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서 섹슈얼리티 뺀다고?…사실상 공교육 방기”

오세진 2022. 12. 27.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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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화 아하센터 센터장 인터뷰
이명화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센터장. 이명화 센터장 제공.

“시민이라면 알아야 할 최소한의 정보와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공교육의 역할 아닌가요? 성평등과 같이 엄연히 존재하는 개념을 학생들에게 가르치지 않는 것은 국가가 공교육 책임을 방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명화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아하센터) 센터장은 26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교육부가 ‘성평등’ ‘성소수자’ ‘섹슈얼리티’ 등의 용어가 삭제된 새 교육과정(2022 개정교육과정)을 지난 22일 확정한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청소년 성교육·성상담 전문가로서 우려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학생들의 성인지 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성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이명화 센터장은 “누구나 성적인 존재로 태어나서 다른 사람과 친밀감을 향유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누구와 성적인 관계를 맺을 것인지, 사회적으로 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등을 생각할 수 있는 언어가 섹슈얼리티”라며 “새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1990년부터 청소년 성교육 활동을 시작해 2001년부터 청소년 성교육 및 성상담 전문기관인 아하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다.

이 센터장은 새 교육과정 영향으로 성교육 후퇴가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그는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성교와 성적 반응(성적 자극에 의한 반응) 등을 구체적으로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유튜브, 웹툰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성적인 정보를 많이 얻기 때문에 성에 대해 궁금한 점들이 많지만, 지금의 성교육으로도 학생들이 정말로 알고 싶은 내용을 알려주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며 “섹슈얼리티 교육이 빠진 새 교육과정이 시행되면 그나마 이뤄져 온 성교육은 더욱 위축되고, 성교육을 검열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학교 현장의 목소리도 다르지 않다. 수도권의 한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 ㄱ씨는 최근 <한겨레> 인터뷰에서 “교육과정이란 것은 교사가 수업할 때 지켜야 하고 학습 내용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법적 문서와 다름없다”며 “(혐오) 공격을 받더라도 교육과정 총론에 ‘성평등’이 적혀 있으면 ‘교육과정에 분명히 명시돼 있다’고 방어를 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관련 용어들이 삭제되면 교사가 소신대로 교육하기 어려워진다. 맞설 방패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청소년들은 원하는 성교육은 무엇일까. 지난 9월24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2022 청소년 성문화 연설대전’은 이를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당시 모인 청소년 9명은 자신이 원하는 성문화와 성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했다.

“생물학적 성 지식과 성폭력 예방 내용이 전부여서 피임법이나 성 질환 예방법 등 필요한 정보를 배울 수 없었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 ㄱ(19)양
“학교 체육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같은 반 여자친구가 저를 앞으로 밀치더니 ‘넌 남자니까 앞에서 공이나 막아’라고 말했습니다. 저 남자 맞습니다. 그런데 저는 피구하다 공 맞을까 두려워 피해 다니는 보통의 초등학생입니다. 성역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위해서는 우선 매일 만나는 부모님,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들까지 모두 함께 도와주셔야 합니다.” -초등학생 ㄴ(12)군

한 청소년은 성소수자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작년에 급식실에서 한 친구가 갑자기 다른 친구에게 조용하게, 하지만 같이 있던 친구들은 다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너 혹시 여자 좋아해?’라고 물었어요. 아주 불편한 표정으로. (중략) 소수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고 더 이상 숨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고등학생 ㄷ(18)양

이명화 센터장은 성교육에서 성소수자 교육은 필요하다고 했다. 유네스코 국제 성교육 가이드는 섹슈얼리티 교육의 하나로 성소수자 차별은 잘못된 것이라는 내용을 가르치도록 하고 있다. 이 센터장은 “성소수자 교육을 하지 않으면, 성소수자가 우리 주변에 분명히 있는데 ‘그게 뭐야?’라고 묻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성소수자 당사자 입장에서는 ‘교과서에도 없는 나의 존재는 무엇일까’라며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가혹한 일”이라고 했다. 이어 “그동안 교육에서 다루지 않은 인터섹스(여성과 남성 생식기를 모두 갖고 태어남) 존재를 가시화하고 동성애, 양성애 등도 다뤄야 하는 것이 진정한 성교육”이라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남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평등 교육도 중요하다는 것이 이 센터장의 설명이다. 그는 “(성폭력) 가해자로 상담실에 오는 남학생들을 만나 보면 제대로 성교육을 받았어도, 상대방의 동의와 합의 없이 자신의 성적 욕망을 행동으로 그대로 표출하는 것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한 번쯤 생각해봤다면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며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전통적인 남성성을 강요하는 성문화를 남자 청소년 스스로 성찰하고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주체로 만드는 성평등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지난 22일 확정한 2022 개정교육과정은 2024년 초등학교 1·2학년을 시작으로 2025년 초3·4 및 중1·고1학년, 2026년 초5·6과 중2·고2학년, 2027년 중3·고3학년에 차례로 적용된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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