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의 숨은 명산 영광 대덕산] 영광굴비와 모싯잎 송편...맛 산행지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포 대덕산大德山(240.7m)은 사진작가들의 '물돌이' 출사 장소로 유명하다. 물길이 태극 모양으로 도는 것을 '물돌이'라 한다. 이곳에서는 삼각대를 세우고 하늘을 응시하는 사진작가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와탄천은 고인돌마을인 고창 상금마을 고산(528.3m)계곡 상류에서 시작한다. 굽이굽이 흐르다 법성포구를 지나 서해로 빠지기 직전 대덕산 옆구리에서부터 하늘과 땅, 바다가 어우러지며 시시각각 몽환적인 풍경을 보여 준다. 여름이면 모내기를 끝낸 논바닥, 가을이면 황금 들녘, 겨울에는 눈 내린 벌판, 그리고 칠산 앞바다로 떨어지는 노을. 어느 계절 어느 시간에 가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곳은 광각렌즈가 있어야만 전체를 담을 수 있을 정도로 광활하다.
대덕산에서 물돌이 사진을 찍기 좋은 곳으로는 무덤 조망대, 돌무더기, 팔각정, 그리고 팔각정 옆 암릉이 있다. 순창 무직산, 진안 천반산, 예천 회룡포처럼 내륙에 있는 물돌이는 자연의 힘으로 오랜 세월 깎이며 만들어진다. 반면 와탄천 물돌이는 해안가에 위치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졌다. 이곳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갯벌이었다. 송편 모양의 반원형 제방을 쌓음으로써 거대한 간척지가 생겨났고, 제방 안쪽에 있는 큰소드랑 섬과 작은소드랑 섬은 논 한가운데 섬 아닌 섬이 되었다.
조망 뛰어나고 볼거리 많은 작은 산
법성포 사람들은 대덕산을 앞산이라 부르고 숲쟁이(숲으로 된 성)가 있는 인의산을 뒷산이라 부른다. 들머리는 언목 언덕에서 출발한다. 이미 100m 가까이 올라와 있기에 정상까지 30분이면 충분하다. 이정표와 등산로 정비 상태는 양호하다. 산행이 끝날 때까지 와탄천이 계속해서 보이며 짧은 거리에 비해 볼거리가 많다. 고도의 기복이 크지 않아 초심자도 힘들지 않은 곳이다.
정상에 있는 팔각정에서는 법성포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 바다 쪽으로는 구수산, 봉대산, 금정산이, 내륙으로는 물무산을 비롯해 장암산, 태청산, 무등산까지 막힘없다. 정상을 지나 1.4km 지점에 있는 마촌마을 갈림길과 1.5km 지점에 있는 법백교 갈림길에서 '법백교' 이정표만 따라가면 길 잃을 염려는 없다. 법백교 갈림길에서부터 300m가량 조성된 등나무 울타리는 연보랏빛 꽃이 피는 5월에 다시 찾고 싶어지는 곳이다.
'영봉' 암반 지대 풍수가 예사롭지 않다. 어깨높이의 정사각형 시멘트 벽 안에는 '영봉靈峯제터암巖'이라 쓰인 비석이 있다. 멀리 구수산 응암바위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법성포 토박이 정정범(60)씨의 말에 의하면, "영봉은 바다에서 죽은 영혼을 위한 씻김굿과 무사 안녕을 기원하던 곳으로 신령스런 기운이 감도는 곳"이란다.
커다란 오동나무를 지나면 원시림이다. 이곳만 벗어나면 법백교까지는 오솔길이나 다름없다. 원불교 성지인 옥녀봉이 보이면 산길은 끝난다. 이곳부터 은선암隱仙庵까지는 30분 정도 와탄천 수변도로를 따라간다.
도로변에 있는 안내도 뒤쪽 데크 계단을 통해 15분 정도 올라가면 7부 능선에 은선암이 있다. 조선 헌종 3년(1662년)에 중수했다고 전해지는 비구니사찰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수직 절벽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 위세가 당당하다. 바로 위쪽이 대덕산 정상이다. 대웅전 뒤 암벽에는 석간수가 흐른다. 맑은 물이 사시사철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고 한다.
곳간을 지키는 호리병형 길지
은선암에서 나오는 길 전망대에서 '조기의 수도' 법성포 읍내가 한눈에 보인다. 이곳은 산세가 오목하게 에워싸고 바다로 나가는 출구가 좁아 재물이 나가지 못하는 호리병형 명당이다. 예부터 영광을 '옥당골'이라 불렀다. 옥당玉堂은 화려한 전당이나 궁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또한 왕의 자문과 경서, 사적을 관리하는 '홍문관'을 지칭하기도 한다. '부귀옥당富貴玉堂'이라는 말에서 옥당은 재물이 많은 집을 뜻한다.
