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디알로고] “백신이 인류를 구원하리라” 파스퇴르 탄생 200년
처음으로 병원체 배양, 백신 제조
광견병, 콜레라, 탄저병 백신 개발
주류, 우유의 저온살균법도 창시
”과학으로 전쟁과 무지 이기자” 주장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1632년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란 책에서 당시 주류 이론이던 천동설을 배격하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했습니다. 갈릴레이의 ‘디알로고(Dialogo·대화)’처럼 심층 인터뷰를 통해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부터 세상을 구한 것은 백신이었다. 27일은 백신의 선구자인 프랑스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년 12월 27일~1895년 9월 28일)가 탄생한 지 꼭 200년이 되는 날이다. 세계 최초의 백신은 영국 의사인 에드워드 제너가 개발한 천연두 백신이지만, 그는 사람이 아니라 소가 걸리는 우두(牛痘)의 병원체를 이용했다. 반면 파스퇴르는 같은 질병의 병원체를 분리 배양해 백신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현대 백신의 시조(始祖)로 불린다.
한동안 과학은 일부 천재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와 달리 파스퇴르는 줄곧 과학 연구는 현실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양한 백신을 개발했을 뿐 아니라, 맥주와 와인, 우유, 양잠 산업을 위기로 내몬 감염 문제를 해결해 산업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파스퇴르는 왜 끊임없이 현실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좌충우돌 했을까. 그간 과학사 연구를 토대로 파스퇴르와의 가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제약산업 발전 이끈 와인 연구
–처음부터 과학자가 되려고 했나.
“아니다. 처음에는 미술에 관심이 컸다. 하지만 나중에 직업을 고려해 과학으로 진로를 수정하고 프랑스 최고의 자연과학대학인 고등사범학교에 진학했다.”
–첫 시험 성적도 좋았는데 재수를 했다고 들었다.
“첫 시험에서 15등을 했는데 충분히 입학할 점수였지만 내가 만족할 수 없었다. 1년간 부족한 물리학 공부를 더 하고 다시 시험을 봐서 1843년 4등으로 입학했다. 물리학, 화학 박사학위는 1847년에 받았다.”
–박사 학위 후 가장 먼저 연구한 게 와인이었나.
“그렇다. 와인병을 보면 침전물이 보인다. 바로 주석산(酒石酸)이다, 과일이 발효할 때 생기는 침전 결정이다. 주석산인 타르타르산과 라세미산은 성분과 구조가 똑같은데 빛을 비추면 진동하는 방향이 달랐다.”
–무슨 말인가. 성분과 구조가 같은데 다르다니.
“두 결정을 분석해보니 합성한 라세미산은 장갑의 오른쪽, 왼쪽처럼 거울대칭 구조가 있었다. 반면 타르타르산은 모두 오른쪽 장갑 구조였다. 이로 인해 타르타르산에 수평 편광을 비추면 늘 한쪽으로 휘고 라세미산은 똑바로 진행했다. 거울대칭의 이른바 광학 이성질체를 확인한 것이다.”
–거울대칭 구조는 어떤 의미가 있나.
“나중에 후배들이 엄청난 의미를 찾아냈다. 1960년대 호흡기질환 치료제로 개발된 탈리도마이드는 심한 입덧을 완화시키는 용도로도 사용됐지만, 유럽과 캐나다에서 수천 명의 기형아를 낳는 끔찍한 부작용을 가져왔다. 거울대칭 구조 중 한쪽은 약이지만 다른 쪽은 독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약이 되는 쪽만 골라 쓴다고 들었다. 내가 제약산업 발전에 기여한 셈이다.”
◇“질병은 세균 감염에서 비롯된다”
–지난 16일 국제 학술지 ‘랜싯 미생물’에 실린 논문을 보니 파스퇴르 박사의 연구를 다섯 시기로 나눴다. 결정 연구(1847~1857) 이후 두 번째 시기(1857~1865)는 발효 연구에 집중했다는데.
“당시 과학자들은 생명체가 저절로 생긴다는 자연발생설을 믿었다. 고기를 내버려 두면 저절로 구더기가 생긴다는 식이다. 1861년에 ‘자연발생설 비판’을 출간해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 유명한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이 생각난다.
