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채용 보장했지만… 반도체학과 70% 등록 포기
지난 17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서울신라호텔 영빈관. 대통령 취임식 만찬, 해외 정상 초청 만찬이 열리는 이곳에 앳된 얼굴의 고교생 20명이 차례로 도착했다. “며칠 전까지 대입 논술 준비를 하다 이런 곳에 오니 얼떨떨하다”며 어색한 모습으로 만찬을 즐긴 이들은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합격자들이었다. 지난 15일 합격 통보 직후 서울 특급호텔에서 열리는 ‘합격자 설명회’에 가족과 함께 초청받은 것이다. 행사에는 포스텍 교수들과 포스텍 출신 삼성전자 임직원들도 멘토로 참석해 학과 전망과 전액 장학금 등 각종 특전을 설명했다. 포스텍은 신라호텔 행사에 참석하기 힘든 지방 합격자들을 위해 부산 해운대에 있는 특급호텔 파크하얏트에서도 전날 만찬 행사를 열었다.
올해 첫 신입생을 선발한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23학번 정원은 총 40명. 이들 전원은 삼성전자 취업이 100% 보장되고, 등록금 전액 지원에 기숙사비 무료, 특별장학금에 해외 인턴 기회라는 파격적인 혜택이 주어진다. 그런데도 대학 측이 서울·부산의 특급호텔에서 VVIP급 만찬을 연 것은 이탈자를 막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19일까지였던 포스텍의 합격자 예비등록 기간에 상당수 합격자가 등록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2023년도 연세대·고려대·한양대 반도체 계약학과도 수시 모집 최초 합격자 84명 중 58명(69%)이 등록을 포기하고 다른 대학을 택했다.
각 대학에 따르면, 전액 장학금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 취업 보장을 포기하고 합격자들이 선택한 것은 의대·약대였다. 성적이 우수한 이과 학생들은 공대와 의대에 중복 합격한 경우 대부분 의대를 선택해왔는데, 한국 대표 공대가 파격적인 특전을 내걸고 개설한 반도체 계약학과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대학 입시에서 의대, 약대, 치대 정원을 모두 채운 뒤 공대에 오는 현상이 반도체 계약학과에서까지 비슷하게 벌어지고 있다”며 “인재 수혈을 위한 파격적인 지원과 교육 여건 개선이 병행되지 않으면 반도체 산업의 미래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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