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서울 사는 수달 최소 15~20마리, 한강·지천 동시조사해보니
시민과학 방식 수달 동시조사·개체 파악 처음
DNA 분석에서도 최소 15마리 서식 추정
서울시는 수달 서식하는 한강·지천 난개발
지난 20일 서울 영등포 여의도에 있는 샛강에는 ‘똥을 쫓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서울수달센서스’ 조사에 나선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활동가들이었다. 주로 환경단체들로 이뤄진 서울수달보호네트워크는 지난 20~21일 샛강을 포함한 한강의 8개 지천에서 천연기념물 330호이자 멸종위기 포유류인 수달의 배설물, 발자국 등 흔적을 동시조사했다.
63빌딩 인근 한강 합수부부터 샛강 생태공원 방문자센터 인근까지 이들은 샛강에 ‘도드라진 바위’들을 살피며 걸었다. 염형철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공동대표는 “수달이 최상위 포식자이다 보니 영역을 똥으로 표시한다. 똥을 한정 없이 쌀 수는 없으니 다른 개체가 봤을 때 ‘여기가 이미 선점된 곳이구나’를 알 수 있도록 잘 보이는 데다가 싼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샛강 강가에는 아직 녹지 않았던 눈 위로 강물에서 시작해서 무지개 같은 반원을 그려놓은 발자국이 있었다. 다리 아래 돌이 평평하게 쌓인 공간에서는 지난 16일에 이어 다시 수달의 흔적이 관찰됐다. 지난 16일에는 수달 두 마리가 함께 노는 모습이 ‘한강’이 설치한 무인카메라에 찍혔다. 이곳에서는 수달의 배설물이 발견됐다. 다음날 조사를 위해 배설물을 치우던 염 대표는 “우리가 똥을 치워버리면 수달이 ‘기껏 똥을 싸서 영역 표시를 해뒀더니’하며 짜증 낼 수도 있겠다”며 웃었다.
27일 서울수달넷의 모니터링 결과를 종합하면 한강과 지천에 서식하는 수달의 수는 적어도 15~20마리로 추정된다. 수달 서식 사실이 확인됐던 안양천이 이번 조사 대상에서 빠졌고, 아직 조사가 이뤄지지 못한 하천이 더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서울의 수달 개체 수는 20마리가 넘을 수도 있다.
서울시의 용역으로 한국수달보호협회가 실시한 배설물을 이용한 DNA 분석에서도 적어도 15마리의 수달이 한강, 지천에 서식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전문가들의 과학적 분석에서도 시민단체의 동시조사 결과가 신빙성이 있음이 증명된 것이다.
시민과학 방식으로 서울 내 하천과 습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실시된 이번 조사에서는 대부분 하천과 습지에서 배설물, 발자국 등 수달 흔적이 발견됐다. 경향신문은 20일과 21일 고덕천, 탄천, 중랑천 등 조사에 동행했다.
서울 내 하천에서 센서스라는 이름으로 전체 수달의 서식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시도가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 하천에 사는 수달 수를 추정한 결과가 공개되는 것 역시 처음이다. 조사 대상 하천 및 습지는 고덕천, 샛강, 중랑천, 탄천, 안양천, 홍제천, 암사습지, 성내천, 난지습지 등이다. 이 하천·습지는 모두 여러 차례에 걸쳐 수달의 흔적인 배설물과 발자국 등이 발견되거나 육안, 무인카메라 등을 통해 수달의 모습이 포착된 곳이다.
환경단체들이 수달 현황 조사를 동시에 시행한 것은 수달의 이동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보통 수컷의 세력권은 15㎞, 암컷은 7㎞ 정도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조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개체 수가 중복될 가능성이 있다. 환경부가 매년 겨울철 철새들의 개체 수 파악을 위해 실시하는 조류동시센서스도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모니터링을 한다.
