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전쟁 시대에 인구절벽…`의대 쏠림` 막으려면 특단조치 필요"
이 "미국처럼 해외인재 책임자로"
손 "중기 해외진출시 유학생 활용"
노 "전문연구요원제고 보완 필요"
백 "중기에 충분한 대가보상 선행"
반도체·배터리 대기업부터 의과대학까지 인재 부족을 호소한다. 대한민국 인재 먹이사슬의 최상위 그룹이 흔들린다는 의미다. 급변하는 기술을 교육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하고, 왜곡된 인재 발굴·공급체계가 굳어진 까닭이다. 중소기업과 이공계대학·대학원은 그야말로 '인재절벽' 상황이다. 본지와 기술경영경제학회가 진행한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은 "인력의 양과 질이 모두 심각한 상황이다. 특단의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연구할 대학원생이 없다"=이삼열 연세대 교수(행정학과)는 "이공계 대학원 인력의 양과 질이 모두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인구감소로 대학원생이 줄어들면서 연구할 인력이 없다. 한 해에 100만명이 태어날 때와 40만명이 태어날 때 대학원생의 질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연간 출생아 수는 1970년 101만명에서 1984년 67만명으로 줄어든 데 이어 1998년 64만명, 2021년 26만500명으로 급감했다.
이 교수는 10여년 간 의학전문대학원, 치의학전문대학원, 약학전문대학원으로 생명·화학분야 대학생이 대거 빠져나간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지목했다. 자연계열 학부생보다 대학원생 학력이 낮아지고, 박사학위자의 실력이 낮아지니 교수 역량도 떨어진다는 것. 이 교수는 "내국인을 공부시켜서 키우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결국 미국 모델밖에 방법이 없다. 해외에서 우수한 대학원생을 데려와서 PI(연구책임자)로 성장시키는 것"이라면서 "현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고 해외 연구인력에 대한 비자문제부터 연구비 지원, 그들이 연구활동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국내에서 석·박사 학위를 한 외국인이 한국에 남는 비율은 10% 초반에 그친다. 이들을 잡아두기 위한 장치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대학원생 안착 지원체계 만들어야"=손병호 KISTEP(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원장은 "전 분야에서 인구가 줄어들지만 우리나라는 과학기술로 먹고 살아야 하니 더 걱정이다. 지난 정부 5년간 정부 기초연구 예산이 2배로 늘고, 대학의 기초연구비가 약 1조 증가했는데 대학원생이 줄어들어 연구할 사람이 부족하다. 특히 공대보다 자연계가 심하다"고 밝혔다.
손 부원장 역시 외국인 인력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구감소 시대에는 중소기업, 연구소, 대학 할 것 없이 모두 사람이 부족하다. 해외 연구인력 활용이 시급하다. 2021년 기준 국내 이공계 석사과정생 중 외국인 비중은 16.1%, 박사과정생은 34.8%에 달한다"면서 "외국인 이공계 박사 중 국내에 남는 비중이 2016년 39.1%에서 2021년 29.8%로 떨어졌는데 미국은 70%가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대학 이공계 대학원에는 한국인이 거의 없다. 이들이 지역 기업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지원시스템과 전담창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 시 그 나라의 유학생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 부원장은 중소기업에 석박사 R&D 인력 유입을 유도하기 위해 중기부의 '석박사 고용지원 사업' 등 여러 장치가 있지만 기업보다는 개인에 인센티브와 혜택이 주어지도록 정책설계를 바꿀 것도 제안했다. 그는 "젊은층의 중소기업 기피는 애국심에 호소할 일이 아니다. 피부에 와닿는 혜택이 있어야 한다"면서 "대상자에게 소득세를 낮춰주거나 대학원에 다닐 기회를 주거나 과학기술인공제조합에 중소기업 연구인력을 포함시키는 것도 방안"이라고 밝혔다.
◇"전문연구요원제도 창업기업 지원 늘리자"=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문연구요원제도를 보완해 창업기업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춰줌으로써 창업생태계와 인재공급 생태계를 더 긴밀하게 연계하자고 제안했다. 전문연구요원제도는 병역자원 일부를 기업·대학·연구기관 등의 연구인력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매년 2200명이 배정돼 3년간 연구현장에서 복무한다. 총 복무인원은 2019년 기준 8364명에 달한다. 전문연구요원제도 지정업체는 2019년 기준 2215개로, 그 중 70.9%(1571개)가 중소기업이다.
노 연구위원은 "스타 창업자 대부분이 전문연구요원 출신일 정도로 이 제도는 중소기업의 우수 R&D 인력 확보와 기술 경쟁력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최근에는 유연근무 도입 등 제도적 개선도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일반 중소·벤처기업에 비해 창업기업 선정비율이 낮은데 창업기업에 대한 요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창업기업에 특화된 평가지표 개발도 고려할 만하다"고 했다.그는 "중소기업에 복무하는 전문연구요원의 절반이 만료일을 제대라고 인식해서 당일에 퇴사한다. 이들이 중소기업에서 핵심 인력으로 성장하도록 중기부나 고용부 인력 지원사업과 연계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 제도와 같은 병역대체복무제도를 특혜로 보는 시각도 바꿀 필요가 있다. BTS의 군 대체복무 허용여부 이슈는 병무청이 원칙적으로 대응해서 무리없이 마무리됐는데, 대체복무는 원칙에 맞게 업무를 하되 부처간 협업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직무발명보상제 혜택 늘려야"=백철우 덕성여대 교수(국제통상학과)는 "중소기업에 좋은 인력이 유입되려면 충분한 대가 보상이 선행돼야 한다. 스톡옵션 같은 금전적인 보상도 있겠지만 사업화 성과를 공유하는 것도 필요하다"면서 "정부는 기업의 직무발명 보상을 장려하지만 막상 기업에서는 사내 위원회 설치, 회사와 특허 담당자, 해당 직원 간의 합의 등의 절차가 복잡하다 보니 이를 지키는 중소기업이 많지 않고 제도가 잘 운영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백 교수는 정부가 기업에 대한 재정지원을 할 때 직무보상제도 도입 여부를 봐서 우선 지원하거나 인센티브를 주자고 주장했다. 중기부 '중소기업연구인력지원사업'에서 공공연구기관 재직연구원 파견으로 올해 118명이 선정됐고 기업당 1명이란 제한 규정이 있는데 이를 늘리자는 안도 내놨다. ICT 분야의 이노베이션아카데미 같은 프로그램을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만들어서 출연연과 기업이 재직자 교육을 하는 프로그램도 제안했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사진=박동욱기자 fuf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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