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군 좌표 흘리고 습격…헤르손 해방 당긴 시민들의 ‘중꺾마’
러의 침공 첫날 함락됐지만
주민들, 자발적 스파이 활동
첩보 수집해 정보기관 전달
총기·폭발물 등 운반 돕고
소규모 방위군 꾸려 야습도
“이 체계는 사슬의 고리처럼 만들어졌다. 아무도 다음 연결점을 알지 못하므로 누군가 잡히더라도 전체가 걸려들지는 않는다.” 우크라이나 헤르손 주의회 의장인 올렉산드르 사모일렌코는 헤르손 주민들의 스파이 활동을 두고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해방이 이렇게 빨리 일어난 것은 오로지 주민들 덕분”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남부 요충지인 헤르손에서 일반 시민들이 첩보, 군수 물자 운반 등 스파이 역할을 자청하며 도시 수복에 기여했다고 2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인구 약 30만명이 거주했던 헤르손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첫날인 지난 2월24일부터 러시아군에 넘어갔다. 러시아는 이 지역을 러시아의 일부로 선언했으며, 러시아 루블화를 보급하고 러시아인을 이주시키는 등 ‘러시아화’에 박차를 가했다.
헤르손 주민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NYT에 따르면 퇴직자, 학생, 직장인, 노인 등 헤르손의 일반 주민들은 자신들이 확보한 러시아군의 동태를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에 제공했다. 이동하는 러시아군의 영상을 찍어 지도 및 좌표와 함께 우크라이나군에 보내거나, 암호를 활용해 총과 폭발물 등을 운반했다. 심지어 소규모 방위군을 구성해 야간에 러시아군을 습격하기도 했다. 마치 첩보 영화에나 나올 모습이었다고 NYT는 전했다.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은 텔레그램 등에 채널을 만들어 주민들의 정보 제공을 장려했다. 헤르손 주민 발렌틴 드미트로비치 예르몰렌코(64)와 부인 올레나(65)는 주민들과 우크라이나군 사이 연락책으로서 하루에도 수십개의 동영상과 음성 및 문자 파일을 주고받았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이 수집한 정보는 러시아군이 헤르손 내에서 어디로 얼마나 이동하는지,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는지 등이었다. 그의 역할은 지역 방위군의 연락처와 무기에 관한 암호를 전달받아 소총과 수류탄 등을 전달하는 데까지 발전했다.
예르몰렌코는 “우리에게 음식을 주는 할머니가 있었고, 이웃들은 강에서 러시아 정찰병을 감시했다. 모든 곳에 우리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 나라가 내가 원하는 모든 걸 주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여기는 내 나라”라고 말했다.
전쟁으로 인해 헤르손에 오래 머무르게 된 드미트로 예브미노브 역시 주민들이 총과 수류탄을 숨기는 일을 도왔다. 그는 “우리가 하는 일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내가 조국을 이렇게 사랑하는지 몰랐다”고 밝혔다.
처음엔 헤르손 주민들도 자체 방위군을 형성해 러시아군과 직접 싸웠으나, 무기가 낡은 데다 우크라이나군이 철수하면서 인명피해가 커졌다. 그러자 지하 스파이 작전으로 전술을 변경했다.
전술 변경은 유효했다. 주의회 의장 사모일렌코는 이 같은 ‘시민 스파이’들이 제공한 정보가 지난 9월 러시아 고위급과 정보요원들이 있는 호텔을 폭격하는 데에 활용됐다고 평가했다.
헤르손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은 점점 흔들리게 됐고 러시아군은 결국 지난달 헤르손에서 철수했다. NYT는 “헤르손 철수로 푸틴은 가장 큰 당혹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헤르손은 강력한 상징이 됐다. 우크라이나의 결의에 의구심을 품는 이들과 고통을 겪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헤르손은 무엇이 가능한지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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