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정부 ‘힌디어 단일국어’ 밀어붙이자 동·남부서 “계급화” 반발
힌디어 쓰는 44%, 북부 집중
모디 최측근 ‘국가 통합’ 명분
전문가 “다중언어는 정체성”
공용어가 20개가 넘는 인도에서 나렌드라 모디 정부가 힌디어를 공식 국어로 삼으려 하면서 언어로 계급을 나누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가디언은 25일(현지시간) 모디 총리가 이끄는 인도국민당(BJP)이 힌디어를 인도 국어로 삼으려 하면서 힌디어를 사용하지 않는 동·남부 지역의 거센 반발에 부닥쳤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에서는 85세 농부 한 명이 모디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다가 분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탕가벨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이 농부는 “모디 정부는 힌디어 강요를 멈춰라. 우리가 왜 풍부한 타밀어를 놔두고 힌디어를 선택해야 하느냐”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이다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였다.
인도는 세계에서 언어학적으로 가장 복잡한 나라 중 하나다. 사용되는 언어만 700개 이상에 방언은 수천개에 달할 정도다. 하지만 인도에 공식 ‘국어’는 없다. 인도 정부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힌디어와 영어를 국가 차원의 ‘공용어’로 지정했고, 헌법에선 영어를 제외한 22개 언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201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이 중에선 힌디어 사용자가 44%로 가장 많다. 하지만 힌디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이들은 북부주에 집중돼 있어 케랄라주나 서벵골주 등 동·남부주에선 힌디어를 거의 쓰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지역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 인도에서 언어는 오랫동안 정치적으로 민감한 논쟁거리였다. 1960년대에도 정부가 힌디어를 유일한 공용어로 삼겠다며 영어를 단계적으로 폐지하자 타밀나두주에서 시위대가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이는 등 격렬하게 항의했고, 정부는 힌디어의 국어 지정 정책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014년 총선에서 압승한 BJP는 힌두민족주의를 내걸고 힌디어를 인도의 단일 언어로 다시 정하려 하고 있다. 모디 총리의 최측근인 아미트 샤 인도 내무부 장관은 지난 4월 의회 공용어위원회 회의에서 정부가 사용하는 언어가 ‘공식 언어’라면서 현재 내각 문서의 70% 이상이 힌디어로 작성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힌디어를 국가 통합의 중요 요소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인도 각지에선 힌디어를 국어로 삼으려는 정부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들끓고 있다. 벵골 민족주의 단체 ‘방글라포코’의 사무총장인 가르가 채터지는 정부의 움직임이 “힌두 민족주의에 기반한 것”이라며 “그들은 인도를 ‘다양한 국가의 연합’에서 ‘힌디어 사용자들이 1등 시민으로 대우받는 민족 국가’로 바꾸고 싶어한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그는 벵골어가 인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벵골어로는 은행 계좌를 개설하거나 열차 탑승권을 예약할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인도 언어학자인 가네쉬 나라얀 데비는 인도인들이 기도를 할 때나 일을 할 때, 그리고 가족들과 대화를 나눌 때 쓰는 언어가 모두 다르다며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인도인의 정체성”이라고 말했다. 자와할랄네루대학의 파피아 센 굽타 정치학 교수도 “모디 정부하에서 언어는 심하게 정치적인 이슈가 됐다”며 “(정부는) 진정한 인도인은 힌디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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