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자장 우리 엄마” 노래 불러주던 아들, 한번만 꿈에 와줘…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주저하지 않던 7남매의 둘째
꿈에서라도 만나 묻고 싶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의 이야기를 차례로 싣습니다. <한겨레>와 <한겨레21>은 우리가 지켰어야 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이 사라진 이후 가족의 삶은 어떠한지, 유가족이 알고 싶은 진실이 무엇인지 기록할 예정입니다. 못다 한 이야기를 들려줄 유가족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전자우편 bonge@hani.co.kr 또는 <한겨레21> 독자 소통 휴대전화(010-7510-2154).
스물여덟 살 경철은 엄마 박미화(51)씨의 이름을 부르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엄마’가 이름이 아니잖아. 엄마도 이름이 있잖아.” 엄마가 밤새 식당 일을 하러 집을 나서면 “미화, 잘 갔다와. 수고해”라고 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침에 집에 오면 “미화 왔어? 얼른 와. 팔베개해줄게” 하며 엄마 곁을 파고들었다. 엄마가 쑥스러워 가라고 해도 “싫어, 엄마하고 있을 거야” 하며 자장가를 불렀다. “자장자장 우리 엄마….” 엄마에게 경철은 “아들이자, 친구이자, 버팀목이자, 어깨”였다. ‘미화’에게 경철은 ‘모든 것’이었다.
바리스타, 게임 제작, 미용사…꿈도 많았는데
경철은 일곱 남매 중 둘째였다. 한 살 위인 누나와 경철, 여동생 경선(25)씨는 일하러 다니는 엄마를 대신해 어린 동생 넷을 키웠다.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이고, 목욕을 시키다보니 남매끼리는 투덕거리면서도 깊은 정을 쌓아갔다.
“오빠는 정말 꿈이 많았어요.” 경선씨가 기억하는 경철은 ‘강단 있는 사람’이다.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주저하지 않았다. 학원에 다니면서 게임 제작도 공부했고, 미용사 자격증도 땄다. 바리스타에 관심을 가진 뒤로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사들인 기계를 조립해 집에서 커피를 추출했다. 카페 차릴 비용을 모으기 위해 낮엔 친구와 푸드트럭을 운영하고, 밤엔 친구가 창업할 가게 직원으로 일하기로 했다.이런 경철의 꿈에 남매는 의기투합했다. 다섯째 동생 단비(15)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함께 일하겠다 했다. 경선씨와 가볍게 술을 마시면서“엄마의 노후자금을 만들어주자”고 말한 것도 경철이었다.
‘그날’ 경철은 엄마에게 가족여행을 가자고 했다. 계획도 줄줄 늘어놨다. “가족사진도 찍고, 우리 식구 다 노래방에 가서 녹음테이프도 만들자.” 엄마는 “그러자, 다 하자”고 했다. 그날 저녁 7시20분께, 친구 연락을 받고 경철은 집을 나섰다. 엄마는 경철의 ‘애교’에 5만원을 용돈으로 건넸다.
10월29일 밤 11시24분께, 엄마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여기 이태원인데요. 사고가 났어요. 자제분이 쓰러졌는데 같이 온 지인이 있나요?” 모르는 사람이 비밀번호가 걸려 있지 않은경철의 휴대전화로 걸어온 전화였다. “친구 둘과 같이 갔는데요.” 엄마는 전화를 끊었다. 순간 텔레비전에서 이태원 사고 소식이 나왔다. 엄마는 이태원에 함께 간 경철의 친구에게 전화했다. 경철과 헤어졌다는 친구도 ‘모르는 사람이 경철의 휴대전화로 전화해선 경철이 심정지 상태라 심폐소생술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고 전했다.하지만 경철의 친구도 지하에 갇혀 있었고 뒤늦게 경철이 있다는 곳에 가봤지만 그사이 어디로 옮겨진 건지 경철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 뒤론 연락이 닿지 않았다. “괜찮을 거야.” 엄마는 식당에서 일하며 혼잣말로 되뇌었다.
아들의 몸 만지려하자 “만지지 마세요”
다음날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발을 동동 구르던 가족은 경철이 경기도 성남중앙병원 안치실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경철의 얼굴과 귀는 온통 멍들어 있었다. 가슴엔 ‘순15’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엄마가 놀라 경철의 몸을 만지려 하자 경찰과병원 관계자가 “만지지 마세요”라고 했다. “유일하게 오빠의 몸 구석구석을 볼 기회였는데, 그 기회마저 빼앗겼어요.”(여동생 조경선씨) 넋이 나간 가족은 저녁 8시에야 가까스로 경찰 조사, 병원 행정 절차를 마치고 경철을 서울로 데려왔다.
