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민의 글로벌 경제 톡톡 <29>] 2023년 무역 빙하기 도래하나…애국 소비·제조로 역성장 우려

최용민 2022. 12. 2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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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 지부장· 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모든 나라가 자국 기업을 대놓고 밀어주는 가운데 코로나19 부양책 후유증으로 경기침체까지 심화하면서 글로벌 무역이 전례를 찾기 힘든 침체기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보여주듯이 관세를 통해 상대국 상품에 대해 공개적으로 견제하는 것은 이제 점잖은 충돌로 분류된다. 이해득실을 따지는 일종의 숫자 싸움이어서 상대국과 적당한 타협을 통해 쉽게 해결책이 모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 안보를 이슈로 무력 충돌에 다가설 정도로 기술 및 제품 수출을 아예 틀어막는 상황은 결이 다르다. 또한 지나치게 많이 풀린 통화는 40년 만의 가장 높은 물가 상승과 전례를 찾기 힘든 가파른 금리 상승세로 이어졌고, 이는 원가 급등으로 이어져 기업의 글로벌 비즈니스 의지를 꺾고 있다. 더구나 각국의 무역분쟁을 해결해야 할 심판인 세계무역기구(WTO)는 제 기능을 사실상 상실해 신(新)보호무역주의가 언제 어떻게 종말을 고할지 짐작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존 보호무역주의는 자국 산업이 경쟁력을 갖추기까지 일정 기간 관세 부과와 물량 제한(쿼터제)으로 수입을 제한했지만, 이제는 아예 원천기술이나 핵심 부품(자원)을 차단해 상대국의 숨통을 위협하겠다는 극단을 향해 달리고 있다.

2021년 세계 무역은 20% 안팎의 신장세를 보이면서 코로나19라는 터널에서 완전히 빠져나오는 모양새를 보였다. 2022년 상반기에는 글로벌 비즈니스를 덜컹거리게 했던 물류난도 완화되면서 무역 강국을 중심으로 높은 수출증가세를 기록했다. 제조업 선두 주자인 독일은 2022년 2월에 수출증가율이 7%에 달해 견고한 흐름을 시현했다. 그러나 4월에는 마이너스 증가세(-1.4%)로 반전되더니 이후로는 증가세와 감소세를 오르내리며 좀처럼 기지개를 켜지 못하고 있다. 무역 강국인 프랑스도 2022년 초에는 두 자릿수의 수출증가율을 찍어 장밋빛 전망을 가능하게 했으나 하반기에는 마이너스(7월 –1.1%)로 급락하는 그래프를 그렸다. 

일본은 더욱 심각한 흐름을 보여줘 무역 침체기가 아니라 빙하기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2022년 2월과 3월을 제외하고는 수출이 지속적으로 마이너스 흐름을 보이면서 반등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특히 14개월 연속으로 무역적자를 경험 중인데 높은 에너지 수입 증가세로 2022년 9월 말 1100억달러(약 144조원)라는 기록적인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세계 무역의 성장엔진인 중국의 수입 추세는 전 세계 무역의 가늠자 역할을 할 정도로 상징성이 매우 크다. 2022년 1∼2월 중국의 수입증가율은 두 자리 숫자를 기록하면서 경기회복에 청신호가 들어왔다는 평가를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3월부터 7월까지는 증가세가 멈춰 제자리걸음을 하더니 최근에는 아예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11월의 수입증감률이 –8.7%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특히 한국을 포함한 10대 교역 파트너에 대한 수입액은 9월 말 누계로 두 자릿수 감소세를 기록해 코로나19 봉쇄 장기화에 따른 중국의 경기가 심각한 수준으로 냉각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022년 2분기 중국 경제는 전기 대비 0.4% 성장에 머물렀으며 제조업과 소매 판매 모두 부진이 극심한 상황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2년 중국 경제성장률을 연달아 큰 폭으로 하향 조정해 연초 6%에 육박하던 수치에서 이제는 3% 성장도 낙관하지 못할 정도로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세계 무역의 성장엔진이 급속히 식고 있는 것이다. 


