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알면 내가 보인다···익숙함과 낯섦의 균형 찾기 [송주영의 맛있게 그림보기]

2022. 12. 27.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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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예술 취향 찾기
편집자주
아무리 유명한 예술작품도 나에게 의미가 없다면 텅 빈 감상에 그칩니다. 한 장의 그림이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맛있게 그림보기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그림 이야기입니다. 미술교육자 송주영이 안내합니다.
유명 유튜버 릭 비아토의 2020년 9월 영상 '왜 베이비붐 세대는 팝음악을 싫어하는가'라는 제목의 영상은 지금까지 96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아직까지도 많은 논쟁 댓글들이 작성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좋은 음악 vs 나쁜 음악? 청소년기의 경험 차이일 뿐

미국 기타리스트 리 비아토는 60세의 나이에 327만 명의 팔로어를 둔 유튜버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주로 1970~1990년대 어쿠스틱, 록 음악을 다루는데, 몇 년 전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요즘 대중음악은 예전에 비해 형편없다'는 주제로 올린 그의 영상 때문이었다. 그의 주장에 반대하는 댓글들이 넘쳐났고 급기야 미국의 유명 음악 저널에 '베이비붐 세대 vs MZ세대 갈등'이라는 타이틀의 기사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젊은 세대는 릭 비아토가 최근의 음악 트렌드인 힙합, 소프트팝, K-POP 장르를 과거 기준으로 폄하한다고 비난했고, 1970, 1980년대의 대중음악이 진정성 있는 음악이라며 맞서는 사람들로 소란했다. 특히 1970, 1980년대 대중음악 옹호론자들은 최근 자주 쓰이는 오토튠과 같은 최신 보정 기술로 만든 사운드는 진짜가 아닌 가짜 소리라고 호소한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작곡이나 사운드믹싱 기술이 나날이 좋아지면서 누구라도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오케스트라에 준하는 장엄한 사운드를 창작해 낼 수도 있고, 음치의 음이탈도 다 잡아주는 음 보정의 시대인 건 맞다. "천연 그대로의 창작 vs 신기술을 사용한 인위적이고 기술적인 창작", 이런 대립의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 사이에 벌어지는 호불호 논란은 사실 모든 예술 장르에서 벌어진다.

그런데 릭 비아토의 논란을 소개하던 기사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청소년기에 접한 음악이 평생의 음악 취향, 장르의 선호를 결정한다는 뇌과학 연구다. 2015년, MIT의 낸시 캔위셔, 조시 맥더모트 등의 뇌과학자들은 오직 음악 소리에만 반응하는 신경회로를 찾아냈다. 인간의 뇌 측두엽 상부에 있는 특정 부분이 음악에 반응하는데, 이는 바람소리, 개 짖는 소리, 경적 소리와 같은 '환경 소음'에 반응하는 영역과 달랐다. 음악에 반응하는 뇌의 영역은 오히려 언어 영역에 근접해 있고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과 유의미하게 겹친다고 한다. 이 연구에 덧붙여, 뇌과학자 대니얼 레비틴, 심리학자 피터 자네타 등은 어린 시절 자주 들었던 음악에 대한 기억이 성인이 된 후의 취향 형성에 미치는 연구를 진행하였는데, 12세에서 22세 사이의 음악적 체험이 평생의 취향에 영향을 준다고 분석하였다. 자아와 인격이 형성되는 이 시기의 체험은 '회고 절정(reminiscence bump)'이 되어 나머지 평생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는 뇌과학 분야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일차 청각 센터(빨간색)와 음악 및 노래 영역은 측두엽의 상부에 있다. 자료 Database Center for Life Science(DBCLS)
음악 관련 기억의 연령별 분포 확률을 실제 데이터와 이를 근사한 감마 함수로 나타낸 그래프. 자료 자쿠보우스키 외, Music & Science, 2020년

릭 비아토의 논쟁, 그리고 최근 뇌과학 연구 결과를 보면서 두 가지 예술 관련 용어가 생각난다. 하나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habitus)'이고, 다른 하나는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전개했던 '데페이즈망(dépaysement)', 우리말로는 '낯설게 하기'다. 예술 장르에 대한 호불호, 취향 문제는 단순한 세대 갈등 문제라기보다는 아비투스와 낯설게 하기가 얽혀 있는 현상으로 봐야 할 것이다.


