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칼럼] 치료 중심의 과학·표적 방역 절실하다
방역 당국이 실내 마스크에 대한 미련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7차 유행이 나날이 악화되고 있는 위중한 혼란 속에서 갑자기 방역 사령탑을 넘겨받은 지영미 질병관리청장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비교적 낮은 중환자실 가동률만 믿고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를 덜컥 해제해버릴 수는 없다고 밝혔다. 신규확진·위중증·사망자의 수가 모두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고, 고령층(26.4%)과 감염취약시설(48.9%)의 낮은 백신 접종률도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역 당국의 전망은 암울하다. 감염 상황이 당분간 계속 악화될 수밖에 없디는 판단에는 공감한다. 새로운 변이의 출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 1월 중에 완만한 정점에 도달하더라도 확실한 감소세 확인을 위해 2주 정도의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야만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의 전문가들이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를 조정하는 명분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경직된 원칙으로는 아무리 빨라도 설 연휴나 1월 말을 지나야만 실내 마스크 해제가 가능하다.
새 정부의 '과학·표적 방역'이 시작부터 비틀거린 결과다. 방역의 기본 철학을 국민의 일방적인 희생·강요에서 합리적인 자율·책임으로 바꾸겠다는 의도는 좋았다. 그러나 질병관리청이 시작부터 존재감을 잃어버렸고, 뚜렷한 명분도 없이 출범시킨 '코로나19특별대응단'과 '국가감염병위기대응자문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최소한의 행정 능력도 갖추지 못한 인물들에게 막중한 방역의 책임을 나눠줘버린 탓이다.
과학 방역은 시작부터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지난 정부의 섣부른 '일상회복'으로 촉발된 세계 최악의 오미크론 유행의 뒷수습이 만만치 않았던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와 입국자 PCR 검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정부의 '정치 방역'과의 차별화를 위해서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에게 백신 추가 접종의 필요성도 설득시키지 못했다. 결국 정부가 호기롭게 들고 나왔던 과학 방역은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해버렸다.
방역 당국이 새로운 과학적 방역 수단을 찾아내지도 못했다. 증거 기반의 과학 방역을 외치던 정부가 사실은 국민들에게 각자도생(各自圖生)을 강요하고 있다는 불평이 쏟아져 나왔다. 속수무책이었던 방역 당국의 입장에서는 최후의 방역 수단인 마스크와 확진자 의무 격리에 잡착할 수밖에 없었다. 방역의 책임자들이 내년 봄까지 마스크 착용을 포기할 수 없다고 우겼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9월 말의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도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늦은 조처였다. 이제 29개 OECD 회원국들이 모두 실내 마스크 착용을 자율 권고로 바꾸었다. 우리만 실내 마스크를 고집해야 할 과학적 근거는 찾을 수 없다. 자체적으로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하겠다는 대전시·충남의 반발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겉으로만 떠들썩한 과학·표적 방역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질병관리청을 방역의 중심에 세워야 한다. 특별대응단과 자문위원회는 당장 해체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나라를 '백신·치료제 후진국'이라고 선언했던 지난 8월 정기석 위원장의 발언은 경악스러운 것이었다. '코로나 3년 동안 겨우 백신 하나 만든 게 전부고, 치료제 개발 소식은 전무하다'는 그의 망언은 백신·치료제 개발을 위해 땀흘린 과학자들에게 쏟아 부은 고약한 구정물이었다. 국민에게 어쭙잖은 훈시를 반복하는 모습도 과학 방역과 어울리지 않는다.
제로 코로나를 고집하던 중국이 갑작스러운 방역 포기로 보건·의료 체계가 완전히 붕괴되어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과학적으로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실내 마스크와 확진자 7일 격리를 고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내놓은 '로드맵'을 과학이라고 착각해서도 안 된다. 질병청을 중심으로 감염자 치료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진정한 과학·표적 방역 체제의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어설픈 정치적 구호는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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