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부패 척결" 尹 발언에…정부, 노동 개혁 '强드라이브' [노동개혁 본격화]

이정한 2022. 12. 2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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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전면전 선언에 칼 빼든 정부
화물연대 파업 원칙 대응에 여론 공감
고용부, 美 ‘노조 운영 공개법’ 참고 나서
노조 집행부 회비 횡령 등 사건도 영향
불법행위 방지 국민 공감대 형성 판단
양노총 연 조합비 1000억 내역 ‘깜깜이’
재정 투명성 제고 방안 등 대응책 마련
법 개정 어려워 시행령으로 먼저 조치

화물연대 파업을 기점으로 노동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정부가 내년부터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사정을 예고했다. 우선 어떻게 운영되는지 불투명했던 노조 재정을 들여다보겠다는 계획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노조부패를 기업부패와 공직부패와 함께 “척결해야 할 3대 부패”로 규정한 뒤 노조의 재정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밝힌 데 따른 조치다. 탈퇴 방해 등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대응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여소야대 국면에서 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 어렵기 때문에 시행령 개정을 통해 가능한 조치를 우선 시행할 방침이다.

26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는 노조의 집행부가 조합원들의 회비를 횡령한 사건들이 최근 논란이 되면서 노조의 불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판단했다. 지난 21일 한 노조의 전 위원장은 10억원대 노조 조합비를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지난 10월에는 6년 넘게 1800만원의 조합비를 개인 생활비 등으로 유용한 혐의로 기소된 노조 간부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기도 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조합의 재정 투명성 제고 방안에 대해 브리핑 하고 있다. 뉴시스
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예산이 노조 지원에 쓰이는데 노조의 회계처리는 불투명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정부의 실질적인 감독이 필요하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걷는 연간 조합비가 매년 1000억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추정되는데 조합비의 세부 명세를 공개하지 않는 것도 문제로 봤다.

이에 고용부는 이날 조합원의 열람권을 보장하고 회계감사원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노조 재정 투명성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조합원 1000명 이상의 노조와 상급단체 253곳은 내년 1월 말까지 재정 운용 관련 서류를 비치해야 한다. 한국노총 136곳, 민주노총 65곳, 전국노총 4곳, 대한노총 1곳, 미가맹 47곳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서류 비치·보존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노동조합법에 따라 5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노조 회계감사 책임을 맡는 회계감사원의 전문성을 높이고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을 공표하는 방안도 마련한다. 프랑스와 독일 등 주요국들은 노조와 독립된 전문가가 회계감사를 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노동조합법에는 회계감사원의 자격 요건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아 사실상 누구든 감사원이 될 수 있는 구조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회계감사원의 자격과 선출 방법을 구체화하고 재정 상황 공표의 방법·시기를 명시해 조합원의 알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개입이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위반이라는 지적에 대해 이 장관은 “ILO도 법령에 의해 정기적으로 보고하도록 한 절차는 노조 자주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정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고용부는 미국의 회계 공개 원칙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해 개선안에 적용할 계획이다. 이 장관은 미국에서 1959년 제정된 ‘랜드럼 그리핀법’(노조운영보고 및 공개법)을 꼽아 참고 사례로 거론하기도 했다. 미국의 노조들은 해당법에 따라 미국 연방정부(노동부)에 매년 연례 보고를 하고 있다. 해당 보고서는 미국 노동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다.

거대야당과 노동계의 반발을 극복하는 게 과제다. 고용부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면 추진하겠지만 우선 시행령을 바꿔 필요한 조치를 할 방침이다. 예컨대 노동조합법 제25조에는 노조의 회계감사와 관련된 내용이 담겼는데, 회계감사원의 자격 제한 등을 시행령으로 추가해 전문성과 독립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 장관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탈퇴 방해 의혹이 제기된 포스코지회에 대해 노동위원회 시정명령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포스코지회는 조합원 투표로 금속노조 탈퇴를 결정한 뒤 기업별 노조로 조직형태 변경을 시도했지만 고용부 포항고용지청은 총회 소집권한과 절차 등을 문제 삼아 노조 설립 신고를 반려했다.

