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다시 정치개혁, 그런데 어떻게?

기자 2022. 12. 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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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선 추진해야 할 과제로 정치개혁이 꼽혔다. 노동·교육·연금 등의 3대 개혁도 정치가 달라지지 않으면 ‘공염불’임을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정치개혁은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아우르는 ‘범개혁 세력’을 만들어야만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 간의 양보가 있어야 한다
또 진심으로 정치개혁을 하겠다면 개혁의 조건과 환경의 조성을 비롯해 명분과 전략을 갖춘 ‘큰 그림’을 그려야 할 것이다

다시 정치 개혁이다. 지난 19∼20일 디지털타임스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주요 현안 인식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해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로 정치 개혁이 꼽혔다. 현 집권세력은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 그중에서도 노동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정치 개혁(39.2%)이 노동 개혁(18.9%), 교육 개혁(11.2%), 연금 개혁(10.8%), 기업규제 개혁(6.9%), 건강보험 개혁(6.2%) 등을 단연 압도한다. 노동·교육·연금 등의 3대 개혁도 정치가 달라지지 않으면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점을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전 연령대에 걸쳐 최우선 과제로 정치 개혁을 선택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대별로 선호와 이해관계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정치 개혁을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20대는 취업전선에 뛰어든 세대이기에 노동 개혁(23.9%)에 대해, 60대는 노후에 대한 관심이 높아 연금 개혁(13.6%)에 대한 선호가 높게 나왔지만, 그 모두 정치 개혁보다 아래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실천교육센터장

국민 다수가 정치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선택한 이번 조사 결과는 특히 윤석열 정권이 출범한 지 6개월이 지난 가운데에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간의 대립이 계속 극심한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최근에는 2014년 국회선진화법이 시행된 이후 8년 만에 예산안 처리시한마저 지키지 못할 정도였다. 이는 특정 세력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정치(권) 전반에 걸쳐 문제가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현 정권이 내세운 노동 개혁과 연금 개혁 등과 같은 거대 과제는 출범한 지 이미 6개월이 지난 데다 지지율이 낮아 그것의 실제 수행과 실현을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진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이런 판단에 기초해 결국 개혁 환경과 동력을 조성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 우선 이루어져야 할 게 바로 정치 개혁인 것이다.

그럼 정치 개혁은 실제 가능할까? 민주화 이후 정치 개혁은 크게 ‘제도 개혁’에 초점을 맞춰 이루어져 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선거제도 개혁과 정당조직 개혁이다. 선거제도 개혁은 주로 현재도 지배정당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양대 정당의 독점을 가로막기 위해 새로운 정치세력의 진입을 가능케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의 결과가 현행의 1인2표 정당명부제다. 정당조직 개혁은 주로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 함양을 위한 것이었다. 대통령 후보 등을 당원 혹은 국민 참여를 통해 선출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리고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는 등 정당 조직을 특정 정치인이나 계파 등이 독점할 수 없게끔 하는 것이었다.

그간의 정치개혁 절반의 성공 그쳐

하지만 그러한 시도와 성과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여전히 엉망이다. 민주노동당을 위시로 해 현 정의당에 이르는 진보정당과 안철수 같은 사회 저명인사가 새로운 정치를 표방하며 주도한 중도개혁 정당 등이 3당 세력으로 등장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한국의 정치는 양대 정당이 지배하고 있다. 최근에는 그 경향이 한층 더 강화된 상태다. 정의당으로 대표되는 진보정당은 군소 약체 정당으로 고착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효능감도 제공하지 못하고 지지율도 3∼4%대에 머물고 있다. 중도개혁 정당은 기성 거대 정당에 흡수되어 이제는 자취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2016∼2017년 촛불집회와 19대 대통령 선거 국면을 거치며 보수정치 세력도 분화 양상을 보이며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는 듯했으나, 기성 거대 정당으로 도로 흡수되었다. 그런 중에 2020년 총선 때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으나 위성정당 사태를 낳아 기성 거대 정당의 지배적 위상만 강화해주는 결과를 낳았다. 정당조직 민주화는 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 거물정치인이 주도한 3김 시대의 1인 보스-사당 정치를 외양상으로는 사라지게 했으나, 특정 계파와 정치인들의 당권 장악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게다가 당원만이 아닌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당 밖의 유권자들에게까지 경선 참여 폭을 넓힘으로써, 정당의 이념과 정책에 대한 지지보다는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 여부가 더 중요해졌다. 그 결과가 바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팬덤 정치다. 그런 중에 정당조직의 근간인 진성당원제의 복원 여부는 당권 경쟁을 위한 계파의 정략으로 전락했다.