中 애국 소비, 美 애국 제조 

중국에서는 대외 견제용으로 자국품 우선 소비 바람이 불고 있다. 애국 마케팅으로 해석되는 궈차오(國潮)는 돈을 쓸 때 품질과 가격보다 자국산인지를 먼저 따지는 것으로 미·중 분쟁이 격화되면서 뚜렷한 트렌드가 돼 있다. 특히 중국판 신세대인 지우링허우(1990년대생)와 링링허우(2000년대생)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에도 이 트렌드는 상당 기간 계속될 전망이다. 궈차오는 단순히 일회성 소비재인 화장품 등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고가인 자동차에도 광풍이 불고 있다. 토종 기업인 장성자동차(長城汽車)가 중국에서 84개월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판매 1위를 차지할 정도이고 BYD는 2022년 3분기에 테슬라를 따돌리고 전기차 판매량에서 1위로 올라섰다.

중국에 무역을 가로막는 애국 소비가 있다면 미국에는 ‘애국 제조’가 있어 글로벌 무역의 위축을 조장하고 있다. 미국혁신경쟁법(USICA)이 대표적인 사례로, 일명 ‘아메리카 제조법’으로 통한다. 이 법안은 과학기술 및 통신 부문에서 미국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로 자동차, 전자제품 등 핵심 산업의 미국 내 생산을 늘리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내용만 보면 특이하게 보일 게 없지만 내심은 중국과 연관 있는 인력과 장비를 배제해 미국 내 일관생산체제를 갖추도록 반강제한다는 점이다. 

또한 미국경쟁법(ACA)은 보다 공격적으로 미국 내 제조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 법안은 USICA와 비슷하게 약 500억달러(약 65조원)의 연방예산을 투입해 미국 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고 서방 국가 중 처음으로 국가안보를 근거로 외국인 직접 투자를 규제하는 제도를 채택했다. 중국과 같은 비시장경제 국가로부터 수입을 제한하는 조항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전기차 세제 차별을 골자로 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도 미국 내 생산 유인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 역차별 법안이라는 주장이 한국과 유럽연합(EU) 등 동맹국에서 제기되고 있다. IRA가 북미 지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대해서만 세액공제를 적용하고, 일정 비율 이상의 북미산 배터리 부품을 사용토록 규정하고 있어 국제 무역 규범과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규정을 위배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한 IRA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2005년 대비 40% 줄이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등 기후변화 대응 사업에 3750억달러(약 491조원)를 투입하도록 명시했는데 세액공제와 보조금 등 혜택을 미국이나 인근 지역(캐나다, 멕시코) 제품으로 한정해 무역 회복에 냉기를 불어 넣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도 무역을 위축시키는 방해물로 작용하고 있다. 원유와 LNG 등 에너지는 모든 제조 업체나 농업의 기본적인 원가요소인데 이들 가격이 높아지면서 생산이 위축되고 있다. 또 비행기와 배의 운송비도 눈덩이처럼 불어나 국가 간 운송 거리가 멀어지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특히 독일과 일본 등 무역 강국들은 에너지 대외의존도가 높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2022년 1~9월 일본의 원유와 LNG 그리고 석탄 수입증가율은 모두가 100%대에 이르고 있으며 에너지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프랑스와 독일은 에너지 공급원인 러시아와 관계가 원만하지 않아 타격이 더 크다. 독일은 2022년 1~7월 중 가스와 석탄 수입증가율이 300%에 육박할 정도로 높아 역대 최대 무역적자라는 기록을 만들었다. 프랑스도 원유 수입이 두 배, 가스가 네 배 증가했고 석탄도 세 배 이상 늘어 역대 최대 무역적자에 빠져들었다. 

애국 소비와 애국 제조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기업에 효율을 무시하고 자국 내 생산과 소비를 강요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 입장에선 대가를 더 치러야 하고 소비자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줄어들거나 같은 제품이라도 비용을 더 지불해야 한다. 최근 WTO는 2022년 세계 교역량이 전년 대비 3.5% 증가하는 데 그치고 2023년 교역량은 1% 증가에 머물 것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더구나 고유가, 고물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장기화 등 경기 하락 리스크가 누적될 경우, 2023년 글로벌 교역량이 최대 2.8% 역성장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WTO는 에너지 가격의 추가 상승으로 인한 기업의 제조 비용 부담이 확대되고, 고강도 긴축 정책으로 가계지출이 위축될 경우라는 단서를 달면서 교역량의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코로나19를 극복하며 9.7%가 늘어났던 2021년과는 완전히 다른 국면이 2023년에는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최근 글로벌 위축을 불러온 대부분의 요인이 경기적 요인보다 구조적인 측면이 강해 단기간에 회복세를 보이기 쉽지 않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그동안 상품 수출 주도형 성장을 견지한 대한민국의 성장 전략에 수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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