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생각보다 멋진 사람이네요”…180장 카드 속에서 ‘나’ 찾기

한겨레 2022. 12. 2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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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에니어그램과 떠나는 마음여행
마음의 시작점인 ‘본질’ 살펴
‘나도 몰랐던 나’ 알아가
6교시에 걸친 자아 탐색 뒤
진로·진학 상담으로 연결돼
수지에니어그램은 벽에 붙여둔 전지 앞에 서서 서로의 ‘몸 그림’을 그려주며 시작된다. ‘나는 나약한 인간을 보호하고 싶다’ ‘자기 주장이 강하다’ ‘때로는 허탈감에 빠진다’ 등 사람의 특성을 서술해둔 180장의 문장 카드를 펼쳐두고, 자신의 성격이라고 생각되는 카드를 개수 제한 없이 골라 내가 생각하는 나를 표현한 뒤 강사의 설명을 통해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사진은 청소년들이 수지에니어그램 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고운별 제공

“저, 생각보다 멋진 사람이네요.”

지난여름, 대전에서 진행한 수지에니어그램(이하 수지)에 참여한 한 청소년이 남긴 말이었다. 돌아오면서 저 문장을 곱씹어보았다. 예전에는 본인을 어떻게 생각해왔을까? 자신이 ‘멋지다’고 느꼈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

수지는 엠비티아이(MBTI)와 마찬가지로 성격유형 검사가 아니냐는 질문을 듣지만 6교시에 걸쳐 자신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는 점에서 조금 특별하다. 덕분에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초·중·고를 가리지 않고 진행할 수 있다.

프로그램 시작 전 책상에 엎드려 있던 청소년이 있었다. 몇 번 말을 건넸으나 꼼짝하지 않았다. 가끔 그런 경우가 있기에 언제든 마음이 생기면 함께 할 수 있다고 말한 후 진행하니, 4교시쯤 부스스 일어나 카드를 몇장 골라왔다. 그리고는 다시 책상에 엎드렸지만 조금씩 움직이는 게 보였다. 무언가 들려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총 6교시의 긴 프로그램이 끝나갈 무렵, 각자 어떤 본질의 사람인지 설명할 때에서야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어떻게 하면 나를 믿을 수 있어요?”

수지는 ‘자기 주장이 강하다’ ‘깊은 상처는 절대 못 잊는다’ 등 사람의 특성을 서술한 180장의 문장 카드 중 자신을 표현한 내용이라 생각되는 것을 골라 ‘몸 그림’에 붙이는 활동이다. 전문강사가 사람의 9가지 본질에 관해 설명해준 뒤 청소년들이 다시금 몸 그림 앞에서 자신에게 해당되지 않는 카드를 덜어내게 된다. 마지막까지 몸 그림에 붙어 있는 카드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의 고유한 본성을 찾아 나가는 프로그램이다.

십대들은 프로그램 초반에 ‘무기력’한 상태를 자주 보이기도 한다. 성적을 기준으로 서열화된 학교생활, 1등이 아닌 내가 충분한 존재일 리 없다는 불안과 두려움 때문이다. 수지는 그 무기력을 걷어내고, 자신의 힘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본성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해보는 여정이다.

수지에서는 마음의 시작점을 본질이라 부른다. 아홉 가지 숫자로 나뉘어 있는 본질 중 “이게 나”라고 말할 수 있는 한 가지 본질을 찾기 위해 자신을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로 인해 미처 몰랐던 자신의 본질을 깨닫고, 적성을 찾는 열쇠를 발견하기도 한다.

프로그램은 서로의 ‘몸 그림’을 그려주며 시작한다. 벽에 붙여 둔 전지 앞에 서 있는 친구의 몸 모양을 따라 그린다. 그리고 ‘나는 나약한 인간을 보호하고 싶다’ ‘사랑하면 경쟁적이 된다’ ‘때로는 허탈감에 빠진다’ 등 사람의 특성을 서술한 180장의 문장 카드에서 자신이라 여겨지는 카드를 개수 제한 없이 고르는데, 이를테면 ‘나는 모험을 좋아한다’라거나 ‘책임지기를 싫어한다’라는 카드를 보고 내가 그런 사람이라 여겨지면 그 카드를 골라 몸 그림 안에 붙인다.

수지는 ‘자기 주장이 강하다’ ‘깊은 상처는 절대 못 잊는다’ 등 사람의 특성을 서술한 180장의 카드 중 자신을 표현한 내용이라 생각되는 것을 골라 ‘몸 그림’에 붙이는 활동이다. 고운별 제공

처음에는 의욕 없던 청소년들도 자신을 닮은 카드를 고르는 시간에는 꽤 진지한 모습을 보인다. 이후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의 대응이나 회피,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모습 등 9가지 본질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내가 아닌 본질을 골라낸다. 최종적으로 한 가지 본질을 선택하면, 앞서 그려뒀던 몸 그림 안에 규칙에 따라 카드를 재배치하고 강사가 각자의 ‘도표’를 읽어준 뒤 마무리한다. 수지의 규칙대로 카드를 배치한 결과물을 도표라 부른다.

예를 들어 ‘누구는 주변에 행복이 번지게끔 하는 사람이고 낙천적인 사람인데, 지금의 상태는 어떠하다’라는 식으로 도표를 읽으면서 청소년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손수 골라온 카드로 자신의 본질에 기반한 도표를 만들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자신에 대해 이해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검사지를 통해 문장을 체크하는 방식이 아니라, 카드를 고르고 배치해서 도표를 만드는 작업은 수지가 가진 강점이다. 시험에 익숙한 청소년들은 검사지를 앞에 두면 자신의 모습을 선택하기보다 ‘정답’을 선택하고 싶어 한다. 내 모습보다는 되어야 하는 모습이나 바라는 모습을 선택하는 빈도가 높다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골라온 카드로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과정은 진솔하고 직관적이다.

이 프로그램을 경험한 아이들은 “내 생각보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싫은 것과 귀찮은 것은 다른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부모님도 말해주지 않았던 나의 장점을 스스로 찾게 됐다”라고 전한다.

교사가 수지를 경험했을 때 효과는 배가 된다. 자신의 본질을 발견하는 과정을 경험해본 교사는 학생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청소년이 미숙한 존재가 아니라 이미 고유한 본질을 지닌 존재임을 알게 되기에 모두가 저마다의 ‘빛’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존재하는 그대로 수용해주는 상대에게 마음을 열기 마련이니 교사와 청소년의 관계 역시 존중에 기반해 새롭게 시작된다.

수지를 경험한 청소년들은 추가 상담 등을 요청하곤 한다. 자신에 대해 진심으로 궁금해하는지라 ‘진짜 상담’이 진행된다. 타인에게 보이고 판단되는 내 모습이 아니라 스스로 나를 알아가는 것 자체에 의미를 찾다 보면 진짜 자신의 적성과 진로를 탐색하는 발판이 마련된다.

무엇보다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내 안에 있는 빛으로 걸어갈 수 있다’는 발견을 스스로 경험하는 것은 정말 귀한 일이다. 그렇기에, 수업이 끝난 뒤 눈을 반짝이며 하는 이야기는 더없이 멋져 보인다. “저, 생각보다 멋진 사람이네요.”

고운별 마음충전소 ‘결’ 소장(수지에니어그램 강사, MBTI 일반강사, 청소년 노동인권교육 강사)

고운별(마음충전소 ‘결’ 소장. 수지에니어그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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