문화적 취향의 대물림은 민감하고 예민한 문제

피에르 부르디외는 개인의 문화적 취향을 사회적 계층 문제로 보았다. 쉽게 이해하자면 “금수저, 흙수저는 예술 취향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그가 프랑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대학을 나온 고학력자들은 오페라와 클래식 공연을 좋아하고 기업 임원들은 와인 애호가들인 반면, 교육수준이 낮고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노동자들은 맥주를 마시며 텔레비전의 스포츠 중계 방송을 보더라는 것이다. 이러한 취향은 문화적 대물림을 통해 구현된다는 것이 부르디외가 설명하는 아비투스다. 아비투스는 문화적 습관 및 취향을 뜻한다. 부르디외가 만약 청소년기에 음악 취향이 정해진다는 2015년의 MIT 연구 결과를 알았다면 무릎을 치며 좋아했을 것 같다. 그러나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이야기는 적지 않은 공격을 받았다. 21세기의 예술 감상 환경은 20세기와 전혀 다른 풍경이기 때문에 아비투스의 설득력은 떨어지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 누구나 쉽게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고, 맥주를 마시며 스포츠 경기를 보는 일은 이제 신분이나 경제력과 무관한 시대다. 그럼에도 부르디외가 제기한 아비투스 문제, 그리고 2015년 뇌과학자들이 밝혀낸 청소년기에 취향이 정해진다는 문제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지점이 있다. 부르디외의 영향으로 프랑스는 1968년에 대학 서열 체계를 없애고 제1대학, 제2대학 등 동등한 대학 시스템을 확립하였으나, 지금의 프랑스 대학들이 서열 없이 모두 평등하게 같은 아비투스를 생성하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그렇지 못하다. 프랑스 대학들 사이의 서열은 여전히 존재하며, 더 가진 이들의 취향과 그렇지 못한 이들의 취향 차이는 간격이 좁혀졌을 뿐 여전히 똑같지 않다.

피에르 부르디외와 '구별짓기' 표지.

어떤 예술적 장르, 그림이나 노래에 대한 호불호, 즉 취향 문제는 여전히 민감하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고, 빈부격차의 표현이 잔인해서 싫다는 사람도 있다. 오페라의 아리아는 좋아해도 화물차 운전석에서 나오는 트로트 음악은 힘들다는 사람도 있다. 취향을 드러낸다는 것은 곧 자신의 사회경제문화적 좌표가 부지불식간에 드러나는 일이다. 그래서 불편하다. 그래서 서로 싸운다. 릭 비아토의 의견에 맞서 핏대 올리며 싸우는 사람도, 그런 사람들을 보며 또 질타하는 사람도 결국 취향의 다름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볼 때 뇌는 익숙함을 먼저 선택한다

그렇다면 그림에 대한 뇌의 반응도 12~22세의 ‘회고절정’ 논리처럼 청소년기의 취향을 따를까? 인간의 감각기관 중에서 가장 정교한 장치라 할 수 있는 눈은 하루에 2만 번 깜빡이고 10만 번 눈 근육을 움직여가며 정보의 80%를 처리한다. 우리의 뇌는 각자의 기억과 경험에 근거하여 선택적으로 시각 정보를 처리한다고 알려져 있다. 굳이 어려운 이론에 대해 몰라도, 형태와 색상이 모호한 그림을 볼 때 우리는 결국 익숙한 것, 경험했던 것을 근거로 ‘본다’는 결론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착시에 대한 퀴즈로 종종 등장하는 그림들만 살펴봐도 금세 알 수 있다.