도대체 왜 이런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온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작금의 현실에서 주목해야 하는 문제는 ‘좋다고 여겨지는 제도를 좋게 작용할 수 없게 만드는 현실의 동학(dynamics)’을 간과한 것에서 찾아야 한다. 정치는 결코 고정되어 있는 사물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어떤 제도를 도입한다 해도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변형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사람들의 역동적 실천이라는 것을, 또 그러한 정치적 실천은 세력들 간의 힘의 관계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 즉 힘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기성 정치세력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놓쳤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착한 사람인지 못된 사람인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말이다.

민주당의 ‘홀로 개혁’ 성사 쉽잖아

최근 민주당이 정치 개혁을 핵심 과제로 삼으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조사에서 나타났듯이 국민 다수의 선호에 부응한다는 점에서 다행인 측면이 있다. 국민의힘의 경우 지지층 사이에서도 정치 개혁에 대한 선호가 다른 정당 지지층에 비해 낮은 것(민주당 지지층 51.0%, 정의당 지지층 46.2%, 국민의힘 지지층 30.3%)을 볼 때도 그렇고, 정권 및 당내 주류세력의 성향과 행태를 볼 때도 그렇고, 정치 개혁에 그다지 관심이 높은 것 같지 않다. 이를 감안할 때 정치 개혁에 큰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은 일단 민주당이다. 하지만 정치 개혁은 민주당 홀로 이룰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어떤 식으로 접근할 것인지도 아직 불분명한데, 아마도 또다시 제도 개혁의 관점에서 접근할 공산이 크지 않나 싶다. 특히 제왕적 대통령제 개선을 위한 개헌과 작금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개선을 위한 선거제도 개혁을 우선 내걸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이미 20여년에 걸쳐 경험한 사실, 즉 어떤 제도든지 의도대로 되기 어렵다는 것, 그래서 정치 개혁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은 국민의힘을 위시로 한 현 집권세력의 의도마저 반영해야 한다는 것을 또다시 간과하는 오류를 반복할 우려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절반의 성공’에 불과했던 그간의 정치제도 개혁마저도 2000년 총선 때의 낙천·낙선 운동의 사례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던 바와 같이, 정치권 밖 시민사회의 엄청난 개혁 에너지가 분출되었을 때 가능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작금의 민주당은 그와 같은 시민사회의 에너지를 분출시키고 결집하는 세력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즉 정의당 지지층은 물론, 국민의힘 지지층 중 정치 개혁 선호층을 흡인해 동력을 마련해야 할 텐데, 그것이 홀로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이런 의구심을 해소할 방도의 마련과 실천 없이 민주당 홀로 정치 개혁을 앞세운다면, 정치 개혁은 다시금 양대 정당 간의 정쟁 소재로 전락할 우려가 높다. 그리고 개혁의 정도 여부를 떠나 성사되기도 쉽지 않다.

정치 개혁은 누가 주도하든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아우르고 가로지르는 ‘범개혁 세력’을 만들어야만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서로 자신의 것을 내주며 양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구체적이면서도 큰 목표’가 있어야 가능하다. 또 범개혁 세력은 서로서로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전체 사회 차원에서 두루두루 신뢰를 받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정치 개혁은 대놓고 말부터 꺼내놓고 보는 식으로 서두를 수가 없는 일이다. 그게 누구든 진심으로 정치 개혁을 하겠다면 개혁의 조건과 환경의 조성을 비롯해 명분과 전략을 갖춘 ‘큰 그림’을 그려야 할 것이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 및 실천교육센터장.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세계와 시민’ ‘정치의 인문학적 탐색’ 등의 과목을 가르친다. 참여사회연구소 부소장, ‘시민과 세계’ 편집위원,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 노회찬정치학교 교장 등을 역임했다. <정당> <헬조선 3년상> 등의 저서와 ‘노동존중 정치와 노회찬의 6411정신’ ‘한국 불평등 민주주의의 정치사적 기원’ 등의 논문이 있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실천교육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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