함께 갔던 친구 말에 따르면, 경철은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골목에서 특수분장을 마친 뒤 한산한 큰길로 나가 저녁을 먹으려다가 사고를 당했다. 밤10시14분, 친구는 눈앞에서 사라진 경철에게 전화해 “어디야? 밥 먹자”고 했고 경철은 “알았어, 갈게”라고 대답했지만 친구는 인파에 밀려 지하로 굴러떨어졌다. 그사이 옆에 있던 또 다른 친구도 순식간에 인파에 휩쓸렸다. 경철과 다른 친구는 결국 사고를 당했다. 유품으로 건네받은 경철의 지갑엔 엄마가 준 5만원이 그대로 있었다. “그거 써보지도 못하고, 밥도 못 먹고….”(엄마 박미화씨) 분장한 뒤 활짝 웃고 있는 경철의 사진은, 지금 엄마의 휴대전화 배경화면이다.
장례 뒤 가족에겐 의문이 남았다. 경철이 친구와 헤어진 곳과 심폐소생술을 받는다고 했던 카페는 한 골목 떨어져 있다. 경철이 왜 거기 있었는지, 경철이 성남중앙병원으로 이송될 땐 어떤 상태였는지 가족은 알 수 없었다. 확인된 유일한 사실은 경철이 성남중앙병원에 10월30일 아침 6시30분에 도착했다는 것뿐이다. 한 달 가까이 지난 11월28일부터 경선씨는 병원과 경찰, 소방청 등에 전화해 물었지만 모두 “모른다”고만 답했다. “현재 단계에선 정보공개요청을 하셔도 열람이 될지 안 될지 제가 알 수가 없어요.” 울먹이며 전화하는 경선씨에게 경찰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수시로 가족의 가슴에 비수가 꽂혔다. ‘그날’로부터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엄마는 경철의 동생들과 함께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찾았다. 비닐로 덮인 국화꽃 모습이 처참해 엄마는 “가슴이 딱 멎는 듯”했다. 추모 글귀를 한참 바라보다가 가족이 떠나려는 찰나, 행인들의 말이 들렸다. “이거 치울 때 안 됐나? 왜 이렇게 오래 두는 거야.” 엄마는 그날 울면서 집에 돌아왔다.
이태원역에 갔다가 울면서 돌아온 엄마
경선씨는 오빠와 하루에 다섯 번 넘게 통화할 정도로 단짝이었다. 한번은 한창 바쁠 때 연락이 와서, 경선씨가 귀찮은 내색을 했다. 한동안 경철은 전화하지 않았다. “(오빠 친구에게 들으니 그때) ‘경선이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이랬대요. 친구가 연락해보라고 하면 ‘경선이 지금 바빠’ 이러면서 연락을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경선씨는 이제야 가족과 한마디라도 더 나누고 싶어 했던 오빠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동생 단비는 경철에게 편지를 썼다. ‘이태원 가기 전에 나도 같이 가자고 했잖아. 시험기간이라 못 갔지만. 엄마가 사준 구두에 먼지 쌓였다고 휴지로 닦는 모습이 마지막일 줄은 몰랐어.’
“엄마 이름을 불러준 경철이가 보고 싶네요. ‘왔는가? 고생했어.’ 이렇게 불러준 경철이가 그립고 보고 싶네요.” 엄마는 11월20일 오후 4시21분,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모인 카카오톡 대화방에 이런 글을 올렸다. 하지만 이제 경철을 볼 수 없다.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지 꿈에서조차 나오지 않는다. “경철아, 경철아. 거기가 좋니. 왜 엄마 꿈에 안 나와. 엄마가 많이 보고 싶은데.” 엄마는 영정 사진을 끌어안고 잔 적도 있다. 꿈에 나와줬으면 해서.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마나 아팠는지 묻고 싶어서. 엄마는 꿈에서라도 경철을 만나면 꼭 말하고 싶다. “네가 이루지 못한 꿈, 네가 하고 싶었던 것, 엄마랑 누나랑 동생이 꼭 이뤄줄게. 그곳에선 아프지 말고 항상 좋은 것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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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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