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깜깜이 회계' 막는다…"조합원 알 권리 실질적 보장"

김승욱 2022. 12. 2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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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지시 따라 '노조 회계공시 시스템' 구축할 듯
노동장관 "어느 조직도 무소불위 권력 가질 수 없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노조 회계 독립성 확보 추진' (세종=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6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조합 재정 투명성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2022.12.26 kjhpress@yna.co.kr

(서울·세종=연합뉴스) 김승욱 홍준석 기자 = 정부가 노동조합의 재정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은 노조가 사실상 '깜깜이 회계'로 운영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전문가 집단인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지난 12일 발표한 권고문에 따라 근로시간 제도, 임금체계 개편을 핵심으로 한 노동 개혁안을 준비하고 있다.

이후 한덕수 국무총리와 윤석열 대통령이 연이어 노조 회계 투명성을 강조하는 발언을 하자 이정식 노동부 장관이 26일 브리핑을 열어 관련 계획을 설명했다.

이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노조 재정 투명성 제고를 추진하는 배경에 대해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노사의 의식·관행 개선을 제안했다'고 설명했지만, 사실상 대통령·총리 발언에 장관이 화답하는 모양새다.

노동부가 이날 발표한 내용은 크게 ▲ 현행법에 따른 노조 재정 투명성 점검 ▲ 노조 재정 투명성을 더 높이기 위해 법·시행령 개선 등 두 갈래로 구분할 수 있다.

현행 노동조합법에는 노조 회계감사, 운영상황 공개, 자료 제출 의무가 명시돼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노조는 조합원 명부, 규약, 임원의 성명·주소록, 회의록,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를 사무소에 비치하고, 3년간 보존하도록 하고 있다.

노조 대표는 회계감사원으로 하여금 6개월에 1회 이상 노조를 회계감사 하도록 하고, 그 내용과 결과를 조합원에게 공개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행정관청이 요구하는 경우에는 결산 결과와 운영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 노조 서류를 비치·보존하지 않거나 행정관청에 허위로 보고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한다.

하지만 이 같은 조항은 거의 실효성이 없었다.

이 장관은 "정부도 '노조 자치·자율성 보장'이라는 취지로 필요한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현행법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도 하지 않고 방치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조의 재정 운영에 대해 국민적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현행법의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하겠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법·시행령 개선은 노조 회계감사원의 독립성·전문성을 확보하고, 노조 운영 상황에 대한 공표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행법에는 노조 회계감사원의 자격에 관한 규정이 없어 '셀프 감사' 또는 '지인 감사'가 가능하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 장관은 "회계감사원의 자격과 선출 방법을 구체화하고, 재정 상황 공표 방법과 시기를 명시해 조합원의 알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다"며 "이를 위해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관계부처와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노동부 브리핑 이후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인 '다트'(dart)처럼 노동조합 회계공시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노동부는 노조로부터 제출받은 각종 서류를 국민에게 공개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앞서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지난 20일 '노조 깜깜이 회계 방지법'(노동조합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노동조합 회계감사자의 자격을 공인회계사 등 법적 자격 보유자로 규정하고, 노조 내 회계 담당은 감사업무에서 배제하도록 규정한 것 등이 골자다.

이 장관은 정부가 추진하는 법 개정 방향이 하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과 유사하냐는 물음에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고 다소 다른 부분도 있다"며 "정부는 회계감사원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토대로 노조의 민주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노동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내년 2월부터 온라인 노사 부조리 신고 센터를 운영하겠다는 계획도 소개했다. 노조에만 엄정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위법행위에도 '메스'를 대겠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부당노동행위, 임금체불, 포괄임금 오·남용, 특정 노조 가입·탈퇴 강요, 노조 재정 운영 결과 공개 거부, 휴면노조 등에 대해 신고센터를 운영해 의심 사례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특정 노조의 다른 노조 활동 방해나 채용 비리 등을 규율할 방안을 강구할 계획이다.

노동부는 노조가 사용자에게 소속 조합원 채용을 강요하는 것과 같은 불공정 채용을 근절하기 위한 공정채용법을 제정할 계획이다.

이 장관은 정부의 '노조 재정 투명성 강화' 조치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위반이 아니냐는 물음에는 "어느 조직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질 수는 없고 무풍지대가 아니다"라며 "ILO도 법령에 의해 정기적으로 보고하도록 한 절차는 노조 자주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ksw0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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