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올해 미사일 도발 42건 ‘최다’…대화 모멘텀 ‘가물’[아듀 2022 송년 기획]

박광연 기자 2022. 12. 2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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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대결’ 치닫는 북한
현 정세를 ‘신냉전’ 파악한 김정은, 핵무력 완성 위해 속도
윤석열 정부 출범 뒤 한·미 ‘맞대응’ 군사훈련 강도도 세져
유엔 안보리에선 중국·러시아 반대로 북한 추가 제재 무산
북·중·러 vs 한·미·일 대립 강화…“내년 가장 위태로울 것”

2022년 북한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2017년보다 더욱 강력해졌다. 핵 선제공격 법제화, 전술핵 부대 공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성공을 통해 핵무력을 빠르게 고도화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미·일 대 북·중·러’ 동북아시아 정세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5년 전과 달리 ‘평창’과 ‘트럼프’도 없는 내년에 극적인 대화 국면이 펼쳐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힘과 힘의 대결로 군사적 충돌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내년 전망을 지배하고 있다.

올해 북한 핵·미사일 활동 ‘역대급’

올해 북한의 도발적 군사행동은 과감하고 공세적이었다. 1월 극초음속미사일 발사로 시작한 북한은 3월 ICBM 발사로 4년 전 핵실험·장거리미사일 모라토리엄(유예) 선언을 파기했다. 상반기에 매달 단거리·중거리 탄도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각종 미사일을 가리지 않고 쐈다.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핵실험 준비 징후가 포착되며 5년 만에 핵실험 가능성이 본격 거론됐다.

김 위원장이 7월 윤석열 대통령을 맹비난하며 ‘강 대 강’ 대결을 공식화하자 핵위협은 급속도로 강화됐다. 9월 핵무기 사용 기준을 법제화하며 핵 선제공격 가능성까지 열어뒀다. 9월 말부터 11월 말까지 한·미·일 군사훈련 전개를 빌미 삼아 전술핵 운용부대 훈련, 사상 첫 북방한계선(NLL) 이남 탄도미사일 발사, 화성-17형 ICBM 발사 등 도발적 행동을 고강도로 단행했다. 12월엔 ICBM 고체연료 엔진 시험과 정찰위성 시험발사를 진행했다.

올해 북한의 핵·미사일 움직임은 한 해 기준 역대 가장 많았다. 26일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분석에 따르면 올해만 총 42건의 활동이 집계됐다. 활동이 식별된 1984년부터 파악된 총 186건 중 약 23%가 올해에 집중된 것이다.

올해는 수차례 ICBM 발사와 6차 핵실험, 국가 핵무력 완성 선언으로 점철된 2017년 상황을 연상케 한다. 남한과 미국을 겨냥한 전술핵·전략핵 역량을 가시화하고, 한·미 군사훈련에 각종 미사일 발사와 포사격, 공중 무력시위 등으로 일일이 맞대응했다는 점에서 위협의 강도는 더욱 세졌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한반도 정세 평가 및 전망’ 보고서에서 “사실상 핵무기를 보유한 이른바 ‘전략국가’로서의 자신감이 깔려 있다”고 평가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에 참여한 공로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달 27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국제정세 적극 활용하는 김정은

급격한 핵무력 고도화 움직임의 배경은 김 위원장의 정세 인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중국이 패권국으로 부상해 미국과 본격 경쟁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와 미국이 극한대립한 현 시기를 “신냉전” “다극화”로 바라봤다. 북·중·러 대 한·미·일 대립과 군비경쟁 국면을 급속한 핵무력 강화의 적기로 삼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김 위원장은 지난 9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핵무력 법제화를 선언하며 “조선반도를 둘러싼 세력 구도가 명백해지고 미국이 제창하는 일극세계로부터 다극세계로의 전환이 눈에 띄게 가속화되고 있다”면서 “적들의 책동으로 긴장격화된 정세는 오히려 우리에게 군사력을 더 빨리 비약시킬 수 있는 훌륭한 조건과 환경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자위력 강화의 정당성과 그 우선적 강화의 불가피한 명분을 제공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러한 판단에 따라 “나라의 핵전쟁 억제력을 비상히 빠른 속도로 확대 강화” “국가 핵전투무력의 무한대하고 가속적인 강화 발전에 총력을 집중” “핵무력을 최대의 급속한 속도로 더욱 강화 발전” 등 핵무력 강화 속도전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는 모습이다.