법성포는 고려 성종 때 남쪽 12곳의 조창 중 하나였다. 이곳은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영산포(영산창)와 함께 전라도 2대 조창으로 번성한 포구이며 문물의 집산지였다. 자연스레 조창을 보호하기 위한 수군 기지와 수군만호가 상주하며 전라도 최대 포구로서 번영을 누렸다. 특히 법성포는 중국과 백제를 이어주던 뱃길이며 무역항이었다. 법성포를 윤택하게 하는 중심에는 '조기'가 있다.
조기와 굴비는 가공 여부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조기는 날것이고, 조기 말린 것을 굴비라 한다. '부세'도 조기의 일종으로 귀한 몸값을 한다. '보리굴비'는 냉장 시설이 없던 시절, 조기를 통보리 속에 넣고 숙성했던 데에서 유래한다.
법성포 해풍에 말린 굴비를 고집하는 이유
법성포에서는 4월 진달래꽃이 피면 조기가 올라온다는 말이 있다. 북쪽 연평도에서는 늦어도 사월 초파일이면 조기가 모여든다 해서 이날을 조기 생일이라고 한다. 겨울철엔 제주도 남서쪽과 동중국해 수심 30m 지역 모래언덕에서 월동하다가 이듬해 4월이면 영광 칠산 앞바다를 거쳐 연평도와 중국 발해만까지 북상한다. 그러다가 6월 말경에 다시 내려오는 회유 어종이다.
법성포 앞 칠산 앞바다에서 조기가 많이 잡혔었지만 이제 명성을 잃었다. 하지만 남도에서 이름난 한정식집들은 대체로 법성포 해풍에 말린 굴비만을 고집한다. 이유는 900년 넘은 오랜 염장 기술에서 오는 쫀득함의 차이다.
모싯잎송편은 굴비와 함께 영광을 대표하는 별미다. 충남 서천 한산에서는 모시를 이용한 옷감 '한산모시'가 유명하지만, 영광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모싯잎을 이용해 떡을 만들어 먹었다. 그러한 연유로 2016년에는 '영광 모싯잎송편'을 지리적 표시 농산물로 등록 신청했다.
모싯잎 송편의 주재료인 모시풀은 깻잎과 모양이 비슷하다. 옷감으로도 사용하고 뿌리와 잎은 음식으로 이용하거나 약재로 쓰인다. 전라도와 충청도 해안지역에서 나는 것은 향이 강하다. 모시는 음식의 부패를 막는 천연방부제 역할을 한다. 쉽게 쉬어 버리는 여름 음식도 모싯잎으로 감싸 두면 오랜 시간 두고 먹을 수 있다.
모싯잎 송편은 모싯잎과 멥쌀을 섞어 반죽한 후 깨고물, 팥고물, 동부고물을 넣어 만든다. 모싯잎은 영양적으로도 탁월하다. 식이섬유가 많고 우유보다 칼슘이 40배 이상 많다고 한다. 여행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진다. 법성포 대덕산은 눈이 즐겁고 입이 즐거운 산행지가 틀림없다.
산행길잡이
언목-KBS송신소-무덤 조망대-대덕정(팔각정)-갈림길(주의)-등나무터널-영봉제터암-오동나무-편백숲-와탄천 수변도로-은선암-언목 (7.8km 3시간 20분)
교통(지역번호 061)
서울센트럴터미널에서 영광종합버스터미널까지 운행하는 우등버스가 1일(07:00~22:00) 7번 운행한다. 시간은 3시간 30분 소요되며 요금은 2만9,100원이다. 영광 버스터미널에서 법성포 가는 군내 버스가 08:15부터 1시간에 1대씩 있다. 문의 1666-3360, 영광 금호고속 사무실 353-0040.
맛집(지역번호 061)
법성포에는 굴비와 모싯잎송편 집이 밀집해 있다. 다들 비슷해 보이지만 모싯잎송편으로 가장 유명한 맛집은 두리담 모시송편이다. 가격은 선물용 소포장 제품이 1만 원부터 시작한다. 문의 356-8979.
법성포에서는 굴비정식을 시키면 기본적으로 조기구이, 굴비, 고추장 굴비, 조기탕을 함께 맛 볼 수 있다. 단체로 이용하기에는 토우식당이 편리하다. 4인 기준 6만~10만 원. 문의 356-8424.
월간산 12월호 기사입니다.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