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욱의 밀리터리 밸런스 <7>] 2023년 복합 경쟁 속의 군비 경쟁 시대, 우리의 해법은
2023년은 안보 분야에서 몇 가지 의미를 갖게 된다. 우선 6·25 전쟁 정전(停戰) 70주년이다. 정전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결론은 아니었지만, 공산 세력의 무도한 침략에도 대한민국은 생존했다. 전쟁의 참화로 세계 최빈국 수준으로 전락해버렸지만, 70년 만에 대한민국은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 수출 6위의 무역 강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최근 우리는 북한의 위협과 미·중 패권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로운 위협을 맞이하고 있다.
새해 한·미 동맹과 북한 이슈
반면 북한은 2023년을 승전 기념 70주년으로 기념할 것이다. 북한은 자신들이 시작한 침략 전쟁에서 전쟁의 참화밖에 얻은 것이 없었지만, 김일성 권력의 유지를 위해 정전 협정을 뻔뻔스럽게도 승전으로 위장했다. 특히 3대인 김정은은 인류 최악의 정권에서 물려받은 최후의 유산인 핵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계속 위협하고 있다. 특히 작년 한 해 북한은 전술핵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언제든 전쟁에서 핵을 쓸 것이라며 대한민국을 위협했으며, 올해는 그 위협을 더욱 실체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2023년은 또한 한·미 동맹이 7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냉전이라는 국제 정세 속에서 명분을 지켜내야 했던 미국은 공산 세력에 치열하게 맞서는 한국을 버릴 수 없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주한 미군 주둔과 무상 군사 원조로 나라를 지키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한국은 좌절하지 않고 자국의 운명을 개척했다. 우리는 베트남전 파병으로 미국의 존경을 얻어냈고, 리처드 닉슨의 닉슨 독트린을 맞아 자주 국방을 키워냈다. 지미 카터 정권과 충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무시할 수 없게 되자 결국 한⋅미 연합사령부라는 초유의 통합 조직을 만들어내면서 오히려 양국의 안보 동맹은 더욱 강화되었다. 냉전이 끝난 이후에도 한·미 양국은 여전히 든든한 동맹 관계를 과시해왔다. 특히 2022년에는 한·미 양국은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이라는 미래의 동맹 형태를 향해 같이 나아가기로 했다.
이렇게 2023년은 신뢰와 대결을 동시에 상징하는 70주년이다. 한·미 양국의 관계는 포괄적 전략 동맹을 향해 정치·경제·사회 분야에서 활발한 교류가 일어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중국이냐 미국이냐 하는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와 국제 규범 안에서 우리에게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한·미 동맹은 분명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국익을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국익을 증진시켜주는 것이다. 이러한 진정한 동맹 관계로 진화해야 포괄적 전략 동맹이 될 수 있다.
2023년은 군비 경쟁의 해
필자가 속한 아산정책연구원은 2023년 정세 전망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그 화두를 ‘복합 경쟁(Complex Competition)’으로 제시했다. 현재의 국제 사회 구도는 신냉전으로 보기에는 너무도 복잡다단하다. 소위 강대국을 자처하는 주요 국가들은 자국 중심으로 국제 질서를 재편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경쟁국들을 거칠게 배척하고, 협력국이라도 국익에 맞지 않으면 과감히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을 선택한다. 경쟁이 심해지면서 게임체인저(game changer) 수준의 안보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며, 자국의 체제에 동참하도록 다른 국가를 강권한다. 이들 사이에 얽힌 중견 국가들은 선택의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 연구진은 복합 경쟁으로 규정했다.