“플라스크에 고깃국물을 넣고 끓였다. 플라스크 끝을 백조의 목처럼 늘리고 가운데 휘어진 곳에 물을 넣었다. 그러면 공기는 통해도 외부 병원체가 침투하지 못했지만, 목을 깨면 미생물이 증식했다. 고깃국물 자체에서 미생물이 생기는 게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질병이 병원체가 유발한다는 이른바 ‘세균론(germ theory)’이 정립된 것인가.
“그렇다. 1865년부터 5년간 양잠 산업의 문제가 세균 감염 때문임을 밝혀냈고. 다음 5년은 맥주와 와인의 품질이 떨어지는 것 역시 나쁜 세균이 원인임을 알아냈다. 이후 섭씨 50~60도로 살균하면 나쁜 세균이 없어지는 것도 알아냈다.”
–파스퇴르 하면 떠오르는 저온 살균법(pasteurization)이 이때 정립됐나.
“저온 살균법은 우유에도 적용돼 이후 신생아 수백만명의 목숨을 구했다고 들었다. 한국에는 아예 내 이름을 딴 저온살균 우유가 시판되는 것을 봤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
–파스퇴르 박사의 마지막 시기(1875~1895)는 백신 개발기로 규정할 수 있어 보인다.
“백신은 우연히 개발했다. 1879년에 콜레라에 걸린 닭에서 균을 분리해 배양했다. 이를 다른 닭에 접종해 상태를 보기로 했는데 여름 휴가로 실험이 늦어졌다. 뒤늦게 배양해둔 콜레라균을 닭에 접종하니 병에 걸리지 않았다. 새로 배양한 균을 주면 다 죽는데 처음에 오래된 균을 접종했던 닭은 이것도 이겨냈다.”
–약한 콜레라균이 백신이 된 것인가.
“그렇다. 코로나 백신도 독성을 없앤 바이러스나 바이러스의 일부 단백질, 유전자로 만들지 않나. 같은 효과를 본 것이다.”
–백신은 이미 80년 전 영국 의사 제너가 천연두 예방용으로 개발했으니 처음은 아니지 않나.
“물론이다. 다른 점은 제너는 소에서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병원체를 사람에 썼다면 나는 의도적으로 같은 병을 유발하는 병원체를 분리, 배양해 백신으로 썼다는 점이다. 우연한 발견으로 보이지만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 나중에 내가 남긴 이 말이 유명해졌다고 들었다.”
–광견병 백신도 이 시기에 개발됐나.
“광견병이 유발하는 바이러스는 당시 현미경으로는 볼 수 없었다. 병원체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일단 광견병에 감염된 토끼의 척수에 있다고 보고 분리해서 개에게 실험했다. 다 낫더라.”
–사람에게 처음 광견병 백신을 접종한 것은 언제인가.
“1885년 7월 6일 한 어머니가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물린 아홉 살 아들을 데려왔다. 의사들은 이미 손쓸 수 없다고 했다. 마지막 방법으로 백신을 접종했다. 소년 조세프 마이스터를 살린 후 300명 넘게 백신을 접종했는데 한 명을 빼고 다 살아났다.”
–미국 역사가인 제럴린 린 기슨은 “파스퇴르가 천재였다면 그것은 비범한 실험 기술과 집념에 가까운 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험에 그토록 집착한 이유가 있나.
“언제가 ‘마음의 가장 큰 혼란은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했다. 선입견을 배제하고 실험 결과를 해석하면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 아무리 내 생각이 옳아도 반복 실험을 통해 재확인했다. 그래야 누구나 믿을 수 있다.”
◇“과학이 무지와 전쟁을 이긴다”
–파스퇴르 박사는 세 딸을 병으로 잃고 말년에는 뇌출혈로 몸 한쪽이 마비되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연구를 계속했다고 들었다.
