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1호 디지털치료제 탄생 임박…시장 안착 과제는
한미약품·동화약품 등 디지털치료제 스타트업에 투자
"실제 처방 이어지려면 건강보험 급여 기준 마련돼야"
제약바이오 산업계에 디지털 전환의 바람이 불면서 내년에 국산 1호 디지털치료제의 허가 및 출시가 기대되고 있다. 다만 해외에서는 빠른 속도로 디지털 치료제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보험급여 및 수가 등의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실제 시장에서 처방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제도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디지털치료제는 '질병이나 장애를 예방·관리·치료하기 위해 근거 기반의 치료적 개입을 제공하는 고도화된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를 말한다. 디지털치료제는 당뇨병, 비만 등 다양한 만성질환 관리에 사용되고 있으며 최근 불면증, 우울증, 조현병,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 등 신경계와 직결된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R&D)이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신경계 질환의 기존 치료제들은 대부분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복용시 졸음, 두통, 체중증가 등의 경미한 부작용부터 뇌졸중, 아나필락시스 쇼크, 사망위험 증가 등 심각한 부작용을 동반하기도 한다.
하지만 디지털치료제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내 애플리케이션, 게임 등을 통해 반복적인 학습을 진행함으로써 인지행동 치료, 생활습관 교정 등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독성과 부작용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며,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신약 개발 대비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최초 디지털 치료제는 페어테라퓨틱스(Pear Therapeutics)가 개발한 리셋(reSET)으로, 지난 2017년 9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허가 승인을 받았다. 리셋은 마약, 알코올 등 약물중독 환자를 대상으로 인지행동 치료 기반의 온라인 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바일앱이다. 당시 39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에서 약물만 쓴 환자의 치료효과는 3.2%에 불과했지만 리셋을 병행했을 때 약물중독 치료 효과는 16.1%로, 약물만 썼을 때 보다 치료효과가 5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이후 프랑스 볼룬티스(Voluntis)의 2형 당뇨병 치료 모바일앱 '인슐리아(Insulia)', 미국 팔로알토헬스사이언스(Palo Alto Health Science)의 외상 후 스트레스 및 공황장애 치료 앱 '프리스피라(Freespira)', 미국 아킬리인터랙티브(Akili interactive)의 소아 ADHD 치료 게임 '인데버알엑스(EndeaverRx)' 등이 줄줄이 FDA 허가에 성공했다.
글로벌 빅파마들도 이들 기업에 대한 투자를 통해 디지털치료제 사업에 뛰어들었다. 암젠(Amgen)과 머크(Merck)는 아킬리인터랙티브에 투자했으며, 노바티스는 비디오게임으로 약시(안경 착용에도 시력 교정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양 눈 중 시력이 낮은 쪽)를 치료하는 디지털치료제 개발 스타트업 앰블리오텍(Amblyotech)를 인수하고 자회사 산도즈(Sandoz)를 통해 페어 테라퓨틱스의 리셋 시장 출시에 협력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디지털치료제 개발 및 투자에 한창이다. 김혜경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디지털콘텐츠과 사무관이 최근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정책보고서에 게재한 보고서에 따르면 △뉴냅스 △에스알파테라퓨틱스 △라이프시맨틱스 △에임메드 △웰트 △테크빌리지 △에프앤아이코리아 △마인즈에이아이 △하이 등 9개 기업이 다양한 분야에 대한 디지털치료제의 탐색·확증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이들 기업 중 확증 임상시험 단계에 있는 5개 제품 가운데 조만간 국산 1호 디지털치료제가 탄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밖에도 SK바이오팜은 뇌전증 환자의 발작 관리를 위한 웨어러블 디바이스 개발에 이어 디지털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고 한미약품, 한독, 동화약품 등은 전문 개발사 투자를 통해 디지털치료제 사업에 뛰어들었다.
디지털치료제가 최근 국내외에서 각광 받는 이유는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세계 디지털치료제 시장 규모는 약 38억 8000만달러(약 5조 5398억원)로 추정되며 오는 2030년 약 173억4000만 달러(약 24조 758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연평균성장률은 20.5%로 급격히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시장이다.
아울러 기존 치료제는 개발 이후에도 생산, 출고, 유통 등의 과정에서 지속적인 비용 지출이 발생하지만 디지털치료제는 한 번 개발하면 생산, 유통 등의 비용이 발생 없이 수백만명에게 배포가 가능하다.
그러나 아직 국내에서 디지털치료제 허가 및 출시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남아있다. 디지털치료제는 의료기기로서 '디지털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이 지난 2020년 8월 제정됐지만 가장 중요한 건강보험 급여 및 수가 기준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면 허가 및 출시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환자부담금이 커 시장에서는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내년에 국산 디지털치료제 허가 신청이 대거 쏟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시장에서 처방이 활발하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건강보험이 적용돼야 한다"면서 "디지털치료제는 의료기기 규제가 적용되지만 사용방식은 의약품과 유사해 정부 입장에서도 건강보험 급여 기준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권미란 (rani19@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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