시아의 흑해 곡물 수출협정 복귀와 미국의 물류 여건 개선 등으로 밀과 옥수수의 가격이 떨어졌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지난 7월 유엔과 튀르키예의 중재 하에 전쟁 이후 막힌 흑해 항로의 안전을 보장해 양국의 곡물과 비료를 수출할 수 있도록 협정을 맺었다. 이어 11월에는 4개월 연장에 합의했다.
국제 곡물 선물가격도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다.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의 11월 국제 곡물 선물가격지수는 161.9로 전월 대비 0.8% 하락했다. 밀의 선물가격은 t당 300달러로 한 달 전에 비해 6.1%, 옥수수는 t당 263달러로 한 달 전에 비해 2.5% 각각 떨어졌다.
분기별로도 하향세가 뚜렷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전망한 4분기 국제 곡물 선물가격지수는 162.2로 전 분기(164.3) 대비 1.3% 하락했다. 내년 1분기는 이보다 더 낮아진 162.0으로 전망됐다. 세계 경기 침체와 달러화 강세에 따른 수요 부진 우려, 국제유가 하락 전망 영향, 흑해 곡물 수출 협정 연장 합의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줄 것으로 분석된다.
곡물가격 하향세에도 불구하고 가공식품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은 낮다. 우선 라면 등 식품 가공업체들이 그간 꾸준히 오른 곡물가격 인상분을 식품가격에 반영하지 않았다는 분석이 많다. 올해 고물가 우려가 사회 전반적으로 퍼진 상황에서 곡물가격 인상분만큼 가격을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았다는 의미다. 국내 식품업계의 경우 제조원가에서 원재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53.8~78.4%에 달한다. 곡물가격이 오르고 재료비 부담이 늘면 가격 상승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농심의 경우 2분기 매출이 7562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16.7%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은 43억원으로 무려 75.4%나 감소했다. 올 하반기부터 가격을 올린 일부 품목의 경우 국제 곡물가격 흐름과 무관하게 가격대를 유지할 공산이 크다. 가공식품 특성상 한 번 가격을 올리면 다시 낮추는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전쟁 이후 운송비와 인건비 등 제반 비용이 크게 오른 것도 식품 가격을 내리기 힘든 조건이다.
사료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사료업계 1위인 농협이 가격 인상 시기를 최대한 지연시키고 인상금액을 최소화하는 등 사료 시장에서 가격 견제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원가 변동분을 비교적 빠르게 반영할 수 있다. 실제 농림축산식품부는 12월 19일부터 농협 배합사료 출고분을 포대(25㎏)당 500원씩 평균 3.5% 인하했다. 배합사료 원료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수입 곡물의 도입가격이 7월 고점 이후 하락세로 돌아섰다. 9~10월 급등했던 원·달러 환율도 11월 이후 안정세를 보이면서 가격 인하 요인이 발생했다고 농식품부는 설명했다. 농협 사료의 가격 조정에 따라 다른 민간 사료업체들의 가격 조정도 뒤따를 전망이다.
지금의 식품가격 상승세는 내년에도 상당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곡물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지만 코로나19 확산 이전에 비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특히 전쟁 이후 곡물가격이 폭등한 영향이 이제 본격적으로 국내 식품업계에 미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식품업계 특성상 당장의 가격 하락을 기대하긴 힘들고 그간 오른 운송비 등 가격 인상 요인들을 감안할 때 내년에도 상당기간 높은 가격대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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