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에너지 효율 분야 디지털 활용 '선택 아닌 필수'
에너지가 문제다. 국제적인 에너지 수급 불안정으로 촉발된 물가 상승과 경기침체에 대해 연일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세계에서 10번째로 에너지를 많이 쓰는 대표적인 에너지 다소비국가인 우리나라는 심각성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에너지 공급 문제뿐만 아니라 에너지 관리 효율 측면에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가운데 33위로 뒤처져 있어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는 왜 에너지를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개선 노력은 얼마나 하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에너지 소비 주체자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인지하기 어렵다. 그 판단 기준과 근거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무조건 아껴 쓴다고 해서 효율이 높다고 말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개선하고 싶어도 정확한 방법을 알기가 어렵다. 보통 에너지 소비자는 에너지 효율을 비용으로 판단해서 전년도나 지난달 에너지 사용 요금을 비교해 추정한다. 이는 경험을 토대로 소비 수준을 유지할 수 있지만 획기적인 효율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정확한 에너지 사용량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에너지 사용에 대해서도 소비자가 스스로 관리하여 행동에 맞는 보상을 받는 방법이 있을까. 최우선적으로 소비자에게 관련된 정보와 시장 상황에 따라 변동되는 신호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대표 사례로 주유비에 민감한 자동자 운전자는 수입 가격에 따라 변동되는 휘발유 가격을 '오피넷'이라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실시간 가격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리터당 휘발유 가격이 2000원을 넘었을 때 이러한 실시간 정보로 말미암은 차량 통행량이 약 2∼3% 줄었다는 통계가 있다. 안정된 가격 유지도 중요하지만 불가피한 상황에서 소비자가 합리적 선택을 하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에너지 수급에서 더욱 중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에너지 공급사가 에너지 사용량에 대한 정보를 객관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디지털 과정을 선행해야 한다. 사용량에 대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소비 기기와 연동해서 관리할 수 있다. 현재 전기 사용량은 한국전력공사에서 제공하지만 아쉽게도 가스와 열 사용량은 공급사에서 스마트미터 보급과 데이터 플랫폼이 준비돼 있지 않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사업이기 때문에 일시에 구축하기는 어렵겠지만 일정 규모 이상을 사용하는 소비자 대상으로 점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그동안 에너지 사용료를 과금 후 에너지 사용량 정보를 확인하던 것을 사용 중에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다면 에너지 수요관리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새해부터 연간 에너지 사용량 2000석유환산톤(TOE) 이상의 다소비 사업자 대상으로 사용량을 실시간 제공하고, 효율 개선을 위해 데이터를 제3자에 공유하는 '한국형 그린버튼 사업'이 예정돼 있다. 현재는 소비자가 연 1회 분기 단위로 신고하던 것을 공급사로부터 실시간 데이터를 받아 제공한다. 이로써 수요예측·효율 투자를 유도하고, 효과 검증이 객관적으로 이뤄지도록 개선할 것이다. 소비자 시설에 대한 전기·가스·열 사용량을 종합해서 볼 수 있다면 정확한 수요예측도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음 단계에서는 소비자 효율 수준에 대한 비교 평가로 좀 더 적극적으로 관리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산업 분야는 업종별 효율지표를 마련해서 상대적 비교가 가능하도록 하고, 건물 분야는 공통설비가 많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효율 수준을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쉽게 적용되기 때문에 어려운 점도 있다. 우선 산업 분야는 생산활동 및 에너지소비량과 직결돼 단기간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또 설비 교체 주기도 상당히 길어서 멀쩡한 설비를 쉽게 바꿀 수도 없다. 특히 중소·중견기업 입장에서는 더욱더 어려운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강점인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매년 효율 개선에 대한 목표와 계획을 세워서 정부 지원프로그램과 자체 투자 예산에 맞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권기영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장 kweon_wind@ketep.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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