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내고 덜 받는' 일본 국민연금…감내 이유는 지속가능성(종합)
"정보 투명하게 공개" 조언…재정계산위, 회의록 한달 간격 공개하기로
(도쿄=연합뉴스) 조민정 기자 = 약 2년 후인 202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되는 우리나라에 연금개혁은 이제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0.8명까지 떨어진 합계출산율, 가속화하는 고령화 속에 연금 재정 안정화를 위해서는 보험료율 인상, 수급개시 연령 상향과 같은 '모수개혁'은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1998년부터 24년째 9%에 머물러 있다.
우리보다 앞서 2005년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은 그 직전 해인 2004년 13.58%였던 연금보험료율을 18.3%로 인상했다.
제5차 장기 재정추계가 시작되면서 국내에서도 연금 개혁 논의가 활발해지는 가운데 '채장보단'(採長補短·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보완함)하겠다는 목표로 지난 18∼21일 일본을 방문한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과 동행해 일본의 연금개혁 과정을 되짚어봤다.
보험료율 인상 세밀한 전략…"4.5%P 올린다, 다만 13년간 '조금씩'"
일본의 공적연금은 모든 국민이 가입하는 국민연금(이하 기초연금), 근로자·공무원 등이 가입하는 후생연금(이하 국민연금), 후생연금 가입자 대상의 퇴직연금까지 우리와 같은 3층 구조로 이뤄져 있다.
기초연금은 가입자 모두 같은 금액(2022년 기준 1만6천590엔)을 내고 수급연령이 되면 가입기간에 따라 정액연금을 받는 형태다. 일정 연령 이상의 국민에게 소득과 관계없는 정액이 지급된다는 면에서 우리나라의 기초연금과 같지만 우리나라는 보험료 없이 100% 국고 지원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일본은 2000년대 초반 고령화 진행으로 인한 수급자가 늘고 출산율 저하에 따라 보험료를 내는 세대 수는 줄어들자 연금 개혁을 추진했다.
2002년 1월에 이미 보험료율 상향, 소득대체율 하향, 즉 '더 내고 덜 받는' 방안이 언급됐고 같은 해 12월에는 이 같은 기본 골격에 대한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소득대체율 60%를 목표로 할 경우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20%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고 이를 두고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활발한 찬반 토론이 이뤄졌다.
일본에서 만난 후생노동성 산하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 연구소의 사토 아타루 선임연구원은 "당시 논의되던 인상안에 비하면 18.3%는 크게 높은 수준이 아니었고, 그 이상으로는 올리지 않겠다는 언급이 있어서 국민들은 오히려 '이만큼까지 오르면 더는 오르지 않겠구나'하고 안심을 했다"고 전했다.
고령화 진행과 함께 연금 개혁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상당 기간 이어지면서 국민들의 수용력이 점차 높아졌다는 것이다.
보험료율 인상 폭이 컸지만 이를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반영한 것도 국민 부담을 낮추는 요인이 됐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2004년 13.58%에서 매년 0.354%포인트(P)씩 올라 2017년 18.3%에 도달하는 데까지 13년이 걸렸다.
2004년 개혁안에는 당시 1만3천330엔이었던 기초연금 보험료도 1만6천900엔으로 인상하는 내용이 담겼는데, 이 보험료 역시 점진적으로 인상됐다.
당시 연금개혁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겐조 요시카즈 게이오대 교수는 "보험료를 아주 조금씩 올렸기 때문에 국민의 부담도 적었고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비판도 잦아졌다"며 "연금개혁에는 아주 섬세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일본 정부는 2009년부터 기초연금에 대한 국고 부담 비율을 3분의 1에서 2분의 1로 인상했고 나아가 2012년에는 이같은 국고부담을 명문화하는 동시에 소비세를 5%에서 10%로 올리고 그중 1%는 반드시 기초연금에 활용하도록 정했다.
받는 연금 줄었지만 "미래 세대 위한 것"…사회적 합의가 중요
예상했던 대로 일본의 연금 수급자들이 받는 연금액은 줄었다.
일본은 남편이 평균적인 수입(월 36만엔)으로 40년간 취업하고 아내가 그 전체기간 전업주부였던 세대를 모델링해 연금액(2인분의 기초연금과 남편의 후생연금의 합) 추이를 본다.
