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영토 농락한 北 무인기… 軍, 7시간 넘게 격추 못했다
軍, 20㎜ 100발 사격… 격추 실패
전투기·전투 헬기 등 전력 동원
한미 자극·대북 감시 무력화 의도
여야 "北, 선 넘지마라" 강력 비판
북한 무인기가 여러 대가 26일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남하한 뒤 7시간 넘게 우리 영공을 휘저으며 심지어 서울 상공까지 진입해 정찰 활동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군은 북한 무인기를 향해 대응 사격은 했지만 실효성 있는 대응을 못했다는 점에서 우리 군의 대비 태세에 구멍이 노출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25분께부터 경기도 일대에서 북한 무인기로 추정되는 미상 항적 5대가 포착됐다. 먼저 포착된 1대는 김포와 파주 사이 한강 중립수역으로 진입해 곧장 서울 북부지역까지 직진한 뒤 서울을 벗어나 북한으로 돌아갔다.
나머지 4대는 강화도 서측으로 진입해 강화도 지역에서 활동하는 항적을 보였는데, 군은 이 4대가 남측의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교란용으로 판단했다. 이 4대는 우리 군 탐지자산에서 소실된 뒤 항적이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체는 2014·2017년 우리 영공을 침범한 소형 비행체와 비슷한 크기라고 군 당국은 설명했다. 길이가 1.8m, 폭이 2.4m 정도로 추정된다.
북한 무인기의 영공 침범은 5년 6개월여 만이다. 군은 북 무인기의 영공 침범을 포착한 뒤 경고방송과 경고사격을 수차례 했고, 이후 공군 전투기와 공격헬기 등 대응 전력을 동원해 격추 작전에 나섰다.
공군 전투기, 공격헬기, 경공격기 등으로 대응에 나선 군은 교동도 서쪽 해안에서 레이더에 무인기가 포착되자 헬기의 20㎜ 포로 100여 발 사격을 가했으나 격추에는 실패했다. 격추에 나선 군의 대응 작전으로 인천국제공항과 김포공항의 민항기가 한때 이륙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작전을 위해 출격하던 공군 경공격기(KA-1) 1대도 추락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의 이번 도발을 두고 우선 한반도의 긴장을 지속해서 고조시키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통상적으로 북한은 12월 결산·총화기간에는 도발을 자제해 왔지만 올해는 다르다"며 "모든 자산과 방법을 통해서 한반도의 긴장 국면을 계속 조성하겠다는 북한의 의도는 분명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무인기가 우리 영공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사실상 침략행위에 준하는 고강도 도발"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최근 이어진 9·19 군사합의 무력화 행보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다. 2018년 체결된 9·19 군사합의에는 군사분계선(MDL)으로부터 서부지역은 10㎞, 동부지역은 15㎞ 안에서 무인기 비행이 금지돼 있는데, 이를 어긴 것을 넘어 아예 MDL을 건너 영공까지 침범한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도 "북한은 최근 정찰위성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등 정찰능력 향상을 꾀하고 있다"며 "그 이전까지는 이러한 무인기 정찰을 지속해 나갈 것"으로 예상했다. 일각에선 연말 남측의 대비 태세를 떠보는 한편 남측에 혼란을 주려는 포석도 깔렸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항공당국은 이날 오후 합참의 요청에 따라 인천국제공항과 김포공항에서 약 1시간 안팎으로 항공기 이륙을 중단하는 조처를 취했다가 해제했다. 해양경찰은 이날 오후 인천 앞바다에서 어선과 여객선을 안전 해역으로 이동 조치했다.
이밖에 북한이 미국 정찰기가 연일 대북 감시비행에 나선 데 대한 맞대응 조치를 취했다는 분석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성탄절 전후로 미군이 대북 정찰감시 비행을 강화한 데 대해 북한이 대응하는 모양새"라며 "미군 정찰 활동에 맞서 대남 공간적 틈새를 겨냥해 무인기를 통해 시위하는 의도가 담겼다"고 분석했다.
우리 군은 유·무인 정찰을 MDL 근접 지역과 이북 지역으로 투입해 북한 무인기의 우리 영공침범 행위에 상응한 조치를 취했고, 적 주요 군사시설을 촬영하는 등 정찰 및 작전활동을 실시했다. 합참은 "북한의 이런 도발에 대해 앞으로도 우리 군은 철저하고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여야 정치권은 북한의 이번 무인기 침범을 강하게 비판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최근 김정은 정권이 미·북 관계에서 마땅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자 도발의 수위를 점점 끌어올리고 있는 모양새"라며 "김정은 정권은 더 이상 선을 넘지 마라"고 경고했다.
안호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북한은 더는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며 "강 대 강 대치로 북한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비판했다 안 수석대변인은 또 우리 군의 대응과 관련해서도 "북한 무인기가 6시간 동안 우리 영공을 활보하며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다"며 "6시간이 넘도록 북한 무인기의 영공 침범에 대해 침묵한 이유를 밝혀야 한다"고 질타했다.
임재섭기자 yj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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