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in 한화]③ 한국조선해양이 웃는 이유
조선업 개편 '미완'…"불황 대비해야"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품었다. 14년 만이다. 한화는 지난 2008년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기회를 얻지만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로 그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무리스럽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14년이 지난 지금의 평가는 다르다. 한화의 주력인 방산과 에너지 등에서 시너지를 낼 요소가 많다는 평가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통해 한화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망해 본다.[편집자]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품기기 전 현대중공업지주(현 HD현대)와 대우조선해양 간 조선 빅딜이 추진된 적이 있었다. 국내 조선 산업 재편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판단 때문이었다. 당시 국내 조선 업체들은 수주 가뭄에 경쟁이 과열되던 때다. 하지만 3년여에 걸쳐 추진된 조선 빅딜은 해외 경쟁 당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조선 빅딜은 좌초됐지만 현대중공업지주는 이 과정에서 '실리'를 얻었다는 평가다. 조선 사업 부문의 지배 구조 개편을 완료하면서다. 현대중공업 상장을 통해 1조원 넘는 자금도 조달했다. 하지만 상장 과정에서 개인 주주들이 피해를 입는 상황이 발생하는 등 잡음도 있었다.
길었던 3년…결과는 '좌초'
산업은행은 지난 2019년 1월 현대중공업지주에 대우조선해양 지분 전량을 매각키로 했다. 국내 조선 산업을 재편해 경쟁력을 올리겠다는 생각이었다. 당시는 국내 조선 3사의 수주 가뭄 탓에 저가 수주 경쟁을 벌였던 때다.
산은은 조선 3사를 2사로 재편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반면 업계에서는 저가 수주의 원인이 대우조선해양에 있다고 봤다. 산은을 등에 업은 대우조선해양이 실적 향상을 위해 저가 수주에 나서면서 나머지 업체들도 이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현대중공업지주와 산은은 그해 3월 본계약을 체결했다. 본계약은 산은이 보유한 대우조선해양 지분 전량을 현대중공업지주가 향후 설립할 조선부문지주사에 출자하는 방식이었다. 매각 대금은 조선부문지주사가 산은에 신주를 발행해 지급할 예정이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곧장 조선부문지주사 설립에 나섰다. 현대중공업을 지주 부문과 사업 부문으로 물적분할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존속법인 지주 부문은 '한국조선해양'으로 사명을 바꿨다. 분할된 조선 사업 부문은 '현대중공업'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현대중공업지주→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초대형 선박)·삼호중공업(대형 선박)·현대미포조선(중형 선박)'의 수직계열화를 갖추게 됐다. 이후 대우조선해양이 한국조선해양의 자회사로 편입되는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조선 빅딜은 무산됐다. 지난 1월 유럽연합(EU)이 두 기업의 합병에 제동을 걸었다. EU는 두 기업이 합병할 경우 액화천연가스(LNG) 선박 시장에서 독점이 발생할 것이라는 점을 우려했다. 결국 산은이 3년을 공들여 온 조선 빅딜은 좌초됐다.
대우조선 못 품었지만
하지만 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지주가 대우조선해양 인수 무산에도 불구, '실리'를 챙겼다고 보고 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조선 부문의 지배 구조 개편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한국조선해양은 그룹 내에서 조선사업 부문의 컨트럴 타워를 맡고 조선·해양·신재생 등 관련 미래 핵심 기술 투자를 확대에 나서는 중이다. 신사업을 통해 향후 5년 내 매출 50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한국조선해양의 지난해 별도 기준 매출액은 전년 대비 13.6% 증가한 1958억원을 기록했다.
현재 한국조선해양은 두산퓨얼셀, 네덜란드 에너지기업 쉘과 함께 선박용 연료전지 실증을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독자 기술로 개발한 1.5㎿(메가와트)급 LNG·수소 혼소 힘센(HiMSEN) 엔진에 대한 성능 검증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재무적 관점에서 한국조선해양의 부담이 완화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3분기 기준 대우조선해양의 결손금은 2조2735억원이다. 자본으로 분류되는 2조원의 영구채 효과를 제외하면 사실상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한국조선해양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했더라면 대규모 자금 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자본 유치도 완료했다. 지주사 설립을 위해 물적분할한 현대중공업이 작년 9월 상장하면서 1조8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이 중 7579억원은 미래사업을 위해 사용된다.
물론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현대중공업의 상장으로 기존 한국조선해양 주주들이 피해를 입어서다. 물적 분할 이후 상장이 진행되면서 기존 한국조선해양 주주들은 현대중공업 주식을 전혀 받지 못했다. 한국조선해양의 현대중공업 지배력 약화로 주식 가치도 희석됐다. 현재 한국조선해양의 주가는 현대중공업 상장 직전보다 약 30%가량 하락한 상태다.
지금은 괜찮지만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국내 조선업은 다시 '3사 체제'로 굳혀졌다. 조선업 경력이 전무한 한화가 체제를 정비하는 동안 한국조선해양은 그 격차를 벌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수주 상황도 나쁘지 않다. 경기는 둔화되고 있지만 LNG 선박 등 고부가가치 선박에 대한 주문은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조선 3사는 연초에 제시했던 목표 수주액을 이미 달성한 상태다.
김봉환 나이스 기업신용평가 책임 연구원은 "자재 가격 변동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작년부터 상승 추세를 보인 신조선가가 반영된 수주물량이 매출에 반영된다"며 "2023년 실적은 2022년 대비 개선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려도 존재한다. 조선업은 경기 사이클을 많이 타는 업종이다. 호황과 불황이 반복된다. 낙폭도 크다. 업계에선 현재 호황에 진입했다고 보지만 향후 다시 찾아올 불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산은 주도의 조선 산업 개편이 미완의 과제로 남은 상황에서 다시 저가 수주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업이 불황 시기에 진입하기 전 그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지 전략을 잘 짜야한다"면서 "현재 조선업은 LNG, 수소 등 친환경 선박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어 기술면에서 초격차를 벌리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은수 (curymero0311@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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