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난쏘공
소설가 조세희가 1978년 연작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펴냈을 때 ‘난쏘공 신화‘의 탄생을 내다본 이는 거의 없었다. 당대의 문학평론가 김현은 “한 8000부쯤 나가겠네”라 했고, 작가 자신도 “쓰느라 3년 고생했으니 더 나가야 하는데”라며 걱정했다. 그때만 해도 문학에 도시 빈민의 삶을 담는 것은 흔치 않았다.
▶처음엔 운동권 학생들의 ‘의식화’ 도서로 읽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약자를 돌보는 내용이 1970년대 사회 분위기와 맞물리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올해까지 320쇄 148만부를 찍으며 문학 작품으론 유례를 찾기 드문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소설의 애칭인 ‘난쏘공’은 비단 이 소설만 지칭하지 않고 일상에서 다양하게 변용된다. 리오넬 메시가 몇 해 전 남미 축구대회인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 페널티 킥을 실축하자 신문에 ‘메쏘공’이란 표현이 등장했다. 최근에도 ‘다누리가 쏘아 올린 우주 강국 꿈’ ‘글로벌 OTT가 쏘아 올린 광고 요금제’ 같은 기사 제목으로 활용된다.
▶정작 조세희는 작품의 성공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1996년 100쇄를 돌파하고 2005년 200쇄에 이르자 “아직도 팔리다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출간 30주년 때는 “청년이 이 책 내용에 공감한다는 게 괴롭다”고도 했다. 그는 “30년 전 내가 우리 사회에 품었던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한 한국은 성장하기를 멈춘 나라”라고 비판했다.
▶'난쏘공’은 그에게 자부심이자 또 다른 고지에 오르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었다. ‘앵무새 죽이기’를 쓴 하퍼 리나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샐린저는 명작 하나로 끝났다. 조세희도 ‘난쏘공’을 뛰어넘는 작품을 쓰길 갈망했지만 쉽지 않았다. 1983년 소설집 ‘시간여행’을 끝으로 결국 소설 쓰기에서 멀어졌다. 여러 해 전 해외여행 때 그의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은 “난쏘공을 넘어서는 작품을 써야 한다는 중압감을 늘 느낀다”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곁에서 봤다고 했다.
▶2000년대 들어 병마가 조세희를 덮쳤다. 그는 “집중을 하지 못한다. 젊었던 내게 뛰어와서 써달라고 하던 단어들이 사라진다”며 괴로워했다. 그러나 소외된 이들의 삶에 대한 관심만은 놓지 않았다. 펜 대신 카메라를 들고 탄광촌에 들어가 그곳의 삶을 사진집으로 묶기도 했다. 조세희가 우리 사회 음지를 비추는 밝은 조명탄을 쏘고 크리스마스 날 저녁 영면에 들었다.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 사회엔 발전에 따른 그림자도 드리워졌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 그림자를 돌아보게 한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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