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왕 꿈꾸는 ‘초긍정 피아니스트’ 이혁
음악 영재로 주목… 최근 폴란드 체스 대회 3위
“콩쿠르 등수 연연 안 해, 준비하며 익히는 게 좋아
체스 실력 세계 수준이지만 평생 친구인 음악이 1순위“
피아니스트 이혁(22)은 다재다능한 연주자다. 2012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쇼팽 청소년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일찍부터 ‘음악 영재’로 주목받았다. 음악 외에 국제 체스대회에 출전할 만큼 체스 실력도 수준급이다. 세 살 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함께 공부해왔다는 점도 남다른 이력이다.
그는 2014년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나며 피아노로 전공을 정한 뒤 2016년 시니어 대회인 폴란드 파데레프스키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 쇼팽 콩쿠르 결선에 진출한 데 이어 같은해 12월 프랑스 아니마토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지난달 프랑스 파리에서 폐막한 롱 티보 국제 콩쿠르에서 공동 우승 소식을 전해왔다. 프랑스 최고 음악 경연 대회인 이 콩쿠르에서 한국인이 우승한 것은 2001년 임동혁 이후 21년 만이다.
“어느날엔 1등, 다음날엔 2등을 하든 상에 연연하지 않아요. 상을 탔다고 음악가의 삶에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26일 서울 서초구 스타인웨이홀에서 만난 이혁은 “콩쿠르 이후 많은 연주회를 해왔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콩쿠르에 나가는 목적은 많은 연주 기회를 얻기 위한 것”이라며 “경연까지 많은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지만, 딱히 힘들다기보다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편”이라고 말했다.
“콩쿠르 준비 과정에서 작곡가들의 다양한 레퍼토리를 익힐 수 있다는 점이 좋죠. 경연보다는 하나의 페스티벌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참가자들이 음악이라는 열정 하나로 서로 응원하죠. 이 모든 과정 자체를 즐겁고 재밌게 하는 편입니다.”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공부하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프랑스로 옮겨 현재 파리 에콜 노르말 음악원에서 최고 연주자 과정을 밟고 있는 그가 콩쿠르 우승 후 한국 무대를 다시 찾는다. 이혁은 2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더 위너스’ 콘서트에서 이병욱이 지휘하는 디토 오케스트라와 콩쿠르 우승곡인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한다. 공연 2부에선 지난 5월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한 양인모가 무대에 올라 역시 콩쿠르 우승곡인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다.
이혁은 “협주곡 2번은 프로코피예프가 남긴 다섯 개의 협주곡 가운데서도 비극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두드러진 곡”이라며 “악보가 화재로 소실된 후 프로코피예프가 기억력으로 되살려 다시 쓴 작품인데, 작곡가의 애착이 남달랐을 것이다. 제 열 손가락으로 작곡가의 의도를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심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혁은 “콩쿠르 이후 한국에 돌아온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한국에서의 무대는 하나하나 소중하다”며 “특히 아티스트를 응원하고 열성을 보내주시는 것은 한국 청중분들이 단연 세계 1위”라고 말했다.
지난 20일엔 서울 중앙대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첫 자선 공연도 열었다. 수익금은 중앙대병원 어린이병동 소아 환우들 치료에 기부했다. 이혁은 “(자선 음악회는) 제 오랜 꿈 중에 하나”라며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혁은 피아노뿐만 아니라 체스에도 열정이 남다르다. 2012년 대한체스연맹이 주관하는 전국학생체스대회에서 1위에 올랐고, 최근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체스 챔피언십에 참가해 3위에 올랐다고 한다. 이혁은 “체스는 제게 취미 그 이상”이라며 “나중에 꼭 그랜드 마스터가 되고 싶다. 한국 체스계에 그랜드 마스터가 아직 없는데, 꼭 도전해보고 싶은 높은 꿈”이라고 말했다.
그랜드마스터(Grandmaster)는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제외하고 국제 체스 연맹이 부여하는 체스 선수의 최상위 칭호다.
그는 “체스가 음악에 도움이 되는 점도 굉장히 많다고 생각한다”며 “한번 게임을 하면 4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체력적인 면에서도 도움이 되고, 또 굉장히 논리적인 게임이기 때문에 음악을 이해하고 연주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체스뿐 아니라 재즈, 드럼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지만 이혁은 “음악가로서의 삶이 언제나 제게 1순위”라고 말했다.
“음악은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에, 체스처럼 ‘마스터’ 같은 단계가 있거나 경쟁하는 영역은 아니잖아요. 음악가로서의 제 꿈은 하나예요. 죽는 날까지 굉장히 다양하고 무궁무진한 피아노 레퍼토리를 공부하고 싶어요. 평생 음악을 친구처럼 삼고, 음악을 배워나가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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