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역사의 휴일’은 끝났다
올해 세계에 가장 큰 정치적 영감을 불러일으킨 정치가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였다. 2022년 세계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박자에 맞춰 행진했다. 그는 “전장은 이곳이다. 나는 탄약이 필요하지 (탈출을 위한) 교통편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는 한마디 말로 조국을 구했다.
미국조차 러시아의 승리를 당연시하고, 우크라이나군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사회 지도층의 국외 탈출이 러시를 이루었다. 하지만 젤렌스키는 “용기도 두려움만큼 널리 전파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골리앗 러시아군을 종이호랑이로 만들었다. 한 국가의 진정한 힘은 덩치가 아니라 자유를 향한 용기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페르시아 제국에 맞서 싸운 그리스인 이야기의 현대판이다.
얼마 전 타임지는 젤렌스키와 함께 ‘우크라이나의 투혼(The Spirit of Ukraine)’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우크라이나는 2021년 국제투명성 기구의 부패인식 지수(CPI)에서 유럽 최하위인 러시아 다음이었다. 사회 곳곳에 부패가 만연하여, 무슨 일이든 뒷돈을 줘야 했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아이러니지만, 우크라이나는 전쟁을 통해 거듭났다. 지난 12월 21일, 미국을 전격 방문한 젤렌스키는 미 의회에서 연설을 했다. 26분간 연설에 33번의 박수가 터졌고, 21번은 기립박수였다. 그와 그 국민에게 경의를 표한 것이다.
아름다운 이야기는 여기까지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인류에 던진 그림자는 매우 어둡다. 아무도 21세기에, 동유럽에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침략전쟁을 일으킬 걸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이제 피로 물든 20세기의 세계사가 21세기에도 변함없을 거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인류는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미 정치철학자 후쿠야마(F. Fukuyama)는 역사가 마침내 종착점에 도달했다고 선언했다. 승자는 주인, 패자는 노예가 되는 인정투쟁(struggle for recognition)이 끝나고, 상호 인정하는 자유민주주의가 마침내 승리했다. 거대한 역사적 투쟁은 사라지고, 매우 권태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낙관론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도 윌슨주의의 기치 아래 그런 이상주의가 팽배했다. 하지만 영국의 역사학자 카(E. H. Carr)는 파국의 징후를 예감했다. 현실은 이상과의 간극만큼 역사에 복수한다. 이후 불과 20년 만에 더 큰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에 던진 메시지는 명료하다. ‘역사의 휴일’(Holiday from History)은 끝났다는 것이다. 후쿠야마는 가고, 키신저가 돌아왔다. 세계화가 종말을 고하고, 신냉전이 시작되었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의 서진을 저지하는 한편, 중국을 ‘체계적, 경제적 경쟁자’로 규정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서구에 대항하는 ‘모스크바와 베이징 탠덤(tandem· 2두 마차)’으로 결속했다. 냉전의 복사판이다. 두 진영의 가치관도 대립적이다. 서구는 인권, 법치, 민주주의를 옹호한다. 모스크바와 베이징은 반자유적이고 반민주적이다. 그대로 가면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s trap)’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리스크를 다룰 다자구조가 아직 없다.
새로운 세계는 한국의 경제와 안보에 커다란 도전이다. 한국은 자유무역으로 굴기했다. 무역의존도가 80%에 가깝다. 세계화는 한국에 축복이었다. 세계의 공장 중국이 바로 옆에 있었다. 한국은 현재 수출의 25%를 중국 시장에 의존한다. 지난 30년간 대중 무역 누적 흑자액은 7000억이 넘고, GDP는 5.1배 불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 가능했다. 이제 그게 불가능해졌다. 대중 무역수지도 적자로 돌아섰다. 미국의 규제로, 중국에 반도체 투자도 어렵다. 현대차는 105억 달러의 대미투자를 약속했지만, 전기차 보조금 혜택에서는 제외되었다. 국익 앞에서는 동맹도 없다. 올해 한국은 세계 6위의 수출대국으로 올라섰지만, 무역적자는 66년 만에 최악이다.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안보 상황은 경제보다 한층 더 엄중하다. 모스크바, 베이징 탠덤의 확고한 일원인 북한의 핵을 더 이상 막을 수 없게 되었다. 북한은 핵을 만들 능력도, 의지도 없다던 진보 진영의 주장은 파산했다. 적화통일은 북한의 변함없는 목표다. 핵 무력의 완성으로 남벌(南伐)이 실제 가능해졌다. 6·25전쟁 후 완전히 새로운 안보 상황이다. 핵은 핵으로만 막을 수 있다. 북한 핵이 미 본토까지 공격할 수 있는 상황에서, 마냥 미국의 핵우산만 믿으라는 건 이성에 반한다.
현실주의는 이념보다 필요에 의한 정치적 감수성이다. 이념의 바닥에 깔려 있는 진실과 마주해야 한다. 국가의 두 기둥인 안보와 경제가 모두 중대한 위기에 봉착했다. 새로운 현실을 전면적으로 검토하고, 국가의 틀을 새롭게 짜야 한다. 그게 윤석열 정부의 소명이자, 최우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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