복합 경쟁은 더 이상 경쟁이 아니라 투쟁으로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과거 안보와 분리되었던 경제조차 이제 안보 문제로 바뀌었다. 현 정부가 경제 안보를 주요한 안보 이슈로 내세운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게다가 군비 경쟁은 더욱 심화할 것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전 세계는 여전히 재래식 군사력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특히 과거 첨단 무기 체계의 질적 우세만을 추구했지만, 막상 포탄이 부족해 고전하는 모습을 보고 탄약 등 로엔드(low-end·저가) 무기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즉 재래식 군비 증강은 질적으로뿐만 아니라 양적으로 빨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폴란드에 대규모로 방산 수출이 가능했던 것도 결국 이러한 세계 정세 덕분이다. 게다가 핵 경쟁도 심상치 않다. 미·중 패권 경쟁은 이제 핵 분야까지 확대됐다. 미·러 갈등으로 국제 핵 군축 레짐이 무너지자 중국은 더 이상 미·러 양국이 스스로 핵을 내려놓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야욕을 드러냈다. 중국은 핵탄두의 현대화와 추가 생산을 통해 2027년까지 700발, 2030년까지 1000여 발의 핵탄두를 확보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미국은 탈냉전 후 무려 30년간 미뤄왔던 핵무기 현대화를 추진 중이다. ‘핵 폭격기-IC BM-SLBM’의 핵 3축 전력이 모두 다음 세대로 교체된다.
미국과 함께 여전히 양대 핵 강국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이미 여러 차례 핵 사용 위협을 하며 국제 핵 질서를 교란했다. ICBM용 극초음속 탄두나 극초음속 순항 미사일 등 신무기 개발도 잊지 않고 있다. 한편 이란의 핵무장 가능성은 중동 국가들에는 악몽이다. 중동의 불안정은 국제 에너지 수급의 불안정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진짜 우려스러운 것은 당연히 북한이다. 북한은 2023년에도 전술핵과 ICBM 개발을 이어 가면서 한·미 양국을 도발하며 핵 위협을 높일 것이다. 특히 김정은은 7차 핵실험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존재감을 과시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위협이 높아지는 만큼 우리는 한·미 동맹의 강화로 전략 자산 상시 배치를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 주한 미군 전술핵 재배치나 한·미 핵 공유 등의 안보 이슈를 더욱 치열하게 논의할 것이다.
복합 경쟁 시대의 대전략이 필요
인구 절벽을 맞아 우리 정부는 인공지능(AI)과 무인 자율 무기 체계 등을 결합한 과학 기술 강군을 만들어 안보 위협을 극복하겠다고 밝혀왔다. 특히 이러한 미래 전장은 초연결·초융합 수준의 정보통신이 핵심적인 무기 체계가 된다. 실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첨단기술을 활용한 혁신적 교전 사례가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민간 소셜미디어(SNS)에 떠돌아다는 사진을 AI로 분석해 군사작전에 필요한 핵심 정보를 모아 러시아군을 격파하는 데 활용했다. 심지어 카카오택시 같은 앱을 만들어 적 표적에 가장 가까운 부대는 그 어느 부대라도 공격할 수 있도록 교전 환경을 만들었다. 우크라이나군은 우주 기반의 군용 통신이 없었지만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 위성을 사용해 민간 인터넷으로 가장 효율적인 전쟁 지휘 통제를 꾸려나갔다. 이렇듯 기존에 민간에 확보된 기술을 가장 먼저 적용하는 쪽이 우세한 싸움이 가능하게 됐다. 중요한 것은 무기가 아니라 인간이며,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다.
2023년에는 주요국들이 연관된 군사 충돌은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미·중 패권 경쟁의 공간인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미국의 패권이 느슨해진 중동 지역에 중·러의 공략으로 에너지 주도권이 흔들리며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작년 우크라이나의 탄약 지원에서처럼 미국에 대한 지원이 러시아와 관계 악화로 이어질 수 있고, 칩 4(Chip 4, 미국·한국·일본·대만 4개국 반도체 동맹) 가입이 중국과 경제 충돌로 연결될 수 있다. 이러한 치열한 경쟁에서 우리 정부는 경제 안보의 중요성과 글로벌 중추 국가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한국에 최대한의 국익을 안겨줄 기민한 대전략을 마련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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