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60] ‘전쟁이 끝났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2. 12. 2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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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넌과 오노 요코, 전쟁이 끝났다, 1969년, 뉴욕시 광고판 설치 장면.

1969년 12월 15일, 뉴욕을 비롯해 로스앤젤레스, 토론토, 로마, 베를린, 파리, 도쿄, 헬싱키 등 전 세계 12개 주요 도시 곳곳의 광고판에 일제히 ‘전쟁이 끝났다’는 낭보가 게시됐다. 일부 도시에서는 같은 내용의 포스터가 벽에 나붙고 길에서 유인물이 배포됐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종전(終戰)보다 더 반가운 소식은 없었을 터. 그러나 사람을 혹하게 하는 메시지라면 반드시 깨알처럼 작은 글자까지 다 읽어야 하는 법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아래에는 ‘당신이 원한다면’이라는 전제 조건이 붙었다. 존 레논(John Lennon·1940~1980)과 오노 요코(Ono Yoko·1933~) 부부가 성탄절을 맞이해 세계인들에게 보낸 반전 메시지였다.

비틀스의 레논과 예술가 오노는 오늘날로 치면 당대 최고의 셀럽이자 초강력 인플루언서였다. 포스터와 유인물이 전통적인 정치 선전의 수단이라면, 광고판은 자본주의 사회의 꽃이다. 이처럼 영역과 매체를 가로질러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끈 이들의 메시지는 시적이어서 더 강렬했다. 과연 원하기만 하면 이 길고도 지루한 전쟁을 끝낼 수 있는 ‘당신’은 누구일까. 물론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들과 참전을 결정한 각국 지도자들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 광고를 보고 잠시나마 안도했던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한목소리로 종전을 외친다면, 그저 명령을 받았으니 피치 못해 전쟁터로 내몰린 사병들이 그만 무기를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면, 그렇다면 어쩌면 전쟁은 쉽게 막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올해 성탄절에도 전쟁은 멈추지 않았다. 이 전쟁이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당신들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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