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채의 센스메이킹]<4>인간 창의력의 경쟁력은 어디에 있는가
“풍부함이나 화려함 같은 단어 추가에 80시간을 썼습니다.” 텍스트를 이미지로 바꾸는 생성 인공지능(AI) 프로그램 '미드저니'를 사용해 완성된 디지털 아트 '우주 오페라 극장'은 지난 8월 미국 콜로라도주 미술 박람회에서 우승했다. 예술가들은 분노했고, 해당 작품의 창작자는 지속적으로 톤 앤드 매너를 발전시키기 위해 900번 이상의 텍스트 변환을 시도한 만큼 AI 프로그램이 새로운 예술 제작의 '도구'임을 주장한 바 있다.
2013년에 발표된 영국 옥스퍼드대 산하 옥스퍼드 인터넷 연구소의 리포트에 따르면 AI로부터 위협을 덜 받는 직업군은 그림과 글을 쓰는 것과 같은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작업이었다. 하지만 이달 초 GPT-3는 2024년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선 토론회 풍경을 표현한 뉴욕 매거진 기사를 작성했고, 스타트업 서비스 '컨센서스'는 작성자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전 세계 과학 논문들의 관련 결론들을 수초 안에 제공한다.
필자의 경우 글 작성 시 대부분의 시간은 제한된 공간에 넣을 수 있는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많이 읽고 전체의 구조와 주요 내용을 결정하는 데 사용된다. 이들 사례는 역사적으로 인간의 창의적 과정의 일부로 여겨오던 특정 작업의 자동화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더 이상 창의성이 인간다움의 상징이 아닐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게 한다. 물론 여전히 인간의 개입이 절대적이고 AI는 시키는 것을 잘할 뿐이라고 누군가는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이 어느 때보다 풍부하고 빠르게 확장되며, 윤리가 부족한 세상에서 그 같은 이야기는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
사회학자인 김문조 고려대 명예교수는 디지털 시대의 인간은 신체적·규범적 한계를 넘어선 열망을 추구하려는 시도들로 채워져 탈진정성이 시대적 방향성이 되었음을 지적했다. 진실을 전하는 뉴스가 재미있는 뉴스쇼가 돼야 하는 강박을 우리는 익숙하게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생성 AI 기술은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모든 것을 쉽게 캡처하고 배포할 수 있게 된 뒤 구체화되고 있는 문화의 민주화를 가속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창의력이 시장에서 차별화를 이루기 위해 고려돼야 할 점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특히 창의성의 결과물로 승부를 보는 크리에이터 업계인 예술 또는 광고 및 미디어 콘텐츠 제작 분야에서 이 같은 생성 AI 프로그램과 비교되는 그들만의 경쟁력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첫째 실제 세계를 바라보는 풍부한 관점에 집중해야 한다. 스타일은 역사적으로 예술가의 독특한 특성이었다. 누군가가 AI 생성 프로그램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스타일로 구현할 것을 적어 넣더라도 이는 곧 관객들에게 해당 작품이 기존 작가의 스타일에 영향을 받는 파생 작품으로 분류됨을 의미한다. 꾸준하고 뚜렷한 창작자의 고유한 스타일은 세계를 향한 자신만의 관점에서 싹이 튼다는 점에서 메타버스 시대에 적용 가능한 '부조화 프레임'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는 기존 사회학 관점의 빈곤론·격차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2030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소비 행태인 오마카세 인기 및 무지출 챌린지 열풍의 의미를 모두 납득할 수 있게 해 준다. 고령화를 출산과 사망의 부조화, 양극화를 성장과 분배의 부조화로 각각 바라보면 그들 사이의 조화가 곧 해결책에 가까워질 수 있음을 이해하도록 돕기에 유용한 부분이 있다.
둘째 프로세스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 텍스트로 명령을 내리는 현 생성 AI 기술 세계에서 창작자는 무엇을 적을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 곧 핵심 기술이 된다. 누군가가 어떻게 결과물에 도달했는지에 대한 프로세스에서 창작자의 숙련도와 그 과정 동안의 산출물 양을 보여 주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 될 수 있다. 관련 기술 기업들은 프롬프트 작성 시 좀 더 세분화된 제어를 가능하게 할 자체 언어와 시스템을 발전시킬 공산이 높다. 앞으로 현업에서 생성 AI 프로그램을 사용하게 될 창작자 또는 전통적인 방식의 창작자 모두 결과물이 아닌 각 '과정'에 더욱 풍부한 통찰력을 담아내고 드러낼 수 있는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 대중은 이를 통해 자신이 확인한 의미가 단순히 재미가 아닌 각자 삶과의 연결성을 발견하게 됨으로써 결과물에 대한 가치를 상호 확인 및 결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ryan@reasonofcreativity.com
Copyright © 전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中 '반도체 설계 오픈소스' 영향력 키운다
- [단독]네이버 '빠른 정산', 2년간 신청자 절반만 승인
- '스팀덱' 배송 대란·환불 난항…애타는 소비자
- [K-디지털 권리장전 좌담회]디지털 대전환기, 한국의 미래를 묻다
- [숏폼] 영하 50도?... 얼어붙은 美 대륙
- 메가존클라우드-베스핀글로벌, SaaS 전환부터 해외 진출까지 경쟁 치열
- [뉴스줌인]중국, '오픈소스 RISC-V'로 美 반도체 제재 '맞대응'
- K-제약·바이오 기술수출 6조원…지난해 대비 반토막
- 한국 보유 국제해저케이블 용량 200Tbps 돌파...트래픽 폭증 속 정부 관심 필요
- 한샘, 가구 렌털 사업 철수…“선택과 집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