북·중·러 대 한·미·일 구도는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에 유리한 환경으로 작용했다. 한·미·일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의 ICBM 등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공동성명과 추가 제재를 추진했으나 불발됐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러시아가 북한을 감싸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도발을 견제할 국제사회의 제동 장치가 무력화된 것이다.

5년 전 ‘반전’ 기대 어려운 2023년

김 위원장은 지난 9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이제 만약 우리의 핵정책이 바뀌자면 세상이 변해야 하고 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환경이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 국제정세가 바뀌지 않는 한 핵무력 고도화를 멈추지 않겠다는 뜻이다.

내년 한반도 정세는 ‘강 대 강’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국제정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 미·중 지도부가 각각 중간선거와 당대회를 통해 지지 기반을 공고히 한 만큼 내년 양국 경쟁이 더욱 격화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양상을 보이며 미·러 대립이 조만간 해소될 여지는 좁아졌다.

한반도에서 2018년처럼 대화 국면으로의 극적인 반전은 없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김 위원장의 대미 협상 의지와 북한 문제로 정치적 업적을 쌓으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의도가 맞물려 북·미, 남북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렸다. 그해 2월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은 유화적 환경을 제공했다.

반면 내년은 협상 추진을 위한 특별한 계기가 없을뿐더러, 북한 문제에 대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관심이 높아질 가능성도 낮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 견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김 위원장도 지난 10월 “우리는 적들과 대화할 내용도 없고 또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도 대화보다는 제재·압박을 우선시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 질주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2023년은 공화국 창건 75돌과 조국해방전쟁 승리 70돌이 되는 역사적인 해”라며 의미를 부여한 상태다. 지난해 당대회에서 과제로 제시된 주요 전략무기 개발을 ‘국방과학 발전 및 무기체계 개발 5개년 계획’ 3년차 성과로 과시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북한은 ICBM 정상각도 발사와 내년 4월 군사정찰위성 발사 준비를 공언했다. 7차 핵실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맞서는 한·미·일의 군사적 움직임 강화로 한반도 긴장은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는 한반도 주변에 미 전략자산을 빈번히 강도 높게 전개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최근 일본은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며 사실상 선제공격 개념의 국가안보전략을 채택했다. 정성윤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통일연구원의 ‘2023 한반도 연례정세전망’ 보고서에서 “내년은 북핵 역사상 가장 위태로운 한 해로 점철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장기화되는 한반도 위기

한반도를 둘러싼 대립과 긴장은 장기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9월 “우려스러운 상황들은 우리 주변의 군사적 정세가 장기성을 띠고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에 철저히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지금과 같은 냉전적 갈등 구조를 적극 활용하고 있어 ‘강 대 강’ 대결 국면의 장기화가 우려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이르면 2024년 말 미국 대통령 선거 전후에야 협상 테이블에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의 ‘국방과학 발전 및 무기체계 개발 5개년 계획’ 완성 시점은 2025년으로 미국 차기 정부가 출범하는 해”라며 “관심을 기대하기 어려운 바이든 정부보다는 차기 정부를 상대하는 협상력을 염두에 두고 핵무기를 불가역적 단계로 끌어올리는 행보를 우선하고 있다”고 했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격화되지 않도록 조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너무 높아져 있다”며 “남북, 북·미 또는 남·북·미가 당장 비핵화 협상보다는 긴장을 낮추기 위한 정치군사회담을 열어 위기 관리와 소통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통화에서 “(대북) 확장억제는 (위기 관리)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라며 “북한을 과도하게 자극하면 엄청난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상황 관리를 잘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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