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통치 이념이자 수단 ‘관상수시’의 초석과 다시 만나다

김신성 2022. 12. 26.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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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과학 문화 전시실’ 재개관
고구려 천문도 비석 탁본 돌에 다시 새긴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은 조선의 핵심
세계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석각천문도
마모되자 숙종 13년 ‘복각’ 새롭게 제작
‘관상과 수시’ 주제로 유산 45건 선보여
조선왕실 천문사업 결과물인 각종 역서
혼천의·앙부일구 등 천문기기도 눈길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한 노인이 고구려 천문도 탁본을 바쳤다. 원래 천문도를 새긴 비석은 평양에 있었으나 전란 중 대동강에 빠뜨려 잃어버리고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인본조차 남아있지 않다고 전했다. 당시 태조는 명나라 황제로부터 ‘조선’이라는 국호를 받았지만 아직 국왕으로 책봉되지 못한 ‘권지국사(權知國事)’를 지내며 정통성 찾기에 고심하고 있었다. 때마침 하늘의 명을 받은 사람만이 백성을 다스리는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징표가 손안에 들어온 셈이었다. 그는 이를 속히 만천하에 알리고 제도를 개혁하고자 천문도 탁본을 서운관(書雲觀)에 보내 돌에 다시 새기도록 명했다.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국보).
‘비석’ 하면 대개 만주벌판에 있는 ‘광개토대왕비’를 떠올리지만, 우리가 전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또 다른 비석이 서울 한복판에 우뚝 서 있다. 1395년(태조 4)에 고구려 시대 천문도 ‘평양 성도’ 비석의 탁본을 돌에 옮긴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이 그것이다(태조본. 국보 228호). 중국의 순우천문도(淳祐天文圖·1247)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석각천문도다. 높이 211, 너비 122.7, 두께 11.8cm, 무게 1t의 검은 대리석에 새겨진 별의 숫자는 순우천문도의 1434개를 웃도는 1467개다.

‘천상열차분야지도’란 하늘의 모습 ‘천상’을 ‘차’와 ‘분야’에 따라 나열해 놓은 ‘그림’이라는 뜻이다. ‘차’는 목성의 운행을 기준으로 설정한 적도대의 열두 구역을 말하고, ‘분야’란 하늘의 별자리 구역을 열둘로 나눠 지상의 해당 지역과 대응시켰다는 뜻이다.

앞면 윗부분에는 길이 141, 폭 85㎝ 직사각형 테두리가 있고 그 속에 지름 76㎝의 원형 천문도(天文圖)가 그려져 있다. 원 중앙에 북극성이 위치하고, 이를 중심으로 모든 별이 크고 작은 점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각 별자리의 이름이 해당 위치에 새겨져 있다. 밝기에 따라 별의 크기를 달리한 것도 순우천문도보다 나은 점이다. 북극성을 둘러싼 주극원(週極圓)과 28수(宿·북극성을 중심으로 28개 구역을 나눈 별자리)를 구획한 경선, 적도와 황도, 은하수 등이 보인다.
복각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보물).
천문도의 방향은 마주 보았을 때 왼쪽이 동쪽, 오른쪽이 서쪽, 위쪽이 북쪽, 아래쪽이 남쪽이다. 따라서 천문도는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해 선 사람이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보이는 별자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주극원(週極圓)의 범위는 당시 한양의 위도에 맞도록 설정되어 있다.

아랫부분에는 ‘天象列次分野之圖’라는 천문도 이름이 큰 글자로 새겨져 있고, 우주론에 대한 글과 비가 만들어진 배경, 경과보고, 그리고 유방택 김자수 전윤 등 제작에 참가한 사람들의 관직 성명, 제작년월인 홍무 28년 12월 등이 적혀 있다.

뒷면에는 전면과 같은 내용이 새겨져 있지만 일부 내용의 배치가 바뀌고 더 세련된 것으로 보아 세종 15년에 복각한 것으로 추정된다(세종본). 이 비석이 마모되자, 숙종 13년(1687)에 새로 만든 게 ‘복각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이다(숙종본. 보물 837호).

