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넘게 美 제압 목표...‘중국몽’ 매진하는 중국 석학·관료들” [송의달 LIVE]
①장관 출신 독립 민간 싱크탱크 15년 운영
②생태계 복원 시급한 한국의 지식사회
③'창조적 파괴’ 1호는 정계 등 공공 부문
올해 12월 22일 오후 2시30분부터 약 3시간동안 서울시 중구 명동 은행회관 2층에서는 니어재단(NEAR·North East Asia Research Foundation)이 주최한 <한국의 새 길을 찾다> 출판기념회가 열렸습니다. 니어재단은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2007년 세운 동북아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민간 싱크탱크입니다.
이날 행사는 올해 1월 말부터 15인의 국가 원로(元老)·현자(賢者) 및 8명의 현역 대학교수들이 니어재단 주관으로 1년 여동안 벌여온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자리였습니다. 24명의 참여자들은 원탁 토론과 발표 세미나, 심층 인터뷰 등을 거쳐 이날 단행본을 출간해 기념 세미나 겸 축하 모임을 열었습니다.
김진현 전 과학기술처 장관, 김황식 전 국무총리, 이종찬 전 국정원장, 정의화 전 국회의장, 김도연 전 포스텍 총장을 포함한 지식인과 시민 등 150여명이 참석해 행사장은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뤘습니다.
◇장관 퇴임후 싱크탱크 세워 15년 운영
이 프로젝트의 총지휘자인 정덕구(74) 니어재단 이사장은 충남 당진(唐津) 출신으로 재정경제원 차관보와 재경부 차관,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원 제2차관보였던 그는 휴버트 나이스 당시 IMF 아시아·태평양 국장 맞은편에 앉아 실무 협상을 이끌었습니다.
눈길을 끄는 것은 2000년 1월 52세에 장관에서 물러난 정 이사장의 그 이후 행보(行步)입니다. 그해 9월부터 2004년 4월까지 서울대 국제금융센터 소장을 지낸 그는 중국 베이징대와 런민(人民)대 초빙교수, 중국사회과학원 고문 등을 맡아 중국에서 강의와 연구를 했습니다. 2004년 5월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됐으나 4년 임기의 절반을 보낸 뒤 자진사퇴하고 2007년 니어재단을 세웠습니다.
장관을 지낸 우리나라 전직 관료들은 대개 부총리, 국무총리 같은 더 높은 관직을 향해 뛰거나 로펌 또는 회계법인 고문, 대기업 사외이사로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 이사장은 그러나 권력(權力)·금력(金力)과는 무관한 독립적인 싱크탱크(Think Tank)를 만들어 15년 동안 이끄는 ‘남다른 길’을 걸어 왔습니다.
그는 올 6월 한 인터뷰에서 “국책 연구기관이나 대기업 산하 연구소처럼 탄탄한 재정적 뒷받침을 받지 않는 순수 민간의 독립 싱크탱크가 15년씩 버틴 경우는 니어재단이 유일하다. 15년 전 성공을 의심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다들 기적이라 한다”고 했습니다. 기자는 이달 22일과 26일 정 이사장과의 대면(對面) 및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그의 생각과 철학을 들어보았습니다.
◇“중국 석학·관료들 만나면서 간담이 서늘”
- 전직 고위 관료가 독립 싱크탱크를 운영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2003년 9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중간중간에 중국에서 연구와 강의를 했는데 그때 받은 엄청난 충격 때문이다. 중국에서 만난 45명의 석학·관료들은 하나 같이 미국을 이기기 위해 한국을 배운다는 눈빛이었다. 그들의 궁극적 목표는 중화 민족주의(中華民族主義)의 발흥(勃興·일어나 잘 됨)이었다. 나는 그들의 속내를 읽으면서 간담(肝膽)이 서늘했다. 40년 넘게 중국몽(中國夢)에 매진하는 그들의 갈망과 노력은 여전하다.”
- 구체적으로 얘기한다면?
“중국의 노학자나 은퇴한 전문가들과도 7시간 또는 10시간씩 대담했다. 나는 그때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철학적 심오함과 생각의 유연함, 깨어있음에 놀랐다. 비록 당시 중국의 물적 기반은 우리보다 못했으나 인물 생태계와 인적(人的) 인프라가 두려울 정도로 두텁고 깊음을 확인했다.”