산드로 델 프레테의 '돌고래의 메시지'(1987). 성적 이미지에 대한 인식이 없는 4~5세의 아이들 눈에는 9마리의 돌고래만 보인다. 우리의 뇌는 경험에 따라 시각 정보를 판단한다. 자료 Sandro Del-Prete sandrodelprete.com

그림을 볼 때 뇌는 경험된 기억과 언어 맥락적인 반응을 함께 작동시킨다.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뇌는 그림과 음악을 보고 들을 때 '익숙함'을 가장 먼저 선택한다. 이 익숙함을 편안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그 그림과 음악은 좋은 것이 된다. 그렇게 취향은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일이 생긴다. 익숙함을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지루하게 여기는 순간, 취향에는 새로운 균열이 발생한다. 이 균열은 역설적으로 예술의 새로운 에너지가 된다. 이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그림이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작품들이다.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 1929년, LA카운티미술관 소장.

익숙함을 ‘낯설게 하기’는 현대예술의 특징

초현실주의 회화를 이끌었던 벨기에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은 당대의 인문학자들이 열광했던 작품이다. 파이프를 그려 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써 놓은 문구는 그 자체로 모순과 역설이다. 누가 보아도 파이프지만, 실제 파이프가 아닌 그림일 뿐이다.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유명한 ‘낯설게 하기’ 연출법도 같은 맥락이다.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들은 배우에게 쉽게 감정이입을 하며 극에 몰입하는데, 이 몰입을 중간에 방해하면서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연극일 뿐이다”를 일깨워주는 장치가 ‘낯설게 하기’다. 추방한다는 뜻을 가진 데페이즈망, ‘낯설게 하기’는 원래 문학가들이 먼저 시작했던 말이었지만 미술, 연극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된 개념이다. 기존의 것을 벗어나 새로움을 모색하는 것이 곧 현대성이다. 마그리트는 비논리적인 방식으로 사물을 배치, 배열하였다. 당연하고 익숙한 것을 비틀어 새로운 시각으로 보려는 노력이 곧 현대적 개념의 창작이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예술가들은 새로운 시도를 통해 기존의 예술 트렌드를 바꾼 사람들이었다. 새로운 시각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 그것은 인상주의, 입체주의, 표현주의 등으로 불리는 하나의 예술사조가 되었다. 익숙함과 낯선 것들 사이의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예술이다.

르네 마그리트, '듣는 방(The Listening Room)', 1952. 출처: www.ReneMagritte.org

나의 취향을 안다는 것은 결국 나를 아는 것

익숙한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니며, 낯선 것이라고 해서 배척하고 버려야 할 무엇도 아니다. 한때 우리 인간은 역사란 늘 새로움을 획득하면서 진보하고 발전한다고 여기기도 했지만, 고대 동양인들이 깨달았다던 빛과 그림자, 낮과 밤처럼 순환하는 원형적 세계관에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고급과 저급의 차이가 희미해졌고 중심과 주변의 경계도 흐려졌다. 그 좌표 어디쯤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각자가 있을 뿐이다. 그러하니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찾는 일은 의미가 있겠다. “나는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왜 그것을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가?” 각자의 답은 다를 것이다. 아무리 들어도 굵직한 바리톤 성악가의 음색이 좋을 수 있고, 기관총처럼 쏟아내는 힙합이 좋을 수 있다. 아무리 보아도 한땀한땀 붓질로 완성한 정물화가 좋을 수 있고, 붉은 색이 전부인 추상화가 좋을 수 있다. 그 안에는 당신의 12세에서 22세 사이에 경험했던 것들과, 이후 조우했던 여러 익숙함과 낯선 것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당신만의 취향이 있을 것이다. 2022년이 저물어가는 지금, 이번 한 해 동안 내가 선호했던 취향은 무엇인지 돌아보자. 나의 취향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곧 나 자신을 가장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며, 2023년 새해를 계획하는 데 큰 거름이 될 것이다.

송주영 미술교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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