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회계장부 3년치 비치해야… 尹 “공시 시스템 만들라”
정부가 주요 노동조합에 대해 내년 1월까지 사무실에 회계 관련 자료를 비치하라고 요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는 노조에는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노동조합법을 고쳐 일정 규모 이상 노조는 회계 감사 결과를 일반에 공표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노조의 ‘깜깜이 회계’ 관행에 대해 정부가 처음으로 적극적인 시정 조치에 나선 것이다. 정부는 ‘노사 부조리 신고 센터’를 설치해 노조와 사측의 불법·부당 행위에 대한 신고도 받기로 했다.
고용노동부는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노조 재정 투명성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최근 건설노조의 조합비 횡령, 노조 간부의 채용 개입 등 일부 노조의 일탈로 인해 전체 노조에 대한 국민 불신이 초래되고 있다”며 “정부는 노동시장 개혁 완수를 위해 노사 관계의 불합리한 관행 개선을 본격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고용부는 먼저 오는 29일 조합원 1000명 이상의 대규모 노조와 상급 단체 253곳에 공문을 보내, 내년 1월 말까지 노조 사무실에 회계 장부 등 노동조합법 상 비치 의무가 있는 문서들을 비치해두라고 요구할 계획이다. 고용부는 내년 2월 중으로 기한을 정해 각 노조의 서류 비치 여부를 고용부에 보고토록 하고, 사진 등의 증 자료도 제출토록 할 예정이다. 고용부 요구에 응하지 않거나 허위 보고를 한 노조에 대해선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이런 조치들은 현행 노동조합법에 근거가 있지만 시행되지는 않았던 것들이다. 법에 따르면 각 노조는 사무실에 조합원 명부와 규약, 임원 성명·주소록, 최근 3년 치 회의록 및 재정 관련 장부·서류를 둬야 한다. 조합원들에게 매년 회계 결산 결과 등을 알리고, 평소에도 조합원이 요구하면 관련 문서를 보여줘야 한다. 정부도 노조로부터 회계 결산, 운영 상황을 보고 받을 수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그간 노조 재정 투명성 문제가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지난 정부 등에선 노조의 자주성과 자율성을 존중한다며 들여다 보지 않았다”며 “이제는 노동시장 개혁과 법·제도·관행 개선을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고 했다.
고용부는 또 노동조합법 시행령 등을 정비해 노조 회계감사원의 자격 요건을 제한하고, 결산 결과와 운영 상황을 공표하는 구체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현행법에는 관련 세부 규정이 없어, 노조 대표가 회계감사원을 임의대로 지명할 수 있었다. 노조 회계에 대한 감시 기능이 작동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주요 선진국 노조들은 전문 자격을 가진 외부인이 회계감사를 하게 돼 있다.
고용부는 내년 2월부터 노사 부조리 신고 센터를 온라인으로 운영해, 기업과 노조 양측의 불법·부당 행위에 대한 신고도 접수하기로 했다. 노조 가입 강요, 경쟁 노조 탈퇴 강요, 재정·운영 공개 거부, 노조 간부 및 조합원의 폭력 행위와 횡령·배임 등이 신고 대상이다. 고용부는 혐의가 있는 노조에 대해선 근로 감독과 시정명령 등으로 적극 대응하겠다고 입장이다.
그러나, 매년 수십억~수백억원의 조합비를 걷어 쓰는 대형 노조와 한국노총·민주노총 등 상급 단체들의 회계가 곧바로 공개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현행법 상 노조 회계 자료를 일반에 공개하도록 강제할 근거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노조들은 회계를 일반에 공개하도록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노조 자율성을 보장하도록 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당장은 조합원들이 노조 사무실에 비치된 회계 자료를 열람해 부정이 없는지 스스로 감시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며 “ILO 협약을 위반하지 않고 노조 회계 공개를 의무화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노동조합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기업 회계를 공시하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인 다트(DART)처럼 노조 회계 공시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노조 부패 방지와 투명성 강화가 우리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노동자 복리 증진에 필수적”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또 소규모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이 낮다는 보고를 받은 뒤 “국내 노조가 노동 약자를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며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와 노·노(勞勞) 간 착취 구조 타파가 시급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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