그는 “중국 지식인과 리더들이 있는 한, 중국은 얼음을 녹이고 대륙을 홍수로 만들어 ‘중진국 함정’을 돌파하고 미국을 능가할 듯한 기세였다. 문제는 중국이 커졌을 경우, 중국이 필연적으로 대한민국과 (보완하는 관계가 아니라) 엄청난 경합(競合) 관계에 돌입한다는 사실이었다”고 했습니다.
- 중국이 한국을 위협할 거라고 본 건가?
“그렇다. 더욱이 15년 전만 해도 한국에선 중국을 제대로 아는 전문가가 매우 부족했다. 강대국을 향해 질주하는 중국은 한국을 산업과 경제, 안보 등 모든 방면에서 필연적으로 위협할 것이다. 중국의 ‘굴기(崛起·일어섬)’로 동북아 정세가 소용돌이칠 마당에 국회의원 보다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깊이있는 중국연구소가 더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연구에 특화한 니어재단을 만들었다.”
◇“평생 ‘공인 정신’...‘가치형 인간’ 결심”
정 이사장은 1997년 말 IMF 외환위기 당시 한국측 협상 대표로 봉직(奉職)했습니다. 그의 말입니다.
“공직자로서 ‘왜 우리는 외환 위기를 사전(事前)에 못 막았나?” 하는 자괴심(自愧心)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다. 그 부채(負債)의식 때문에 나는 사적(私的) 이익을 위해 ‘생존형(生存型) 인간’으로 산다는 게 마음에 큰 부담이 됐다. 그래서 평생 공인(公人) 정신을 갖고 ‘가치형(價値型) 인간’으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니어재단 창설도 그 부채의식이 기반이 됐다.”
- 그동안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나?
“1회 ‘니어학술상’을 중국 연구자에게 수여하고 15년간 중국 연구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연구 결과물을 내놓었더니 국내 중국 연구자 숫자가 크게 늘었다. 그러나 이들의 80%는 친중(親中)적 입장에 서 있고, 일부는 미국 입장에서 연구하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 주체적인 중국 연구가 너무 빈약하다는 반성에서 지난해 <극중지계(克中之計)>를 냈다. 한국의 중국 연구는 이 책 출간 이전과 이후로 나눠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한다면?
“나는 후진타오 시대(2003~2012년)와 시진핑 1기 체제(2013~17년) 시절 중국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당시만 해도 중국의 지식인·학자들 사이에는 반(反)체제는 아니어도 중국의 미래를 놓고 다양하고 자유로운 논의를 벌였다. 외국인인 나를 중국사회과학원 정책고문으로 초빙할 정도로 사고방식도 열려 있었다. 그러나 시진핑 2기(2018~2022년) 들어 모든 지식인·학자들이 ‘중국특색 사회주의’ 선전(宣傳)에 동원되고 있다.”
◇“중국을 얕봐서도, 두려워 해서도 안 돼”
정 이사장은 이어 말했습니다.
“유례없는 3연임으로 ‘국가자본주의’를 노골화하는 시진핑 체제는 뒤뚱거리며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시진핑이 중국의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중국을 가볍게 봐서도 안 되지만, 두려워하거나 공포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 있는 그대로 냉정하게 우리 나름의 원칙과 가치관을 갖고, 협력할 분야와 경쟁할 분야를 분명하게 가려서 당당하게 대응해야 한다.”
니어재단은 지금까지 정부 예산이나 대기업 후원금 없이 중국과 북한을 경계하는 중견·중소기업 창업주들의 십시일반(十匙一飯) 도움으로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상설 조직을 최소화하고 연구 프로젝트에 따라 ‘헤쳐 모여’ 방식으로 꾸려오고 있습니다.
정 이사장은 “인하우스(In-House·직속) 연구원이 많아지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며 ‘처음을 나중 같이, 나중을 처음 같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합니다. 이는 초심(初心)을 잃지 않고 끝까지 가겠다는 의지(意志)의 표현인 동시에, 항상 마지막을 염두에 두고 현재 일에 혼신의 힘을 쏟겠다는 자기 다짐입니다.