고용부는 불합리한 노사 관행 시정에도 나선다. 이를 위해 내년 2월부터 온라인 ‘노사 부조리 신고 센터’를 운영하고 특정 노조 가입·탈퇴 강요, 재정운영 결과 공개 거부 등 노동법 위반 의심 사례에 엄정 대응할 계획이다. 임금체불, 불공정 채용, 직장 내 괴롭힘, 포괄임금 오·남용, 부당노동행위 등 ‘노동시장 5대 불법·부조리’를 근절하기 위한 근로감독도 강화한다.
민노총·경찰 충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관계자들이 26일 이른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을 요구하며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를 기습 점거해 농성을 벌이면서 경찰과 충돌을 빚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계 “정부, 노조를 비리 온상 몰아”

노동계는 노동조합의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겠다는 정부 발표에 비판을 쏟아냈다. 이미 투명하게 회계를 공개하고 있는데 정부가 브리핑까지 하며 법 개정을 추진하는 건 노조를 비리의 온상으로 몰려는 선동일 뿐이라는 것이다.

한국노총 이지현 대변인은 26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노조는 회원조직들이 감시·감독 기능을 한다. 기업별 노조도 마찬가지”라며 “일부 비리가 발생할 순 있으나 발생 시 조직 내부에서 밝혀지고 처리돼 왔다”고 주장했다. 이 대변인은 “노동조합 전체를 비리의 온상으로 모는 정부의 선동은 치사하고 비열하다”고 비판했다.

노동계는 국고지원금이 잘 쓰이고 있는지 들여다보겠다는 정부의 발표도 노조를 ‘깨끗하지 않은 조직’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기 위한 것으로 봤다. 이 대변인은 “(정부는) 국고지원금이 문제라고 하는데 한국노총은 국고지원금을 쓸 때 e나라도움 홈페이지에 영수증 증빙까지 하며 모든 걸 다 보고하고 있다”며 “거기다가 외부 회계사무소에 비용을 지불하면서 외부 회계감사까지 해서 보고하는데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더 투명하게 한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e나라도움 홈페이지는 기획재정부가 운영하는 국가보조금 통합관리 시스템이다.

이 대변인은 “국고지원금을 지원하고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관리하는 건 정부의 책임”이라며 “그럼 지금까지 제대로 안 했다는 것이냐. 어떤 게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제대로 조사하고 책임자를 문책하라”고 밝혔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 또한 “마치 노조에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만들려는 의도”라며 반발했다. 그는 “현행법상 노조에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역대 정부에서 한 번도 요구하지 않은 것은 문제 될 것이 없기 때문”이라며 “노조 회계에 문제가 있다면 법대로 처벌하면 되는 것이지, 일일이 고용노동부가 들여다보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고 전했다.
26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관계자들이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을 요구하며 점거 농성 중인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서 민주노총 노조원들이 팻말을 들고 앉아 있다. 연합뉴스
한편 민주노총은 이날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2·3조의 개정을 요구하며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점거 농성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 관계자 2명이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영등포경찰서는 이날 오전 당사에 무단진입했다가 내려온 민주노총 관계자 2명을 건조물 침입 등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다.

노란봉투법은 파업에 돌입한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및 가압류를 제한하고, 하청 노동자의 노동쟁위 범위를 원청까지 확대하도록 하는 내용의 노조법 개정안을 뜻한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을 계기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과 노동계가 정기국회 주요 입법 과제로 추진 중인 사항이다. 이날 조합원들은 ‘민주당은 국민의힘 눈치 보지 말고 국민 여론을 보라’ 등의 피켓을 든 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면담을 요구했다.

이정한·이희진·조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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