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 생크림찹쌀떡 열풍에 가려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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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전 전북 익산농협에서 출시한 생크림찹쌀떡이 에스엔에스(SNS) 입소문을 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먼저 긍지 같은 게 느껴졌다.
그 뒤 얼마 안돼 서울의 주요 언론사들도 생크림찹쌀떡을 취재하고자 익산을 찾았다.
서울 잠실 5성급 호텔에서 익산을 방문해 달라고 대대적인 홍보행사를 열고, 서울지하철 충정로역 환승통로에 익산으로 이주하면 전세대출 이자를 지원해 준다는 광고로 서울시민에게 손짓한다.
눈요깃거리, 맛 리뷰로 흐르는 게 전부여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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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박이삭 | 회사원(서울시민)
몇달 전 전북 익산농협에서 출시한 생크림찹쌀떡이 에스엔에스(SNS) 입소문을 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먼저 긍지 같은 게 느껴졌다. 살다 보니 내 고향 익산을 인스타그램에서 만나는구나, 격세지감이 들기도 했다.
그 뒤 얼마 안돼 서울의 주요 언론사들도 생크림찹쌀떡을 취재하고자 익산을 찾았다. 지면과 온라인 할 것 없이, 새벽부터 하나로마트 앞에 늘어선 ‘떡픈런’(떡+오픈런) 풍경이 세세하게 담겼다. 그곳은 나의 본가에서 걸어서 10분 남짓한 거리에 있었는데, 평소엔 사람은 물론 비둘기도 잘 안 보이는 곳이란 점에서 한동안 생경한 눈으로 기사를 보기도 했다. 이웃 동네 전주는 초코파이로, 군산은 이성당으로 화제가 됐을 당시 느꼈던 소외감을 어느 정도 덜어낼 수 있었다.
그간 중앙언론에서 익산은 궃긴소식을 전할 때나 언급됐다. 그 옛날 엄청난 양의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한 이리역 폭발사고, 공권력이 의도적으로 진실을 외면한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비료공장에서 나오는 발암물질 때문에 세상을 등진 장점마을 어르신들….
이 밖에 중앙언론에 등장한 익산 뉴스들도 나를 포함한 지역민의 자부심을 높이기는커녕 시름을 키우는 소식들 뿐이었다. 다른 지역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런 사건 중심의 대상화는 지역민의 숙명인가 싶다가도 별안간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생크림찹쌀떡이 촉발한 화제가 더욱 반가웠던 것 같다. 과거 부정적 이미지를 어느 정도 상쇄한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익산의 들녘에서는 농민들이 애써 키운 벼를 스스로 갈아엎고 있었다. 끝없이 추락하는 쌀값 안정화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트랙터가 들어간 누런 땅은 순식간에 시커먼 진흙탕으로 바뀌었다. 기쁜 마음으로 추수해도 모자랄 벌판에서 한 농민은 온몸을 엎드린 채 고개를 떨궜다.
생크림찹쌀떡 열풍 속에 황금빛 논을 뒤집어야 했던 농민의 삶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수많은 언론은 맛보기, 오픈런에 페이지를 할애함으로써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흥미를 돋우는 데 집중했다. 이런 화제성 이야기의 스케치와, 같은 지역에서의 절규를 연결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을 거라고 감히 짐작해 본다. 모처럼 펼쳐진 진풍경에 찬물을 끼얹는 건 아닐지 싶었으리라 조심스레 추측할 뿐이다. 결과적으로 찹쌀떡의 주재료를 만드는 이들의 맥락이 거세된 가운데, 그 내용물에 관심이 한정되는 모양새가 됐다.
도농통합(이리시+익산군) 지자체인 익산시는 도시민들의 소비 촉진에 흡족해하는 지방 소도시 중 하나다. 그러는 사이에도 사람들은 익산을 떠나는 중이어서, 익산시는 중앙을 향해 여러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서울 잠실 5성급 호텔에서 익산을 방문해 달라고 대대적인 홍보행사를 열고, 서울지하철 충정로역 환승통로에 익산으로 이주하면 전세대출 이자를 지원해 준다는 광고로 서울시민에게 손짓한다. 이 정책들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이런 혜택조차 입지 못하는 농민들 목소리가 제자리에 맴도는 현실도 고려됐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맛이 아닌 그들이 하고자 하는 주장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언론이 더 진취적이어야 한다. 눈요깃거리, 맛 리뷰로 흐르는 게 전부여서는 안된다. 시선을 달리하면 지역민 생존과 맞물려 살펴볼 여지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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