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의 ‘성스러운 전쟁’과 일본의 ‘반격능력’
[왜냐면] 최우현 | 자유기고가·전 민족문제연구소 주임연구원
전후 일본 굴지의 정치사상가인 마루야마 마사오는 자신의 논문 <군국지배자의 정신형태>를 통해 일제 파시즘의 무책임성과 전범들의 왜소한 인간상을 신랄하게 비판하고자 했다. 이 논문은 1946년 도쿄전범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 때 몇몇 전범들의 진술을 인용하였는데, 그 중에는 식민지 조선의 황국신민화 정책으로 악명 높았던 제7대(1936~1942)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의 사례도 있었다. 미나미 총독은 ‘왜 당신은 그것(중일전쟁)을 성전이라 불렀느냐’고 묻는 재판관을 향해 이렇게 대답했다. “당시 일반적으로 그것을 ‘성전’이라고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침략적인 그런 전쟁이 아니라 상황으로 보아 어쩔 수 없는 전쟁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마루야마의 해석을 참고하자면 이는, 자신의 결단을 원칙으로 드러낼 용기는 없지만 어떻게 해서든 은폐하고 도덕화하려는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것이 실재고 허상인지, 무엇이 목적인지, 책임이 따르진 않는지 등은 의식하지 않고 자신들이 살포한 슬로건에 맹목적으로 말려들고 그렇게 현실을 인식했다는 비판이다. 흔히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들 하지만, 이 경우처럼 언어가 사용자의 자각 없이 난무할 땐 어떤가? 언어가 존재를 잠식하고 있는 듯 보이지 않는가.
지난 16일, 일본 정부는 각의(국무회의)에서 외교·안보 정책의 방향을 담은 국가안전보장전략 등 3개 문서 개정안을 결정했다. 이른바 ‘반격능력’의 보유가 그 핵심이다. 유사시 적이 무력공격에 착수한 것이 확인되면, 직접적인 공격을 ‘받지 않아도’ 자위조치로 상대 영역에 유효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게 됐다. 과연 우리는 이것을 ‘반격’이라고 이해해야 할까? 믿어버리면 편하긴 하다.
하지만 문제는 앞서 ‘성전’이라는 단어처럼, 무시무시한 본질을 애써 왜곡하는 경우다. 실제로도 ‘반격능력’은 올해 초 고 아베 전 총리 등이 공론화한 ‘적 기지 공격능력’ 보유 논의를 기초로 정립된 개념이다. 명칭을 ‘공격’에서 ‘반격’으로 순화(4월)시켰을 따름이다. 명칭 변경은 전수방위의 원칙 무력화 비판 여론을 피하기 위한 술수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반격’이라는 단어는 선전자의 의도에 따라 정의로움이라는 탈을 쓸 수 있는 단어다. “되받아 공격한다”는 사전적 의미를 통해 침략 의도를 상쇄할 수 있으며 자위권 차원의 대응이라는 논리를 붙여 명분을 보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엔 헌장 51조등에서도 자위권 사용은 제한적으로 인정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만 잘 내세우면 무력발동에 지지 또는 묵인을 받는 것이 국제현실이다. 지금 일본이 주장하고 있는 반격능력에는 이런 키워드들이 은밀하게 녹아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 정부와 언론은 크게 신경쓰지 않은 듯 보인다. 특히 언론 대다수는 ‘반격능력’이라는 워딩을 그대로 받아쓸 뿐, 그 모순을 지적하는 것에는 소극적이다. 열렬히 일본의 입장을 홍보해주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기사들에는 ‘선제공격을 당한 일본이 북한에 보복하는 건 당연하다’는 취지의 댓글이 다수의 공감을 받고 있다. 반격능력이라는 ‘순화된’ 말 아래 감춰진 본질을 보지 못한 것이다.
지난 역사에서 전쟁의 명분이 되어왔던 언어들을 한번 살펴보자.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그럴듯한 말들로 포장돼 있다. 예컨대 러일전쟁 당시 적극적인 개전론을 주창했던 다카하시 사쿠에이는 ‘국가가 존립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인근 국가의 보전을 필요로 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조선에 대한 침략의 논리를 완성했다. 태평양전쟁에서는 일본의 ‘자존자위’ 달성과 ‘동아민족에 대한 해방’이 명분으로 제시됐다.
너무 먼 옛날이야기인가?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핵무기 접근을 열망’하기 때문에 자위권을 행사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런 말들은 어느 날 한순간에 나부끼는 낮도깨비 같은 말들이 아니다. 자각 없이 방치하면 우리도(한국), 그들도(일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추종하게 되는 것이다. 미나미 지로가 그러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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