이번 센서스로 각 지역마다 서식하는 개체들이 구분될 수 있음이 확인됐다. 염 대표는 “여러 하천에서 동시간대에 관찰된 수달 흔적들은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수달이 한강과 지천에 서식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배설물과 발자국, 무인카메라 촬영 모습만으로 개체 수를 파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연구자들은 수달 분변에 담긴 DNA를 분석해 개체 수를 파악하는 방식을 이용한다. DNA 분석 방식을 이용하면 확보된 배설물을 남겨놓은 개체들의 수는 정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다.
수달 흔적 조사로도 수달의 서식처 현황과 주로 이용하는 장소 등의 정보를 얻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 이번 동시조사에서도 수달들이 주로 배설하는 바위와 쉬어가는 장소 등이 확인됐다. 한성용 한국수달연구센터장은 “개체 수 파악에는 DNA 분석이 필수적”이라면서도 “흔적 조사 방식은 수달의 분포 현황을 파악하는데 활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 “어떤 장소를 선호하는지 등의 정보도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시민과학은 다양한 과학 분야에서 전문가들의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연구자들이 지천 곳곳에 상주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상시적으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
수달은 1997년 팔당댐 하류에서 사체가 발견된 이후 서울에서 자취를 감췄다. 2016년 광진교에 다시 나타났고, 2019년에는 한강 본류인 밤섬에서 처음으로 확인됐다. 이후 탄천과 샛강, 홍제천, 중랑천 등 곳곳의 지천에서 모습이 관찰되고 있다.
수달 개체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는 해도 한강과 지천의 환경은 여전히 수달 서식에 적합한 환경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지난 21일 서울 내 하천 중에서 비교적 자연환경이 잘 보전된 탄천에서는 곳곳에서 수달 흔적이나 다양한 야생동물들의 모습이 관찰됐는데 쓰레기는 더 많았다. 이현희 숲여울기후환경넷 팀장이 천변 모니터링을 하기 전 보여준 수달 배설물 속 플라스틱이 어디에서 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탄천은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서 보전이 우선시되는 하천이다. 이 팀장은 “수달 모니터링을 하면서 동시에 쓰레기를 주워 가지만 며칠 후면 또 쓰레기가 버려져 있다”고 말했다.
서울 지천에서는 친수 환경을 조성한다는 명목으로 수달이 주로 이용하는 강기슭 부분에 시설물을 들여놓는 경우가 많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천르네상스라는 이름의 사업을 추진하면서 자치구들의 난개발을 더 부채질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여의도에 서울항을 만든다는 계획까지 세우면서 환경단체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중랑천 하류에서는 이미 산책로가 조성된 강기슭에 콘크리트 호안이 또 조성됐다. 중랑천 상류에서는 서울시가 필요 없는 교량을 만들려 하면서 멸종위기 조류 흰목물떼새가 위험하다. 철새보호구역으로서 서울 도심에서는 생물다양성이 손꼽힐 정도로 높은 중랑천과 안양천에서는 최근 수년 사이 벌어진 하천 난개발로 철새 수가 급감하고 있다.
염 대표는 “척박한 한강 지천에 서식하고 있는 수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더 이상의 하천 개발은 중단되어야 한다”며 “내년에는 전국 하천의 난개발을 막기 위해 서울에 이어 전국수달보호네트워크를 만들어 조사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수달은 어떤 동물?
국내 수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꼽히는 수달은 식육목 족제비과에 속하는 포유류다. 몸 길이는 64~71㎝이고, 꼬리 길이는 39~49㎝ 정도, 몸무게 5~14㎏이다. 수중생활을 하기에 알맞도록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있으며 주로 어류를 먹이로 삼는다. 교미 시기는 1~2월이며 한 번에 2~4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과거에는 전국 곳곳에 많은 수가 서식했지만 모피를 얻기 위한 남획과 하천 환경 훼손 등으로 수가 급감했다. 세계적으로는 시베리아를 제외한 유라시아와 북아프리카 등에 분포한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멸종위기 동식물 목록인 적색목록에서는 유라시아 수달을 ‘준위협(NT, Near Threatened)’ 범주로 구분하고 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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