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과세 피하자" 막판 물량 폭탄···하루에만 1조 팔았다

심기문 기자 2022. 12. 26.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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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들어 1.4조 사들이던 개인
최근 4거래일간 2.1조원 '팔자'
삼성전자 723억으로 가장 많아
KAI 등 방산주도 매도세 집중
예탁금 연중 최저치도 악재로
[서울경제]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한국 증시에서 개인투자자들이 씁쓸함을 삼키면서 1조 원 가까운 금액을 순매도했다. 금융투자세법이 2년 유예되고 대주주 양도세 기준에서 가족합산 규정이 폐지됐다고 하지만 대주주 과세를 피하기 위한 물량 폭탄이 터지는 모습이다.

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개인투자자들의 순매도 규모는 9619억 원으로 집계됐다. 코스피에서 6200억 원을 내다 판 개인은 코스닥에서도 3419억 원을 내던지면서 연말 투매 행렬에 동참했다. ‘산타 랠리’ 기대감에 이달 1일부터 20일까지 코스피와 코스닥에서 1조 4000억 원 규모를 사들였던 개미들은 21일부터 4거래일 동안 2조 1000억 원에 달하는 순매도세를 나타내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의 순매도 상위권 종목은 모두 한 해 내내 개미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종목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005930)(723억 원) 물량이 가장 많았다. 주도주로 자리 잡으며 투자자들에게 쏠쏠한 수익을 안겨줬던 한국항공우주(047810)(278억 원), 포스코케미칼(003670)(277억 원), 엘앤에프(066970)(237억 원) 등 방산·2차전지 관련주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개인들의 순매도는 매년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21일부터 28일까지 개인은 8조 5070억 원을 순매도했다. 증시 마지막 날인 12월 28일에는 3조 1587억 원을 팔았다. 2017년부터 5년 동안 개인들은 폐장 7거래일 전부터 7000억~6조 5000억 원을 매년 팔아치웠다.

국회의 불확실성이 개인 투매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국회는 22일 예산안과 함께 내년도 세제개편안에 합의하며 금융투자소득에 대한 과세 시행은 2025년 1월 1일로 2년 연기했다. 주식 양도소득세는 현행(대주주 기준 및 보유 금액 10억 원)대로 과세하기로 했다. 다만 기획재정부는 시행령을 고쳐서 대주주 여부를 판정할 때 배우자나 부모·자식 등 가족 지분을 합산해 계산하는 ‘기타 주주 합산 규정’은 폐지하기로 했다. 개인별로 종목당 10억 원 넘게 주식을 보유한 경우만 과세하게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결정이 올해 2~3거래일 앞둔 상황에서 쫓기듯 발표됐고 개미들은 과세를 피하기 위한 물량을 쏟아내고 있다. 증권가는 27일까지 양도세 회피 목적의 매도 물량이 쏟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증시 폐장일인 29일 바로 전날인 28일 주식 보유액을 기준으로 양도세 과세 대상자가 결정돼 양도세를 피하려는 주주들은 27일까지 주식을 정리해야 한다.

특히 올해는 증시가 지난해와 달리 약세를 보여 양도세 부과 대상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실제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코스피지수 하락률(1월 3일~12월 20일)은 21.93%에 달했다. 미국·일본·중국 등 주요 20개국(G20) 국가의 주요 증시 지수 중 19위다. 전쟁 중인 러시아를 제외하면 사실상 꼴등인 셈이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연말에 일시적으로 주식을 매도해 대주주 요건에 해당되지 않기 위한 개인의 전략적인 매도 물량이 출회하고 있다”며 “2010년 이후부터 개인의 순매수 추이를 살펴보면 연중 순매수 기조를 유지했던 개인들의 매매패턴이 12월 이후에는 순매도로 전환하는 경향이 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가총액 관점에서는 코스피에서 중형주, 코스닥에서 대형주 중심으로 12월 개인 순매도가 집중됐던 경험이 있는 만큼 이번에도 유사한 흐름이 펼쳐질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인들이 연말 투매와 더불어 투자자예탁금이 연중 최저치를 새로 쓰고 있는 점도 악재다. 이달 23일 기준 투자자예탁금은 43조 9025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올해 들어 가장 낮은 수준이다. 22일 44조 원대로 줄어든 투자자예탁금은 23일에도 감소세를 이어갔다.

다만 일각에서는 현재 개인들의 순매도세가 종목들의 기업가치와는 무관해 저점 매수에 나서야 하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관투자가들이 개인들의 물량을 모두 받아내고 있다는 점 역시 설득력을 높인다. 기관의 순매수는 연말 배당을 노린 것이라는 분석이 있지만 주가가 저점이라는 신호로 보기도 한다. 기관은 개인이 순매도세를 보이기 시작한 21일부터 이날까지 1조 6812억 원을 순매수하고 있다. 해당 기간 삼성전자를 3320억 원어치 사들였으며 SK하이닉스(755억 원), POSCO홀딩스(558억 원) 등도 적극적으로 매수하는 중이다. 한 연구원은 “단기 주가 급락이 나타나더라도 매도에 동참하기보다는 저가 매수의 기회로 접근하는 것이 적절한 대안 전략”이라고 말했다.

심기문 기자 do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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