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빅판'이 건넨 손편지…"여러분 덕분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한병찬 기자 2022. 12. 27. 0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빅이슈 판매원 동행취재…영하 날씨에도 지하철 입구서 하루 7시간씩 판매
코로나 후 판매량 급감…"춥지만 독자 응원에 몸도 마음도 따뜻해져"
12월26일 서울 강남구 삼성역에서 만난 문영수씨의 모습. 2022.12.26/뉴스1 ⓒ News1 한병찬 기자

(서울=뉴스1) 한병찬 기자 = "좌절을 견뎌내는 사람들이 빅이슈 판매원입니다."

빨간 조끼를 입은 문영수씨(63)가 26일 오후 1시쯤 서울 강남구 삼성역 5번 출구통로에서 영하권 날씨에 빨개진 귀를 매만지며 말했다. 문씨는 하루에 7시간씩 한자리에 서서 노숙인의 자립을 돕는 잡지 '빅이슈'를 판매하는 일명 '빅판'(빅이슈 판매원)이다.

그는 지하철역 한편에 빅이슈 스티커, 그립톡 등 굿즈를 펼쳐놓고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따뜻한 눈웃음도 잊지 않는다. 벽에는 빅이슈 표지가 따닥따닥 붙어있다.

문씨는 7년 차 베테랑 빅판이지만 매서운 한파는 그에게도 부담스럽다. 방한 마스크와 두꺼운 목도리로 중무장한 그는 "일을 마치고 실내로 들어가면 해동이 된 것처럼 얼굴이 빨개지고 어지럽다"면서도 "책을 사주시는 시민들이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몸도 마음도 훈훈해진다"고 웃으며 말했다.

한 시간이 흘렀을까. 한 20대 여성 시민이 다가와 신간 한 권을 달라며 카드를 건넸다. 첫 고객이었다. 카드리더기가 추위 때문인지 먹통이자 문씨는 "추워서 이게 잘 안 되네요"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연신 버튼을 누르던 문씨는 결제가 되자 "7000원입니다. 감사합니다"라며 '메리 크리스마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삼성역 빅판 드림'이라는 글귀가 적힌 크리스마스카드와 잡지를 건넸다.

빅이슈는 주거 취약 계층에게 일거리 서비스 기회를 제공해 돕는 사회적기업이다. 격주로 발행되는 잡지는 한 권당 7000원에 판매되는데 그중 50%인 3500원이 빅판의 수입이다.

26일 문영수씨가 직접 쓴 편지와 크리스마스 카드의 모습. 2022.12.26/뉴스1 ⓒ News1 한병찬 기자

◇"세상 포기하다시피 했는데 빅이슈 통해 희망 가져"

문씨가 빅이슈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15년 2월이다. 그는 가족과 떨어져 공장 생활을 하다 사고로 신체 일부가 절단됐다. 다리를 다치고 방황하던 그는 지인 집, 사우나 등을 전전하다 우연히 방송에 나온 빅이슈를 보고 희망을 떠올렸다. 그는 빅판이 되기 위해 빅이슈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는 "정말 세상을 포기하다시피 했었는데 희망을 품고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며 "열심히 하다 보니 단골도 생기고 노하우도 터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처음에는 판매하는 것이 부끄럽고 자신감이 없었는데 책을 사주며 응원하는 시민들을 보고 힘을 얻었다"며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자 이렇게 편지를 써서 함께 드리고 있다"고 손수 쓴 편지를 들어 보였다.

편지에는 짧은 시 몇 구절과 그가 손 글씨로 쓴 '독자님의 위로 덕분에 어려웠던 순간들을 이겨낼 수 있었고 목적의식을 갖고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할 뿐입니다'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판매량 줄고, 한파에 통증…그럼에도 거리로

코로나19 이후 잡지의 판매량이 절반가량 줄면서 빅판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영국의 빅이슈도 거리 판매를 중단할 정도로 상황은 어려웠다. 2시간 동안 그와 함께 있었지만 그가 판매한 것은 2권이 전부였다.

문씨는 "12월에 10권도 못 팔고 들어간 적이 10번 이상이 된다"며 "연말에 이 정도면 너무 판매가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70여명 되던 판매원도 30여명으로 줄었다고 덧붙였다.

추운 날씨에 과거 사고로 절단된 발가락의 통증도 큰 애로였다. 그는 "아픈 정도가 아니라 목석 수준"이라며 "통증이 계속 있어서 붕대로 감아뒀다"고 신발을 벗으며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매일 삼성역에 나온다. "이 추위에 몇 시간씩 떨면서도 독자분들이 응원 한마디 건네며 잡지를 사주시면 아팠던 몸도, 추운 날씨도 잊고 따뜻해진다"며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달 6일 문씨는 시민들에게 받은 감사함을 돌려드리고자 다른 빅판, 빅이슈 코리아 직원들과 서울 당고개역 에너지 취약계층 5가구에 사랑의 연탄 1000장을 전달했다. 그는 "저희가 도움을 받았으면 또 실천해야 독자들한테도 보람 있는 일 아니겠냐"고 힘줘 말했다. 그의 얼굴에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문씨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시민들에게 더 좋은 편지를 쓰고자 캘리그래피를 배우고 있다. 빅판으로 일하며 떨어진 가족과 함께 동경했던 어촌에 가서 살고 싶다고도 말했다.

동행 취재가 끝난 오후 3시30분쯤 그는 다시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빅이슈입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6일 진행된 빅이슈 판매원과 직원들의 연탄 봉사 모습.(빅이슈 코리아 제공)

bchan@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