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2022]테라부터 FTX까지 '크립토 수난시대'…그 틈에도 살아난 '웹3'
미국·EU 등 규제 마련 속도…'크립토 겨울'에도 웹3 진출은 활발
(서울=뉴스1) 박현영 기자 = 2022년은 이른바 '크립토(가상자산) 수난시대'였다. 경기침체와 금리 인상에 따른 하락장은 시작에 불과했다. 상반기 '테라 사태'부터 하반기 'FTX 사태'까지 전 세계 가상자산 시장을 뒤흔들 만한 규모의 악재가 이어졌다.
국내는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한국인이 만든 블록체인 프로젝트 '테라'의 몰락은 국내 시장 환경에 유독 더 큰 충격을 줬다. FTX 사태가 발생한 11월, 국내 시장에선 대표적인 김치코인 위믹스(WEMIX)가 주요 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되면서 혼란이 더욱 커졌다.
악재는 투자자 피해를, 투자자 피해는 규제를 몰고 온다. 미국에서는 바이든 정부의 첫 디지털자산 프레임워크 '팩트시트'가 나왔다. 또 유럽연합은 디지털자산시장법안인 '미카(MICA)' 최종안을 마련했다. 규제는 가까이서 보면 악재일 수 있으나 멀리서 보면 호재다. 규제불확실성으로 움츠러들었던 업계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생겼다.
피할 수 없는 악재가 이어졌지만 가상자산 및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든 것도 아니었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차세대 웹 '웹3'는 올해 무시할 수 없는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구글,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이른바 '웹2 공룡'들이 일제히 웹3 생태계에 진출했다. 국내에서도 대형 게임사를 중심으로 웹3 진출이 활발히 이뤄졌다.
◇테라부터 FTX까지, 전 세계 '크립토 수난시대'
올해 초부터 가상자산 시장에는 찬 바람이 불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 인상 부담이 이어지면서,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요 가상자산 가격은 지난해 '불장(상승장)'에서 얻었던 상승분을 일제히 반납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역대급' 악재가 터졌다. 스테이블코인으로서 자리를 굳혀가던 테라의 1달러 고정 가격이 무너진 것. 무너진 가격은 1달러를 회복하기는커녕 날개 없이 추락했고, 테라의 가격을 유지하는 데 쓰이는 '자매 코인' 루나(LUNA)의 가격은 99% 이상 폭락했다.
루나는 지난해 가상자산 시장의 주인공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코인이었다. 테라 블록체인 생태계가 커지면서 점점 상승하던 루나 가격은 탈중앙화금융(디파이) 서비스 '앵커프로토콜'의 등장으로 매우 큰 상승 폭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루나는 전 세계 시가총액 순위 6위를 기록, 한국인이 만든 가상자산 프로젝트 중에선 유례없는 성과를 거뒀다.
주인공의 몰락은 파장이 컸다. 세계 6위 가상자산이었던 만큼 루나와 엮인 프로젝트는 한 둘이 아니었다. 루나에 투자한 벤처캐피탈(VC)들, 테라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개발한 프로젝트들, 연이율 20%를 내세운 앵커프로토콜에 자금을 넣었던 투자자들까지 모두 절망했다.
그 중에는 가상자산 시장에서 이미 유명한 기업들도 있었다. 가상자산 헤지펀드 쓰리애로우캐피탈(3AC), 브로커리지 업체 보이저디지털 등이 테라 사태로 인해 줄도산했다.
테라 사태로 시장이 침체되면서 하락장이 이어지는 '크립토 겨울'은 더 길어졌다. 비트코인 등 주요 가상자산들도 테라 사태로 인한 시장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하락했다. 이런 위기를 딛고 시장이 조금씩 살아나던 무렵, 더 큰 위기가 찾아왔다. 거래량 기준 세계 2위까지 올랐던 초대형 가상자산 거래소 FTX가 단 일주일 만에 파산한 것이다.
지난 11월 2일 코인데스크는 FTX 관계사 알라메다리서치의 자금 상당 비중이 FTX의 거래소 토큰인 FTT로 채워져있다며, 재무 상태가 건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에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는 보유하고 있던 FTT를 전량 매도하겠다고 선언했고, 이를 기점으로 FTT 가격은 날개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바이낸스의 FTT 매도 선언 이후 FTX가 파산을 신청하는 데까진 5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바이낸스의 선언 이후 FTT 투자자들은 연이어 시장에 FTT를 매도했고 솔라나(SOL), 세럼(SRM) 등 알라메다리서치가 투자한 여러 가상자산 프로젝트들도 일제히 가격이 하락했다. FTT 가격이 급락하면서 유동성 위기를 겪게 된 FTX는 결국 파산 신청을 해야 했다.