조선시대에는 이들 비석의 내용을 필사하거나 목각하여 인쇄본 또는 탁본을 제작해 집권층 사대부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천문도가 걸린 사랑방은 왕조의 건국이념과 정체성을 홍보하는 공간 역할을 했다.

영조 46년(1770) 천문사업 담당관서 관상감 안에 흠경각을 지어 이 두 개 비석을 함께 보존해오다 1908년 대한제국의 제실박물관(창경궁 명정전)으로 옮겨 1970년대 초까지 보관해 왔다. 지금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27일 ‘과학 문화’ 상설전시실을 재개관해, 국보와 보물을 포함한 조선시대 과학문화유산 총 45건을 선보인다. 관람객은 전시실 입구에 마련된 ‘숫자로 만나는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 정보영상을 통해 비석의 구성과 내용을 알아볼 수 있다. 고궁박물관 제공
국립고궁박물관은 27일 새롭게 단장한 ‘과학 문화’ 상설전시실을 재개관해 ‘관상과 수시’라는 주제를 내걸고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을 비롯한 조선시대 과학문화 유산 총 45건(국보 3건, 보물 6건 포함)을 선보인다. ‘관상수시(觀象授時)’는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한 결과를 바탕으로 절기와 날짜, 시간 등을 정해 널리 알리는 일을 말한다.
어려운 과학문화 유산의 의미와 작동원리 등을 쉽게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춰 3부로 구성했다.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국보·왼쪽), 혼천의.
1부 ‘조선 국왕의 통치 이념과 천문’에서는 국왕의 임무 가운데 으뜸인 ‘관상수시’가 국가 통치 이념이자 수단이었음을 보여준다. 강우량 측정 기구인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 고대부터 왕권의 상징물이던 천체관측기구 ‘혼천의’, 통치자를 상징하는 북두칠성과 28수 별자리를 새긴 ‘인검’ 등이 눈길을 끈다.
1772년 시헌서.
2부 ‘조선왕실의 천문사업’에서는 조선 왕실에서 추진한 천문 관련 사업과 그 결과물로 편찬된 각종 역서를 소개한다. 관상감 관련 유물과 천문학서인 ‘천문류초’, 역서 ‘칠정산 내편’, ‘칠정산외편’, ‘내용삼서’, ‘대통력’, ‘시헌서’ 등을 내놓았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중요한 일정 등을 적어 놓은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1772년 어느 관원이 사용했던 ‘시헌서’를 다룬 정보영상 등은 전시의 이해를 돕는다. ‘시헌서’는 조선 후기에 사용된 역서로 오늘날의 달력이나 다이어리에 해당한다.
앙부일구(보물·왼쪽), 창경궁 자격루 누기(국보).
3부 ‘조선의 천문의기’에서는 관상수시에 사용했던 천문기기를 모두 만나 볼 수 있다. 천체관측기구인 ‘일성정시의’, ‘소일 영’, ‘혼천의’, 각종 시계 ‘앙부일구’, ‘지평일구’ 등이다. 특히 현재까지 완형이 남아 있지 않은 ‘자격루’의 부속품인 항아리, 부표, 주전 등이 인상적이다. ‘부표’는 물 위에 띄워 표적으로 삼는 물건을 말한다. ‘주전’은 물시계의 동력 전달 및 시각 조절 장치로 2021년 인사동에서 출토됐다. 참여형 영상을 통해 경복궁과 창덕궁·창경궁에 설치된 여러 기구의 위치와 내용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과 ‘복각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은 별도 공간에서 관객을 반긴다. 전시실 입구에 마련된 ‘숫자로 만나는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 참여형 정보영상은 관람객이 숫자를 눌러보면서 각석 내용을 이해하는 코너다.

전시실 내부에서는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웠던 각석의 내용을 쉽게 알아보는 실감영상과 각석 투사영상을 15분 단위(매시 정각, 15분, 30분, 45분)로 상영한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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