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죽음의 마약’ 美에 창궐… ‘新아편전쟁’인가

뉴욕/정시행 특파원 2022. 12. 27. 03:0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모르핀의 100배 중독성’ 펜타닐, 18~49세 미국인 사망원인 1위
/일러스트=양진경

미국에서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중독 확산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펜타닐 원료의 최대 생산·수출국인 중국과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중국(청나라)은 19세기 영국이 시작한 아편전쟁의 피해자였는데 이제는 미국으로 밀반입되는 마약성 진통제의 원료를 제공, 21세기판 ‘아편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펜타닐은 원래 고통이 극심한 암 환자 등에게 극소량 투약하는 초강력 진통제다. 중독성은 헤로인의 50배, 모르핀의 100배다. 미국에선 최근 10년 새 유통량이 꾸준히 늘었는데 코로나 팬데믹 이후엔 폭증세다. 마약성 진통제 과다 복용으로 인한 미국의 사망자는 2019년 5만여 명에서 2020년 7만여 명으로 1년새 약 30% 늘었다. 2021년엔 10만7600여 명으로 다시 전년도보다 50% 늘었다. ‘7분에 1명씩 펜타닐 때문에 죽는다’고 할 정도다. 현재 18~49세 미 청년층의 사망 원인 1위는 코로나나 교통사고, 총격 사고 등을 제치고 펜타닐 중독이 차지한다. 팬데믹이 촉발한 경제난과 사회적 고립, 의료 서비스의 질 하락 등이 복합적으로 빚은 결과다.

지난 8월 미 LA에서 한 펜타닐 중독자(오른쪽)가 대로변에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쓰러지려 하고 있다. 미국에 코로나 팬데믹 이후 불법 펜타닐 유통이 폭증하면서, 서부 LA와 동부 펜실베이니아 등 각지에서 이런 젊은 펜타닐 중독자들이 좀비처럼 거리에서 흐느적대거나 쓰러진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AP 연합뉴스

이 때문에 요즘 미국은 펜타닐 중독·사망자 급증 소식으로 공포에 휩싸여있다. 청소년들이 소셜미디어로 쉽게 펜타닐을 구매하며 중독돼 치아가 녹고 좀비처럼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 핼러윈에 어린이들이 받는 사탕 바구니에 색색의 펜타닐이 들어가고, 농촌 주부들부터 월가 직장인까지 펜타닐인지도 모르고 손을 댔다가 중독됐다는 뉴스가 끊이지 않고 나온다.

지난 20일 미 캘리포니아의 알라메다 카운티 경찰이 공개한 각종 신종 펜타닐들. 사탕처럼 알록달록해 어린이와 청소년, 주부 등에게까지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다. /AFP 연합뉴스

미국에 범람하는 펜타닐의 직접 생산자는 남부 국경을 맞댄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이지만, 그 원료를 대는 건 중국이다. 중국 화학 기업들은 펜타닐 성분인 4-AP와 4-ANPP 등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해 멕시코로 실어 나른다. 중국·멕시코 펜타닐 동맹들은 미국 내 중국계 온라인 은행을 통해 가상 화폐 등으로 거래 대금을 주고받아 추적을 피한다. 미 마약단속국(DEA)은 지난 20일 올 들어 국경 지대 등에서 압수한 불법 펜타닐 분량이 총 4.5t이라며 “치사량이 불과 2㎎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성인 3억7900만명, 즉 미국 인구(3억3200만명)를 모두 죽이고도 남을 양”이라고 했다.

지난 9월 미 버지니아 알링턴의 마약단속국 본부 벽에 걸린 펜타닐 중독으로 숨진 이들의 영정사진들. 미국에선 2021년 한해 11만명에 가까운 미국인들이 펜타닐 같은 마약성 진통제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AFP 연합뉴스

미국과 중국 정부는 2018년부터 중국의 불법 펜타닐 원료 생산자들을 규제하기 위해 협력해왔다. 2019년 미·중 무역 협상 타결 전후 중국이 트럼프 정부의 비위를 맞출 당시엔 펜타닐 규제를 최고로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미·중 갈등이 고조되자 중국이 펜타닐 수출 규제의 고삐를 느슨하게 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4일 보도했다. 바이든 정부가 중국 공산당의 신장·위구르족 인권 탄압이나 대만 침공 우려 등을 제기할 때마다 미국 내 펜타닐 유통량이 급증하는 패턴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11월 14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미중 첫 대면 정상회담을 열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이 정상회담 후에도 미국 내 중국산 불법 펜타닐 유통은 줄지 않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실제로 지난 8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중국의 반발 속에 대만을 전격 방문한 후, 중국 측이 모든 펜타닐 규제 관련 회담 창구를 닫아버렸다고 미 당국자들은 WSJ에 말했다. 미국이 주미 중국대사관 등 여러 외교 경로를 통해 대화를 촉구했지만 중국이 침묵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1월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상회담 후 양국 관계가 개선되는 듯 보였지만, 미국 내 펜타닐 불법 유입만큼은 줄지 않고 있다. 뉴욕·텍사스 검찰의 중국인 펜타닐 제조업자 수배령에도 중국은 협조하지 않고 있다. 유엔마약위원회는 지난 3월 규제 물질 목록에 4-AP를 추가했으나 회원국인 중국의 거부로 집행되지 않고 있다.

공장에서 뚝딱 쉽게 만드는 100% 인공합성물인 펜타닐은 제조와 변형, 유통이 쉬워 마약업자들에게 막대한 이윤을 안겨준다. 지난 10월 뉴욕에서 미 마약단속국이 적발한 펜타닐. 어린이 장난감인 레고에 숨겨 색색의 사탕처럼 거래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중국은 미국의 문제 제기에 “미국인들의 과도한 마약 의존이 문제인데 왜 남 탓을 하느냐”(중 외교부 대변인), “누가 타인을 칼로 찔러 죽였다면 (칼 원료인) 철광 생산이 불법인가”(중 펜타닐 원료 생산업체)라고 반박하고 있다. 중국은 미·중 갈등이 커지는 상황에서 막대한 이윤을 내는 펜타닐 원료 생산업체들을 크게 규제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외교 전문지 디플로맷은 “중국은 불법 마약 수출을 단속할 수 있는 수많은 수단을 갖고 있지만 방관하고 있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