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쏘공' 안 읽히는 사회 바랐던 작가···"문학과 삶 일치 노력"

진달래 2022. 12. 26.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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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타계한 조세희 작가 추모 물결
빈소 찾은 동료·시민들 이어져
고 조세희 소설가의 빈소가 26일 서울 강동구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 있다. 뉴스1

"문학 세계관과 자신의 삶 세계관을 합치하려고 노력한, 정말 드문 작가세요. 소설가 선배로서도 그렇지만, 한 인간으로서 더 좋아했습니다."(최윤 소설가)

26일 서울 강동구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2호실에 마련된 조세희 작가의 빈소에 고인의 지인과 문단 동료들을 비롯해 시민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작가의 대표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 출간 동지이기도 한, 문학과지성사 창립멤버 김병익 문학평론가는 오전부터 장례식장을 찾아 유족과 슬픔을 나눴다. 빈소를 찾은 후배 문인들은 전날 80세를 일기로 타계한 고인을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가진 작가로 기억했다. '난쏘공' 30주년 기념문집에도 참여했던 최윤 소설가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후배들을 언제나 환대하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빈소 한편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출판업계 등에서 보낸 조화가 놓였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조세희 선생님이 꿈꾼 세상은 여전히 우리 모두의 숙제로 남아있다"며 명복을 빌었다. "'난쏘공'을 읽으며 우리 사회의 불평등하고 비인간적인 모순을 직시하고, 약자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사회의식과 실천 의지를 키울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난쏘공'에 대해 "도시빈민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며,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해줬다"라며 추모의 글을 올렸다.

추모 열기는 서점가와 온라인상에서도 이어졌다. 교보문고와 인터넷서점 예스24·알라딘 등은 이날 웹페이지에 '조세희 추모전'을 마련하고, 고인의 대표작들을 소개했다. SNS에는 '난쏘공' 글귀를 공유하거나 "저에게 신념의 변화를 일으킨 책이다" 등의 글도 속속 올라왔다.

2009년 1월 조세희 작가가 서울 용산 재개발지역 참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단순한 노동 소설 아닌 '난쏘공'의 충격

"이 작품은 그동안 이어져온 독자들에 의해 완성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느낀다. 이 점만 생각하면 나는 행복한 ‘작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일을 이야기하며 나는 아직도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이는 '난쏘공' 초판(1978)이 나온 지 22년이 지난 2000년에 나온 작가의 말에 담긴 것으로 '난쏘공'에 대한 작가의 감정은 복잡했다. 작품이 계속 읽히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1970년대 도시 빈민의 고통을 다룬 소설이 여전히 청년들의 공감을 받는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난쏘공'에 담긴 사회적 모순이 수십 년이 지나도 해소되거나 개선되지 않았다는 데 대한 자책감이었다.

그러나 달리 보면 '난쏘공'의 생명력은 작품이 그만큼 사회적 약자의 삶에 깊이 천착한 데서 비롯됐다. 무려 320쇄 148만 부(2022년 7월 기준)를 발행한 '난쏘공'은 출간 당시에도 문단에 충격이었다. 김명인 문학평론가(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이전까지 노동자 계급을 다룬 소설 대부분이 투쟁 현장을 다룬 반면, '난쏘공'은 노동계급 가족을 통해 일상생활과 그들의 생각, 갈등까지 총체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며 "예외적 작품"이라고 했다. 삶 자체에 집중하다 보니, 정치·경제적 관점을 떠나서 "어떻게 모두 행복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했다. 이는 '난쏘공'이 단순히 노동 소설이 아닌 현대 문학의 고전이라 불리는 이유다.

우찬제 문학평론가(서강대 국문학과 교수)도 '난쏘공'이 "어떤 방식으로 평등으로 갈 수 있는가를 법, 교육, 사랑 등 다각적으로 토론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작품"이라고 평했다. 우리 문학계의 중심 주제가 4·19혁명 이후 '자유'에서 '평등'으로 바뀐 전환점도 됐다.

출판사 '이성과 힘'에서 출간한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표지.

언어 조탁에 공들인 시간, 그리고 침묵

조세희 작가가 2007년 4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200쇄 기념 간담회를 갖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고인의 문장은 간결하다. 접속사와 수식어가 없는 단문의 연속이다. 최 소설가는 "독자를 끌어당긴 힘은 역시 조 선생님의 언어"라고 단언했다. 짧고 단순한 문장은 쉽게 쓸 수 없다. "정성 들여 한 문장 한 문장을 조탁했기에, 딱 알맞은 감정선을 담은 흠 없는 문장"이라고 강조했다. 좋은 문장에 대한 강박이 과작(寡作)의 이유일지 모르지만, 우리 문학사에는 '조세희 문장의 미학'을 남겼다. 우회적으로 시대상을 표현하며 보여준 환상성도 특징이다. 생전에 고인은 "보통의 리얼리즘 소설로 썼다면 훨씬 쉽게 썼을 텐데, 그러지 않으려 고생했다"고 말하곤 했다.

작가로서 침묵의 시간도 있었다. 1980년대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사북항쟁 등이 벌어지면서다. 소설 대신 사진을 택했고, 현장으로 갔다.(당시 찍은 사진들로 '침묵의 뿌리' 사진 산문집을 냈다.) "초기에는 언어를 통해 세계를 재현하고 변화시킬 수 있겠다는 작가적 희망이 있었다면, 후기에는 참담한 현실을 증언하는 게 작가로서 역할이라고 생각해 문학적 작업에는 신중해졌다"고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고인의 변화를 설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2009년에는 용산 재개발 참사 현장도 찾았다. 고인은 건강이 악화하면서도 사회적 사건이 발생하면 "한마디라도 보태서 힘이 돼 줘야 하는데"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고 한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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