2004년 23만3천299엔(한화 226만원 상당)이었던 연금액은 2022년엔 21만9천593엔(212만원)으로 약 5.9% 줄었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상당히 후퇴한 수준이다.
일본은 2004년 개혁 당시 '거시경제 슬라이드'라는 연금액 자동 조절 장치를 도입했다. 연금 지급액은 임금과 물가 상승을 반영하지만, 기대수명이 늘어나거나 출산율이 떨어져 연금가입자가 감소하면 지급액에 대한 삭감도 이뤄지도록 한 것이다.
보험료율을 18.3%로 고정하기로 한 상황에서 저출산 고령화 기조가 이어지는 한 연금액은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겐조 교수는 "현재 사회 구조에서 고령자들에게 계속해서 많은 연금을 지급할 것인지, 그다음 세대에게 더 물려줄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고 했다. 당장 연금액은 줄겠지만, 공적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선 필요한 조치였다는 설명이다. 신구세대의 고통 분담으로도 읽힌다.
야스히로 하시모토 후생노동성 연금국장은 2004년 개혁에 대해 "보험료율을 높이고 연금액을 낮추는 것이 국민들에게 인기있는 개혁은 아니지만, 국민의 불안을 해소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물론 일본에서도 연금 삭감에 대한 불만, 국민연금에 대한 청년층의 불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차관과 만난 한 일본 언론인은 "연금 보험료를 내는 것은 부모님께 용돈 드리는 정도의 기분이고, 우리가 나중에 제대로 받게 될지에 대한 불안함이 있다"고 했다.
'개호보험'(우리의 장기요양보험)을 통해 고령자의 의료·요양 시스템을 갖춰놓은 것이 그나마 위안인 정도다.
그럼에도 일본 국민들이 이를 감내하고 있는 것은 사회적 안전망인 공적연금 제도 지속가능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은 약 100년간 재정 균형 기간을 설정해 마지막 시점에 1년분의 연금을 지급할 수 있는 적립금을 보유하도록 공적연금 재정을 관리해나가고 있다. 100년 후의 상황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공적연금은 그렇게 긴 기간을 바라봐야 하는 제도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셈이다.
"국민 설득에 2∼3년은 필요…그러나 결국엔 정치적 결단 있어야"
겐조 교수는 이 차관과의 만남에서 '연금은 보험'이라는 점을 국민에게 납득시켜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자동차 보험을 들었다가 사고가 안 나서 돈을 못 받게 된다고 해서 '사고가 안 나서 아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지 않나. 연금은 낸 금액대로 돌려받는 적금이 아니라 보험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 관점으로 보면 이해가 어렵겠지만 결국에는 서로를 돕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연금이고,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을 마련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데 2∼3년의 시간은 필요할 것으로 봤다.
지난 21일 이 차관을 만난 오시마 가즈히로 후생노동성 사무차관도 "연금개혁은 어려운 문제이고, 시간이 걸려도 투명한 정보제공을 토대로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일본은 2004년 개혁 이후 관련 회의록과 회의자료를 모두 공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연금개혁 논의 과정을 유튜브로 공개한다.
우리 정부도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회의록을 한 달에 한번 실명과 함께 공개하기로 했다. 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하거나 회의록을 요약본으로 제공해온 관례를 깨고 회의록을 완전 공개해 연금 개혁의 전 과정을 투명하게 하겠다는 취지다.
일본에서 만난 여러 연금 전문가들은 자칫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될 수 있는 보험료율 인상 문제가 큰 논쟁 없이 통과돼 잘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로 당시의 정치 상황을 꼽았다.
당시 연금을 둘러싼 정치스캔들이 터지면서 연금 개혁의 세부적인 내용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개혁안이 통과됐다는 분석도 있지만 결국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가 지지층 감소 우려에도 과감한 연금개혁을 강하게 추진한 것이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정치적 리더십을 언급하는 이들도 있었다.
2004년 개혁 당시 연금 담당 과장을 지내며 개혁 과정에 참여한 야스히로 하시모토 후생노동성 연금국장은 "개혁안을 최종 수리하는 단계에서는 고이즈미 총리의 리더십과 결단이 주효했다"고 강조했다.
chom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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