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 모시겠다던 尹민관합동委…출범도 못하고 사실상 무산
민간·관료 협업 어려워…거취·공간 등 현실적 문제 커
위원회 설립 전제로 정책실 없애…정책컨트롤타워 부재
석학·각계각층 의견 청취로 민간 아이디어 확보
[이데일리 박태진 기자] 윤석열 정부가 민간의 목소리를 국정 운영에 적극 반영하겠다며 야심 차게 내세웠던 민관합동위원회가 출범도 하지 못한 채 닻을 내린 모습이다. 민간인력과 관료들이 함께 일하기 어렵다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 영향으로 해석된다. 이런 탓에 대통령실의 정책 조정 기능이 약화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26일 여권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및 당선인 시절 ‘소통’을 강조하면서 직접 발표했던 대통령 직속 민관합동위원회 출범이 사실상 무산됐다. 정부 출범 이후 8개월이 지나도록 조직이 구성되지 않고 있어서다.
민관합동위원회 가동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함께 윤 대통령 국정운영 계획의 양대 축을 이루는 강조사항 중 하나였다. 민간 전문가들과 정부 인사들이 공동으로 참여해 주요 현안에 대해 정책을 발굴하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꾸린다는 것으로, 대선 후보시절은 물론 당선인 시절에도 공약사항이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 1월 기자회견에서 “공무원 신분을 가진 분들만 모아서는 한계가 있다”면서 “대통령실은 최고의 공무원과 민간인이 하나로 뒤섞여 일하는 곳으로 바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부 출범 직전인 지난 5월 9일에는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이 위원장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민관합동위원회는 청와대 해체 및 대통령 집무실 슬림화의 연장선으로 추진돼왔다. 청와대 정책실의 기능을 민관합동위원회로 이관해 취업제한 규정과 인사청문회의 문턱을 낮춰 민간 전문가를 정책 설계 단계부터 적극 참여시키겠다는 구상이었다. 특히 내각 위에서 정책 기능을 총괄해온 청와대 정책실을 폐지하고 국정을 이끌어 갈 대형 과제와 민간의 정책 제언을 수용하는 창구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장애물을 만났다. 대통령실 조직 슬림화 일환으로 지난 7월 대통령 소속 위원회 20개 중 13개(65%)를 정리하는 방안이 잠정 확정되면서 자연스럽게 민관합동위원회는 무산되는 분위기로 접어들었다.
더욱이 실질적으로 민간인사들과 관료들이 한 공간에서 공동으로 일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계속 나왔다. 거취 문제와 근무할 공간 확보 등의 어려움이 존재했다.
여권 한 관계자는 “처음에 생각했던 것은 민관합동위가 청사 안에서 함께 일하는 구조였다. 그런데 사실 위원회라고 하면 민간의 경우 대부분 자기 직업이 있는 상태에서 비상근 형태로 근무하는데, 청사로 들어오면 자기 직업은 손을 떼야 하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새로 옮긴 청사에 공간 부족 문제도 위원회 구성에 발목을 잡았다.
문제는 위원회 출범이 어려워지면서 윤석열 정부 국정운영의 한 축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는 점이다. 대통령실은 민관합동위원회 구성을 전제로 처음 조직을 구성하면서 정책실을 폐지했다.
하지만 막상 위원회 구성이 안 되면서 정부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고,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9월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이 긴급 투입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여권에서는 과거 정책실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대통령실에서는 차선책으로 다른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부터 보고를 받거나, 다양한 전문가 집단, 각계각층 인사들과 만남을 통해 국정운영 아이디어를 얻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민관합동위원회가 아닌 다른 경로를 통해 듣는 방안을 강구 중인 것이다. 예컨대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나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등이 민관합동위원회의 역할을 ‘십시일반’한다는 얘기다.
여권 관계자는 “당초 윤 대통령의 구상은 바깥에 있는 석학이나 기업 인사 등 훌륭한 분들을 모셔서 수시로 자문을 받고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생각이었다”며 “그런데 위원회 구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고심한 끝에 석학들을 계속 돌아가면서 만나면서도 각계각층의 얘기도 듣고 자문을 받는 구조가 국정운영 아이디어를 얻는 데 있어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을 하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해진 인력 풀(집단)을 이용하기보다는 새롭고 다양한 인력들을 두루 만나며 의견을 청취하겠다는 구상이다.
박태진 (tjpar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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