파산 신청 이후 각종 증언과 서류가 세상에 공개되면서 FTX 창업자인 샘 뱅크먼 프리드(Sam Bankman-Fried)의 방만한 경영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가상자산 시장의 '빅 플레이어'조차 부실하게 경영을 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가상자산 거래소 자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더 큰 문제는 아직까지도 FTX에 투자자들의 자금이 묶여있다는 점이다. FTX에 토큰을 상장한 가상자산 프로젝트들의 자금까지 인출이 불가능해지면서 전체 가상자산 시장이 크게 흔들렸다. 이미 많이 하락한 주요 가상자산들의 가격도 FTX 사태를 기점으로 또 한 번 떨어졌다.
◇위믹스 사태까지 겹친 국내 시장…'김치코인'의 위기
국내 시장 역시 테라 사태와 FTX 사태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특히 테라는 한국인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최고경영자(CEO)가 이끌었던 프로젝트로, 테라 사태는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이다.
테라 사태의 영향으로 국내 시장엔 새로운 단체도 생겼다. 원화마켓을 운영 중인 국내 5대 거래소가 함께 구성한 디지털자산 거래소협의체(닥사, DAXA)다. 닥사는 국회가 테라 사태 당시 거래소 별로 루나(LUNA) 상장 폐지 시점이 달랐던 점을 지적하자, 이에 대한 대응으로 출범했다. 공통된 기준으로 상장 심사 및 폐지 심사를 하겠다는 게 닥사의 목표다.
닥사의 활동이 이슈화된 것은 지난 10월 말 닥사가 위메이드의 가상자산 위믹스를 유의종목으로 지정하면서부터다. 위믹스는 유의종목 지정의 원인이 된 유통량 문제를 소명했으나, 끝내 상장 폐지라는 통지표를 받게 됐다.
닥사 출범으로 상장 폐지는 곧 국내 시장에서의 퇴출을 의미하게 됐다. 거래량의 99%가 국내에서 일어나는 대표적인 '김치코인'이 퇴출된 것이다. 앞으로 김치코인의 상장은 더욱 어려워지고, 이미 상장된 프로젝트들도 위태로울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악재가 부른 규제…미국도 유럽도 '디지털자산법' 속도
이어진 악재는 규제를 앞당겼다. 전 세계 가상자산 시장을 이끄는 미국에선 정부가 디지털자산 규제 프레임워크인 '팩트시트'를 발표했고, 의회는 ‘책임있는 금융혁신 법안(RFIA)’, 디지털상품 소비자보호법(DCCPA) 등을 발의했다.
유럽연합(EU)도 장기간의 논의를 거쳐 디지털자산시장법안(미카, MICA)을 내놨다. 미국 및 유럽의 규제는 향후 국내 규제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팩트시트에서 바이든 정부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디지털자산 불법행위에 대한 조사 및 집행을 서둘러줄 것을 촉구했다. 또 FTX 사태 이후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을 비롯한 유력 인사들이 다시 한 번 가상자산 규제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국에서도 본격적인 가상자산 시장 규제안이 마련될 것이란 전망이다.
디지털자산의 범위와 유형, 발행사의 백서 관련 규정 등을 마련한 EU의 미카는 오는 2월 최종 투표를 앞두고 있다. 통과 시 EU 27개 회원국에서 2024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크립토 겨울'에도 살아난 웹3…'웹2 공룡'도 넘본다
악재가 시장 붕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2018~19년 한 차례 ‘크립토 겨울’을 견뎌낸 바 있는 가상자산 업계는 하락장에도 불구,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웹 생태계인 ‘웹3’를 더욱 활발히 추진했다.
정보 주권을 플랫폼이 아닌 개인에게 돌려주자는 웹3의 취지엔 다수가 공감했다. 특히 플랫폼으로서 이미 많은 수익을 본 구글,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웹2 공룡’들도 웹3 생태계에 진출했다.
구글은 웹3팀을 신설하고, 클라우드 기반의 '블록체인 노드 엔진' 서비스도 선보였다. 인스타그램은 게시물로 대체불가능 토큰(NFT)을 올릴 수 있게 함으로써 인플루언서들의 NFT 활용을 독려했다. 트위터도 프로필사진을 NFT로 설정할 수 있게 하며 웹3에 대한 큰 관심을 보였다.
국내에선 넥슨, 크래프톤, 넷마블, 컴투스 등 대형 게임사를 중심으로 웹3 진출이 이어졌다. 게임사들은 관련 팀을 꾸리는 것은 물론, 자체 게임을 온보딩할 블록체인 플랫폼들을 모색하거나 자체 플랫폼을 개발하는 등 웹3 게임 개발에 집중해왔다.
위믹스 사태로 국내 웹3 게임 사업이 주춤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됐으나, 내년 블록체인 기반 게임들이 본격적으로 서비스되기 시작하면 판도가 바뀔 것이란 긍정적인 의견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hyun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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