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는 음악에 버금가는 존재… ‘그랜드 마스터’도 제 꿈이에요”
지난달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이혁(22)에게는 숨은 재능이 적지 않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서양식 체스. 26일 간담회에서도 그는 “내게 체스는 취미 그 이상”이며 “언젠가 그랜드 마스터가 꼭 되고 싶다”고 했다. 그랜드 마스터는 국제 체스 연맹(FIDE)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들에게 부여하는 칭호. 7세 때부터 체스를 두기 시작한 이혁은 최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체스 대회에서 3위에 오르기도 했다.
클래식 음악사에도 러시아 작곡가 프로코피예프(1891~1953)와 전설적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1908~1974) 같은 ‘체스 고수’가 적지 않다. “체스가 체력과 논리적인 측면에서도 음악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 이혁의 설명이다. 그는 “피아노 독주회가 2시간 걸린다면, 체스는 속기가 아니라 고전적인 장고(長考)형의 경우에는 네 시간까지도 걸린다. 또한 음악 역시 체스와 마찬가지로 논리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28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콩쿠르 우승 기념 연주회에서 그는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디토 오케스트라(지휘 이병욱)와 협연한다. 롱티보 콩쿠르 결선 당시 협연곡. 그는 “밝고 해학적인 작곡가의 다른 피아노 협주곡과 달리 협주곡 2번은 암울하고 비극적이면서도 그로테스크(grotesque)하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혁은 2012년 쇼팽 청소년 콩쿠르에서 1위에 오르면서 일찍부터 주목받았다. 2016년 폴란드 파데레프스키 콩쿠르 1위, 2018년 일본 하마마쓰 콩쿠르 3위에도 올랐다. 다른 ‘음악 영재’들과 조금 다른 건,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모두 연주한다는 것. 지금도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연습 중이라고 했다. 그의 말에 1부에서는 피아니스트로 협연하고, 2부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로 무대에 서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지난 2016년부터 러시아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일어난 올해 초 프랑스로 옮겼다. 그는 “모스크바는 10대 시절부터 정들었던 도시인데 전쟁으로 스승과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 한 채 급하게 짐 정리하고 나와서 아쉬움과 슬픔이 크다”고 했다. 지금은 파리 에콜 노르말 음악원에서 최고 연주자 과정을 밟고 있다. 일곱 살 연하의 동생 이효(15)도 피아노와 체스에서 모두 재능을 드러내고 있다. 형 이혁은 “동생의 피아노 실력이 그 나이 때의 나보다 낫다”고 말했다. 내년부터는 형제의 피아노 이중주 무대도 계획 중이다. 그는 “언젠가 ‘형제 체스 그랜드 마스터’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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