니어재단은 ‘프로젝트가 끝나면 보고서가 아닌 책을 낸다’는 원칙을 실행해 오고 있습니다. 정 이사장은 “제한된 사람들끼리만 들춰보는 보고서는 쓸모없다. 프로젝트 결과를 단행본으로 내서 시장의 평가를 받고 사회에 메시지를 발신하는 게 본연의 역할”이라고 했습니다. 이번에 낸 <한국의 새 길을 찾다>를 포함해 재단에서 발간한 20권 가운데 6권이 1만부 이상 팔렸다고 합니다.
- 학자, 연구자들과 협업해 왔는데 한국의 지식계 상황은 어떤가?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지식 사회의 근간인 학회(學會) 활동이 거의 죽은 상태이다. 우리나라에 학회 숫자는 수 천개 되지만, 학회 다운 활동을 하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학회에서 좋은 논문이 나오면 출판되어서 사회적으로 유통돼 화제가 되어야 하는데, 학회 인프라가 메말려져 버렸다.”
◇“학문적 깊이 없는 나라의 정책은 표피적 대응일 뿐”
- 왜 이런 현상이 심화하고 있나?
“대학교수에게 만 65세 정년제가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탓이 크다. 만65세가 넘으면 아무리 뛰어난 학자도 강의와 연구 생태계에서 배제된다. 70세, 80세가 넘어서도 학문 탐구 활동을 하는 경우는 순전히 개인적 의지와 집념에 달려 있다. 사회적 지원이나 관심, 인프라가 전무(全無)하다.”
정 이사장의 말입니다.
“또 하나는 ‘경쟁(競爭)’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교수 사회는 교수들이 하향 평준화하기에 딱 맞는 구조이다. 노벨상(賞)을 받을 수 있는, 세계적으로 가치있고 깊이있는 연구를 하는 노(老)학자들이 많이 나오도록 토양을 바꿔야 한다.”
- 우리나라에는 미국, 일본에서와 같은 독립적인 싱크탱크도 매우 희귀하다.
“미국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이 내놓은 정책을 뒷받침하는 싱크탱크만 70여개 있다. 학문적 깊이 없는 나라에서 나오는 정책은 표피(表皮)적 대응에 그칠 뿐이다. 우리나라 정책 분야에 몸담는 교수들은 대부분 폴리페서(polifessor·현실 정치 참여 교수)들인데, 이들의 학문적 성과나 깊이가 높지 못하다. 이게 우리의 비극이다.”
정 이사장은 “한 예로 독특한 경로와 리더십, 전략으로 발전해온 한국경제론을 전공하는 교수가 서울대학교에 한 명도 없다. 고려대와 연세대에 각 1~2명 있지만 이들은 주 전공은 다른 분야이고 한국경제론을 부전공으로 하는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사회과학 분야 교수들이 SSCI(Social Sciences Citation Index)급 저널에 논문 게재 여부로 평가받는 시스템 때문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미국 경제학을 배우고 있다. 한국 교수들과 한국 학생들이 우리 입장에서 한국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지도층·리더들부터 안목과 수준 높아져야”
- 우리나라가 ‘선진 도상국’ 단계를 넘어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무엇이 시급한가?
“사람의 깊이, 특히 사회 지도층과 리더들 즉 공공(公共) 부문 인재(人材)들의 수준과 깊이가 달라져야 한다. 이들의 안목(眼目)과 시선(視線)도 높아져야 한다. 구체적으로 정치인과 대학교수, 언론인들이 바뀌어야 한다. 정치 리더십과 선거 제도, 관료 체제 같은 공공부문부터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해 정치와 학계, 언론이 선진화되어야 한다.”
- 왜 공공 부문부터 바꾸어야 하나?
“정치인을 포함한 공공 부문의 수준과 실력이 대기업을 위시한 민간의 수준 보다 낮기 때문이다. 민간 부문은 1990년대말 외환위기 충격 이후 상당부분 창조적 파괴를 했다. 오너 경영, 족벌 체제 정도만 일부 남아 있다. 하지만 공공부문은 예전 그대로이다. 우리 국민들은 어느 나라 국민 보다 더 똑똑하다. 정치와 학계, 언론이 환골탈태한다면 민간과 국민들도 금방 따라오며 혁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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