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금융가격과 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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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 정해지는 가격들 상당수가 이 프로세스를 따른다.
보험사들이 개별적으로 발표를 하다보니 마치 자율적인 것처럼 보이려 했지만 실상은 금융당국, 더 나아가 정치권까지 시장 가격에 개입한 팔비틀기 한판이었다.
우리나라 금융 가격이 문제인 건 예외와 관행이 원칙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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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가격은 시장이 결정한다. 자유자본주의 기본 원칙이다. 금융당국이 나서서 가격을 손보기 시작하는 순간 원칙은 깨진다. 이른바 '관치(官治)'의 시작이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예외가 계속되면 관행이 된다. 정부와 같은 힘 있는 기관이 관행을 당연하게 생각하면 시장이 아니라고 해도 그게 원칙으로 둔갑한다. 예외가 원칙이 되고, 관치가 어느 순간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게 되는 프로세스는 이렇게 완성된다.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 정해지는 가격들 상당수가 이 프로세스를 따른다. 대표적인 게 자동차보험료다. 명목상 완전 자율제다.
그러나 시장에서 자동차보험료가 시장 자율에 맡겨진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올해도 지난 4월 1.2~1.4% 보험료가 인하되더니 지난주 2.0~2.9% 한차례 더 내린다고 각 보험사들이 발표했다. 보험사들이 개별적으로 발표를 하다보니 마치 자율적인 것처럼 보이려 했지만 실상은 금융당국, 더 나아가 정치권까지 시장 가격에 개입한 팔비틀기 한판이었다.
혹자는 지난해와 올해 코로나19(COVID-19)로 차량 운행이 줄었으니 내려도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그게 시장 원리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그 말이 맞으려면 2018~2020년까지는 보험료가 올랐어야 했다. 보험사들은 3년간 누적 3조원에 가까운 적자를 자동차보험에서 봤지만 보험료는 동결됐다. 보험사의 뜻에 따른 동결은 아니었다.
실손의료보험(이하 실손보험)료도 마찬가지다. 내년에도 올해 발생한 적자 규모를 메우고자 보험료가 평균 8.9% 인상된다. 그러나 매년 3조원 가량의 적자를 정상화하고, 보험료 100만원을 받아서 130만원이 보험금으로 나가는 구조를 바로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인상폭이다. 그럼에도 가격은 그렇게 결론 났다. 시장이 아닌 또다른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않는 손'이 가격을 주물럭거리기 때문이다.
가격이라는 의미를 확장해 보면 은행의 여수신 금리와 신용카드 수수료율 결정도 다르지 않다. 은행의 여수신금리를 관리하려는 금융당국의 장치들이 소비자 편의라는 이름으로 점차 늘어나고 있는 건 올해 지속적으로 지적되는 사항이다. 카드 수수료율은 아예 대놓고 '관치'다. 금융당국이 나서서 3년마다 결정해 준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카드수수료율 산정에 정부가 직접 관여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물론 이윤 추구가 제1의 목표인 민간 기업들의 가격 결정을 견제할 장치는 있어야 한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올린다면 당국이 나서 제동을 걸어줄 수 있다. 또 담합이 있다면 흩어놓는 것도 당국 역할이다. 단, 이는 시장 가격이 왜곡됐을 때에 할 수 있는 예외 상황이다. 우리나라 금융 가격이 문제인 건 예외와 관행이 원칙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어서다.
요즘엔 '신(新)관치'라는 말까지 나온다. 당국이 가격뿐 아니라 금융권 인사에까지 개입하려 한다는 비판에서 나온 말이다. 관치의 가장 큰 폐해는 불투명성이다. 가격 결정도, 금융기관 인사 예측도 어려운 이유다. 결코 일반적이라고 할 수 없는 상황들이 금융업계에서 마치 당연한 것처럼 진행되고 있다.
김세관 기자 son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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