“미국 미생물학자인 르네 쥘 뒤보는 내가 과학적 미생물학을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연구하는 조건이 어떨지라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상상력과 의지가 요구하는 대로 바꿨다’고 했다. 뒤보가 말한 대로 나는 오로지 과학에만 헌신한 하인과 같았다. 엄밀한 과학만이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험과학이 사회에 얼마나 중요하지 거듭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인가.
“그렇다. 과학과 과학적 방법만이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실험실은 무엇보다 고귀한 기관이며, 부와 미래를 낳을 성전이다’라는 말도 남기지 않았나.”
–국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에서 아들이 다시 전한 당신의 말도 같은 내용이었다.
“그날 내 아들 장 밥티스트 파스퇴르가 ‘과학과 평화가 무지와 전쟁을 이기고, 국가들이 파괴가 아니라 건설을 위해 통합할 것이며, 미래는 고통 받는 인류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것’이라고 한 내 말을 옮겼다. 나의 신념이다.”
–당신의 이름은 1888년 문을 연 파스퇴르 연구소에 길이 남았다.
“광견병에 걸린 사람을 구했다고 튀르키예의 술탄과 러시아 황제, 프랑스의 기업가와 은행가들이 엄청난 돈을 기부했다. 그보다 나는 이름 없는 수만명이 정성을 보낸 것이 더 고맙다. 현재 한국을 포함해 25국에서 2만3000여명이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질병과 싸우고 있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10명도 배출했다.”
–파스퇴르 연구소가 있는 프랑스가 이번에 코로나 백신을 개발하지 못했다.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지난해 4월 사이언스지에 왜 프랑스가 코로나 백신을 개발하지 못했는지 분석한 논문이 실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2011~2018년 영국과 독일이 생명과학과 의학 연구 투자를 각각 16%, 11% 늘렸는데 프랑스는 오히려 28% 감소했다. 코로나바이러스 구조를 해독하는 데 필수적인 초저온현미경도 영국과 독일은 수십대씩 있지만 프랑스는 단 3대뿐이다. 과학에 투자하지 않으면 위기를 이겨내지 못한다.”
◇광견병에서 살아나 무덤을 지킨 소년
–참, 광견병 백신으로 목숨을 구했던 소년이 나중에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당신의 무덤을 지켰다고 들었다.
“내 시신은 처음 노트르담 대성당에 매장됐다가 나중에 파스퇴르 연구소 지하 성당으로 이장됐다. 아홉 살 때 처음 광견병 백신을 맞고 살아난 조세프 마이스터가 이 연구소의 수위로 근무했다. 안타깝게도 2차대전 중 자살했다고 들었다.”
–독일군이 당신의 무덤을 열라고 하자 이를 참지 못해 자살했다는 말이 있다.
“그런 말이 돌았지만 2013년 네이처에 하드워 휴즈 의학연구소 과학자들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사실이 아니다. 당시 연구소 과학자가 남긴 기록을 보니 마이스터는 피난을 간 가족이 포격을 당했다고 믿고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고 한다. 사실 가족은 무사했는데 그 사실을 알 방법이 없었다. 나를 통해 과학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일부러 신화를 만들지 말았으면 한다.”
☞파스퇴르
프랑스의 생화학자이며 로베르트 코흐와 함께 세균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질병과 미생물의 연관 관계를 밝혀냈고, 분자의 광학 이성질체를 발견했으며, 저온 살균법, 광견병, 닭 콜레라, 탄저병의 백신을 발명했다. 프랑스 과학 최고 명문인 고등사범학교를 나와 스트라스부르대학 화학과 교수와 릴대학의 이과대학 학장. 고등사범학교의 이학부장을 역임했다. 평생 과학연구로 인류에 기여한 인물로 그의 부고가 신문 1면을 도배할 정도의 인기를 얻었지만 그의 전기를 쓴 힐라일 커니는 “과학 논쟁에서 상대를 신랄하게 몰아붙이고 거만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체제 순응적이기도 한 모순덩어리”라고도 말했다.
참고자료
Lancet Microbe, DOI: https://doi.org/10.1016/S2666-5247(22)00324-X
Science, DOI: http://science.org/doi/10.1126/science.abj1190
Nature, DOI: https://doi.org/10.1038/50203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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